어제 교회에 가는 길에 어느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데, 주차장에 몇 명의 중년 남녀가 불안한 듯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 중엔 "민주..."어쩌구 하는 어께띠를 두른 사람도 보였습니다. 척 보니까 정치 지도자를 만나러 왔는데, 어쩐 일인지 만나지를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상황이더군요. 그런데 과연 어떤 정치 지도자가 여기 살까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옛날 정치지도자들은 대부분 "...동 사저", 즉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살더군요.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교동 래미안에 산다거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상도동 롯데캐슬에 사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죠.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그 아파트에 사는 정치 지도자는 다름이 아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고, 그를 만나러 온 사람 중엔 이재오 최고위원도 있더군요. 내가 호기심에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이 최고위원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보았던 "민주..." 어께띠. 이거 비디오 아닙니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 안 좋은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도 가장 상황이 안 좋은 사람이 바로 이재오 최고위원입니다. 이 최고위원은 이 후보 당선 후에 가장 적극적으로 한나라당의 조직 재정비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전 총재 측과 마찰이 컸고, 따라서 반이명박 전선을 구축한 사람들은 이 최고위원을 자신들의 가장 큰 적으로 봅니다. 얼마 전엔 이 최고위원이 당회의 중에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장면이 (소리만) 보도되 여러 명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죠. 게다가 이 최고위원이 당내 반대 세력에 대해 썼던 "좌시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삼성이 김용철 변호사에게 쓸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긴 했지만, 그만큼 반발도 심해 결국 이 최고위원은 이 일로 이명박 후보에게 "눈물이 쏙 나도록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본인의 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의 경비 아저씨와 구분이 가지 않는 잠바에서 많은 공을 드린 코스프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쉽게 갈 줄 알았던 대선의 길이 하루 아침에 가시밭 길로 바뀌고 보니 이 최고위원도 마음이 급하셨던 모양입니다. 평소엔 잘 찾아가지도 않던 이 전 총재 자택에 가서 본인이 집에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경비실에서 처량하게 기다리는 퍼포먼스도 펼치시고, (그런데 그 추운 날 경비 아저씨는 어디서 추위를 피하셨을까요?) 반대파는 "립서비스"라고 깎아 내리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오만했다.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도 했습니다.

아, 날씨는 점차 추워지는데, 이런 일 자주 있을 거면 경비 아저씨한테 24핀 충전기 겸용 손난로라도 하나 사드리고 자리 뺏으시기 바랍니다.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