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2년 전 세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폭동과 거의 비슷한 양상이 진행중이군요. 폭동은 불만 때문에 일어나는 법인데, 2년만에 같은 폭동이 다시 일어난 것은 그때의 불만이 아직 해결 안되었다는 뜻이겠죠.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동이 일어난 지역은 파리 근교, 이른바 방리유 (banlieue)입니다. 방리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모인 곳입니다 (부유한 근교도 있기는 하지만, 가난한 근교가 더 많습니다). 프랑스는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도 다 책임을 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라도 판자촌에 사는 일은 없고, 정부가 싼 값에 공급하는 임대아파트에 살지요.

위 사진은 2년전, 파리 폭동이 일어나기 몇달 전 제가 파리 근교의 아파트촌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이 아파트를 까망베르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긴 치즈 이름) 라고 부르더군요. 이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치안이 안 좋기 때문에 조금만 돈이 있으면 이런 아파트에 살 리가 없지요.
프랑스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겐 생활비도 일정부분 보조해 줍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죽지 않을 만큼의 의식주는 해결해 주니까요. 따라서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가난할 지언정 굶주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아파트촌엔 아랍계, 아프리카계 이주자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의 자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워낙 실업율이 높은데다가 아랍계나 아프리카계는 더욱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들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주택에서 정부에서 공급하는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부에서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니 감사한 일 아닌가?" 하겠지만, 젊은 이들에게 삶은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프랑스의 많은 백인은 부유하게 사는데, 이들은 인종차별의 벽 때문에 젊은 나이에 사회로 올바르게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냥 남들이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TV로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대학교에 많이 진학하지도 않지요. 따라서 이들의 문제는 사회의 차별이 아니라 이들의 게으름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말이 맞을찌도 모르지요.
이러한 이주자 2세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들에게 정부의 보조금은 단지 이들을 길들이기 위한 마약처럼 느껴질찌도 모릅니다.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던 차에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10대 청소년들이 경찰차와 충돌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느껴 경찰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이번 파리 폭동인 것이지요.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미국과는 다르게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프랑스에 사는 이주자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해서는 안된다"는 뜻도 되지요. 이주자 2세들은 큰 인종차별의 벽을 느끼는데,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이번 폭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폭동이 일어난 원인을 이해하려면 남들과 동일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프랑스 이주자들의 한과 눈물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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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동이 일어난 지역은 파리 근교, 이른바 방리유 (banlieue)입니다. 방리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모인 곳입니다 (부유한 근교도 있기는 하지만, 가난한 근교가 더 많습니다). 프랑스는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도 다 책임을 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라도 판자촌에 사는 일은 없고, 정부가 싼 값에 공급하는 임대아파트에 살지요.
위 사진은 2년전, 파리 폭동이 일어나기 몇달 전 제가 파리 근교의 아파트촌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이 아파트를 까망베르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긴 치즈 이름) 라고 부르더군요. 이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치안이 안 좋기 때문에 조금만 돈이 있으면 이런 아파트에 살 리가 없지요.
프랑스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겐 생활비도 일정부분 보조해 줍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죽지 않을 만큼의 의식주는 해결해 주니까요. 따라서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가난할 지언정 굶주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아파트촌엔 아랍계, 아프리카계 이주자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의 자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워낙 실업율이 높은데다가 아랍계나 아프리카계는 더욱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들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주택에서 정부에서 공급하는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부에서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니 감사한 일 아닌가?" 하겠지만, 젊은 이들에게 삶은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프랑스의 많은 백인은 부유하게 사는데, 이들은 인종차별의 벽 때문에 젊은 나이에 사회로 올바르게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냥 남들이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TV로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대학교에 많이 진학하지도 않지요. 따라서 이들의 문제는 사회의 차별이 아니라 이들의 게으름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말이 맞을찌도 모르지요.
이러한 이주자 2세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들에게 정부의 보조금은 단지 이들을 길들이기 위한 마약처럼 느껴질찌도 모릅니다.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던 차에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10대 청소년들이 경찰차와 충돌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느껴 경찰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이번 파리 폭동인 것이지요.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미국과는 다르게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프랑스에 사는 이주자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해서는 안된다"는 뜻도 되지요. 이주자 2세들은 큰 인종차별의 벽을 느끼는데,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이번 폭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폭동이 일어난 원인을 이해하려면 남들과 동일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프랑스 이주자들의 한과 눈물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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