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의미

사회 2008/08/05 22:21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공정택 후보가 승리하며 마감하였습니다. 이번 선거는 단지 서울시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의 대결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띄었는데, 10%대의 낮은 투표율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이 결집해서 결국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공정택 후보는 당선된 후 당장 국제중을 추진하고 입시 경쟁 강화를 언급하는 등 예상했던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그가 당선사례 현수막에 내건 "받은 성원 아이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즉, "나를 뽑아주었으니 원하는대로 아이들을 더욱 혹독한 경쟁으로 몰아넣겠습니다"라는 뜻임이 분명해 졌군요.

사실 지금 많은 학부모는 분명히 입시경쟁의 심화를 원합니다. 이들이 보기에 최대한 경쟁을 억누르는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의 자유를 막는 최악의 정책이었죠.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경쟁 억제 정책은 사실 박정희 정부 이후로 일관된 정부의 정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는 69년 중학교 입시를 없앴고, 74년부터는 고등학교 평준화를 실시하여 국민학생과 중학생의 입시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본고사 대신 학력고사를 치르도록 하였습니다 (학력고사와 수능의 의미에 대해선 제가 쓴 학력고사, 수능시험, 그리고 본고사의 장단점 비교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선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미국식의 수학능력고사를 도입하였고, 학생이 특정한 분야에 대해 재능을 보이면 그러한 재능을 대학이 인정해서 입학을 허가하게 하는 등 (이른바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가는") 파격적인 입시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수능 점수에 연연하지 않도록 등급제를 도입하였고, 고등학교간의 학력 편차를 고려하는 고교등급제 도입을 막았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나서서 경쟁을 막지 않던 시절엔 똑똑한 국민학생 (당시는 초등학생이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은 공부를 열심히해 명문중에 들어갔고, 명문중에서 좋은 선생님 밑에서 좋은 전통을 따라 열심히 공부해 명문고에 들어갔고, 명문고에서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해 명문대에 들어갔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인맥이 지금도 정치, 경제계를 주도하는 이유는 당대의 똑똑한 사람 중 상당수는 이처럼 일정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체제를 따르기 위해선 아이들이 초등학교부터 피말리는 입시경쟁에 휘말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중3때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는데, 어차피 반의 대부분이 붙는 시험이라 큰 부담은 없었지만, 막상 하나의 뚜렷한 시험이 눈앞에 있으니 1년 내내 공부를 등안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중학교 입학시험이 부활한다면 초등학생들도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죠.

많은 사람은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고 묻겠지만, 사실 교육이라는 것이 교과서를 열심히 읽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육엔 인성 교육, 감성 교육도 포함되고, 친구들과 놀거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입시가 최고의 목표가 되는 교육체계 안에서는 학생이 인성, 감성이 발달할 여지가 없이, 시험 문제만 잘 푸는 시험 기계가 되어 버립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성적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정서적,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어차피 지금도 학생들이 온전한 인격체로 자라나기엔 교육환경이 너무 척박하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육에 경쟁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정택 교육감의 말은 매우 섬뜻하게 들립니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교육과정을 잘 통과한 학생은 좋은 회사에 취직할 확률이 높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좋은 직장을 얻기가 힘들겠죠. 문제는 경쟁이 심해지면 경쟁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상류층의 자녀가 좋은 학교의 정원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미 대학에서 쉽게 체감할 수 있는 현상인데, 90년대만 해도 서울대에 지방 출신 학생이 많았다면 지금은 서울 학생, 그것도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이 늘었다고 합니다. 과외가 금지된 5공시절에는 부자 집 학생이나 가난한 집 학생이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를 했지만, 지금처럼 과외가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좋은 학원 근처에 사는 학생, 더 좋고 비싼 과외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는 학생이 더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에 국제중, 자사고 등이 생겨나면 학비가 더 비싸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는 부유층은 좋겠지만, 그저 공교육과 싼 동네 학원에 의존해야 하는 서민들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 내고 내 자식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는 것을 정부가 왜 막느냐"는 학부모의 항변도 이해를 할 수는 있습니다. 단, 이미 입시 경쟁이 극에 달한 지금, 더 심한 경쟁을 할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옛말에 교육은 백년지대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단지 교육이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아니라, 국가 전체에 걸처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 많은 학부모는 교육을 경제의 논리로 생각해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정택 교육감은 이러한 소비자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은 단지 소비가 아니고,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식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욕심에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교육정책을 학부모의 욕심에 근거하면 안된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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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