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얼핏 본다면 다크 나이트는 최신 장비로 무장한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잡는 전통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 만든 영화 같지만, 그 속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선과 악의 의미에 대한 탐구가 담긴 매우 무거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에 평범한 헐리웃 영화 처럼 선 (배트맨과 하비 덴트 검사)과 악(조커와 범죄조직)이 싸우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선 (배트맨)과 악(조커)이 선악의 두 얼굴을 한 하비 덴트를 놓고 벌이는 줄달이기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결국 하비 덴트는 조커의 꾀임에 빠져 악을 행하다 죽고, 배트맨은 시민들이 절대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경우 생겨날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누명을 뒤집어 쓰고 하비 덴트 검사의 명성을 지켜줍니다. 이는 선을 위해 악한 방법 (거짓말)을 쓰는 모습인데, 악당을 속일 때를 제외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전통적인 영웅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죠.
그러면 배트맨은 왜 이처럼 하비 덴트의 명성을 지켜주려고 노력한 것일까요?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대중을 악에서 구하기 내려는 숭고한 이유 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악의 세계에 빠져들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배트맨이 영웅이냐? 법망을 피해 활동하는 그가 정말 선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배트맨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도시 전체의 모습을 감시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그가 선의 이름으로 불법을 행하도록 용납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배트맨 자신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자신이 절대선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조커는 단지 악일 뿐 아니라 배트맨 자신의 어두운 면을 표현한 존재이고, 이는 드래곤볼의 신과 피콜로의 관계 처럼, 선과 악이 긴밀하게 연결된 상태입니다.
선이 악으로 변할 수 있다거나, 선과 악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개념은 특히 대중 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정의를 지키는 제다이 기사로 훈련되지만, 나중에 악의 화신인 다스베이더가 됩니다. 유명한 TV시리즈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헐크는 주인공의 억눌린 분노의 표현입니다.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각각 자신의 어두운 면과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슈퍼맨 3, 스파이더맨 3).
이처럼 선악이 공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에 들어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해졌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19세기까지 유럽인들은 유럽문명은 선이고, 야만은 악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많은 세계인은 히틀러의 독재정부가 악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벌이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지지해야 할찌 북베트남을 지지해야 할찌 혼란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당시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는 북베트남에서 군사시설을 방문했다가 "하노이 제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금 많은 미국인은 테러와 벌이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테러리스트를 고문하겠다고 공언하는 미국 정부를 보며, 누가 더 큰 악인지 혼동을 느끼는 중입니다.
이처럼 선과 악이 모호한 시대에,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얻는 정보를 통해 선과 악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이라도 거짓말을 통해 선한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 인간의 판단은 무엇에 근거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처럼 무겁고, 그 해답은 쉽게 찾기 힘듭니다.
어쨌든 헐리웃에서 블록버스터의 옷을 입고 이처럼 묵직한 주제를 다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재능은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다음에 나올 놀란표 배트맨 3탄이 벌써 기대되는군요.
P.S.
Dark Knight이 누구인지 혼동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배트맨이 다크 나이트 맞습니다. 대사에서도 하비 덴트를 백기사라고 칭하고, 영화 마지막에 배트맨이 떠날 때 그를 "흑기사"라고 부르죠. 타임지에 실린 영화평에서도 배트맨이 다크 나이트라고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