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와 아시아의 거대한 핵보유국 파키스탄은 공통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세계적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국가부도위기에 몰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작은 나라이지만 금융업을 중심으로한 첨단경제를 추구하였는데, 금융분야에서 위기가 오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경제규모가 작은 만큼 (인구 32만명) 큰 위기에 대한 내성도 부족하기 때문이죠. 현재 아이슬란드의 주식시장은 거래가 중단된 상태고, 정부가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국유화하는 중입니다.

파키스탄은 인구가 1억 6천만명에 이르는 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 극히 낙후한 지역입니다. 얼마전 무샤라프 대통령이 퇴임하고 그 뒤를 이어 작년에 암살당한 부토 전총리의 남편인 자르다기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자르다기는 아내가 총리로 있을 당시 정치인으로 많은 부정을 저질러 미스터 10%라는 별명을 얻었고, 7년간 감옥에도 다녀온 인물입니다. 이렇게 부패한 정치인이 문제투성이인 나라를 얼마나 잘 이끌찌에 대해선 취임전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죠.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라는 점과 아프가니스탄의 옆나라라는 점에서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상대입니다. 9.11 사태가 나자 미국은 파키스탄에 협력을 요청했고, 당시만 해도 탈레반을 지원하던 파키스탄은 태도를 바꿔 탈레반 소탕에 나선 미국편에 섰습니다. 이러한 파키스탄의 변신을 주도한 것은 무샤라프 대통령이었고, 따라서 미국은 무샤라프에 전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작년 말 부터 무샤라프가 파키스탄을 파국으로 몰고가자 "테러와 전쟁을 한다면서 비도덕적인 독재자를 지원하느냐"는 비난이 미국에 쏟아졌습니다. 결국 무샤라프는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정국의 불안이 가시기도 전에 국제적인 금융불안이 발생해 현재 파키스탄에는 한달치 수입에 필요한 외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세계적인 신용경색의 피해를 본 예입니다. 이들의 예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에게 벌어진 일이 한국에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상황은 어차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고, 시장참여자들이 어떠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판가름나기 마련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의 예를 본 투자자라면 "혹시 외국으로 돈을 빌려주었다가 돈을 못찾게 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하기가 쉽겠죠. 그러면 외국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외국 자본이 빠져나간다면 출렁임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요즘 한국의 외환시장이 워낙 불안정하기 때문에 속시원하게 지금 빠져나가자고 마음 먹기가 쉬울 것입니다.

9일 외환시장에선 환율이 1500원 가까이 폭등했다가 정부의 강한 개입으로 1300원대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폭등은 연일 계속된 시장의 심리적 공황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발표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정부의 개입이 성공한 것은 금리인하 발표에 맞춰 환율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달러를 대량으로 풀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전에는 달러를 대량으로 풀어도 영향을 거의 안 받던 시장이 이번엔 100원이나 떨어졌다는 사실은 조금 이상합니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환율은 1500원이 상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10월 이후로 하락한 원유값이 반영되면서 국제수지가 개선된다면, 시장이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찌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변수는 앞서 말했듯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의 상황이 얼마나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입니다. 만약 이들 국가가 최종적으로 모라토리움 (지급유예)이나 디폴트 (지급불능)를 선언한다면 투자심리가 악화하면서 대량의 자금회수상태가 나타날찌 모르죠. 생각해 본다면 1997년 외환위기도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생겼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두달 여 정도가 한국으로선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두 달을 잘 막는다면 한국은 당분간 외환위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물론 경기침체는 피하기 힘들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달러당 환율이 2000원대로 넘어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디 그런 최악의 상황만큼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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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