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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까지 끝없이 오르던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원유 가격은 60달러대로 떨어져 올 여름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입니다.

원자재 가격 하락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로 표기하는 가격이 내려가는 면도 있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 수요가 줄었기에 가격이 내려가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투기 자금이 원자재에 몰렸는데 (쉽게 말해, 개인이나 기관이 원자재를 사들였다가 더 비싼 값에 판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물론 물건을 직접 사는 것은 아니고, 파생상품을 거래하겠죠), 최근 유동성이 악화한 금융기관들이 자산을 대량으로 매각하였기에 원자재 시장에 몰렸던 자금도 빠져나가는 것도 가격 하락의 원인입니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지금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디플레이션 현상의 일부분입니다. 디플레이션은 시중에 돈이 부족하기에 돈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상품이나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대공황 당시 미국에선 곡물 가격이 40-60%나 떨어져 농민들이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는 세계 대공황의 원인이 통화의 부족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돈이 많이 돌지 않으니 돈이 귀해지고, 돈이 귀해지다보니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니 기업은 운영이 힘들어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렇게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정부는 세계 대공황의 교훈을 기억하고 통화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하지만 통화량이 너무 많으면 두가지 위험이 발생합니다. 우선, 돈이 시중에 넘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미국은 원래 달러의 가치를 금에 기초로 하는 금본위제를 따랐는데, 무역적자로 돈이 부족해진 닉슨 대통령은 1971년 금본위제를 폐지합니다. 금본위제가 폐지되자 미국 정부는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고 (금본위제에서는 금을 보유한 만큼만 달러를 찍어낼 수 있죠), 이는 결국 70년대의 오일쇼크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됩니다.

70년대 경제위기는 물가상승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경기침체를 낳았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와 함께 기업의 수익이 나빠져 경제성장률도 함께 둔화한 것이지요. 이러한 경제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대단히 골치아픈 문제인데, 물가를 잡으려고 시중의 돈을 걷어들이면 경기가 더 나빠지고, 경기를 살리려고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기 때문이죠.

통화량 증가가 일으키는 또 한가지 문제는 바로 버블경제와 이에 따르는 거품의 붕괴입니다. 이는 90년대 일본이 겪은 문제죠. 80년대 수출 증가로 많은 돈을 번 일본은 경기가 과열되면서 부동산의 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 문제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언젠가 정상적인 가격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결국 90년대 일본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거품붕괴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와 함께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10년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했죠.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10년"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통화량은 늘 적정수준을 유지해야지, 너무 부족하거나 너무 많으면 꼭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통화량을 조절하는 기능은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지금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그린스펀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 (FRB)의장이던 시절에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경기가 과열되면서 집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고, 올라갔던 집값이 떨어지면서 수많은 문제 (예를 들어 금융기관의 부실화, 신용경색으로 인한 기업의 자금 부족)가 함께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은 물가는 올라가면서 경기는 침체하는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집값과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등 디플레이션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죠. 이명박 정부는 시중에 돈을 풀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은행에 유동성을 공금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가 그러한 예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중에 돈을 더 공급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재정 건정성을 확보하고 한계기업을 정리함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쉽게 말해 "경제의 거품을 빼자"는 주장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에 거품이 많이 끼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거품을 키우면 문제가 더 크게 되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도 지금 한국 경제가 살 길은 이 기회에 거품을 빼고 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방법 뿐입니다.

물론 고성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조선일보는 '한국은행이 위기의 진원지'라는 소리 들어서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빨리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를 대폭 인하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돈을 많이 풀어 무너져가는 기업도 살려내고, 집값도 떨어지지 못하게 막아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유동성을 더 공급하면, 망할 기업이 망하지 않아서 부실이 한국 경제 전체로 번질 위험이 극히 큽니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국의 언론은 국내의 부채 문제가 외환부족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데, 지금 돈을 막 빌려준다면 나중엔 국민과 기업 전체가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한국은행을 공격한 것은 결국 말을 듣지 않으면 한국은행 총재를 바꾸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임기가 보장되긴 하지만, KBS 사장 해임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정부는 임기 같은거 신경 안쓰죠. 즉, "지금 우리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시중에 돈을 풀 작정이니, 한국은행이 우리 정책에 따라오지 않는다면 총재를 바꿔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유동성 공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정말 이명박 정부는 아마추어 정부만도 못해서 뭐라 부를찌 모르겠다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도 못한채, 한국은행의 독립성도 무시하면서 돈을 풀어 거품을 키우겠다는 발상이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누굴찌는 뻔하지만). SDE님은 이런식으로 가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찌도 모른다고 경고하였는데, 요즘 정부 하는 모습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찌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부디 정부가 제정신 차리고, 올바른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봐 온 모습으로는 그러한 희망이 안생겨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대한민국, 정말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런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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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