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이 보인 젊고, 말 잘하고, 잘생기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그 후로 많은 민주당 대선주자가 흉내내기 원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물론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태 이후에 워싱턴 정치인들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순박함"과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를 뽑긴 했지만, 90년대 들어 젊고 말 잘하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롤 모델은 케네디 대통령"이라는 공식이 완성되었죠. 또 다른 젊은 달변가 앨 고어도 전형적인 민주당형 대통령 후보였고, 존 케리는 이름 약자가 JFK이며, 가톨릭 교도라는 점에서 JFK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길 기대했지만, JFK와 공통점이 많지 않아서인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인 선거로 평가하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했다고 합니다. 젊고 말 잘하고, 똑똑한 그는 JFK의 계보를 잇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개인의 재능과 매력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한 오바마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 만큼이나 극적입니다.
물론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지만, 아직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처럼 살아가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미국 상원 의원 중 흑인은 오바마가 사상 두번째고, 지금도 그를 제외하고는 흑인 상원의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즉, 특정한 영역 (예를 들어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는 흑인이라는 신분이 거의 문제가 안되지만,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미국인은 오바마의 당선을 계기로 미국이 좀 더 인종간 통합이 잘 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한때 일어났던 페일린 열풍이 보여주듯, 아직 미국의 많은 지역에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American values)가 현대적으로 왜곡된 보수주의가 영향력이 큽니다. 즉, 오바마의 당선은 흑백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되겠지만, 아직도 미국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갈 길이 먼 셈이지요.
이번 대선의 초점은 단지 흑인 대통령의 탄생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중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9월까지 지지율이 오바마보다 10%나 앞섰던 매케인이 오바마에 선두를 내준 원인은 페일린 돌풍의 거품이 꺼진 이유도 있지만, 10월 들어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공화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 경제를 더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공황을 끝낸 것이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이었고, 90년대 장기호황을 이끈 것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였죠. 게다가 매케인은 maverick (조직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는 이단아)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모습 (많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남자주인공이 매버릭이죠)이긴 하지만, 위기상황에 국가를 이끌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하버드 법대를 나온 오바마의 지적인 이미지는 경제를 살릴 인물이라는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죠. (부시 대통령은 이미지에 걸맞게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폴슨과 버냉키에 전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탁한 상태입니다. 나름 큰 석유회사 CEO 출신인데도 이렇습니다. 아, CEO 출신이 경제를 이해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이제 설명 안해도 되겠군요.)
결국 미국의 위기가 오바마에겐 기회가 되어 지지율 역전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그가 미국인의 기대대로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서 계속 글을 올렸듯, 이번 경제 위기는 쉽게 끝날 수 있을 문제가 아니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사태를 수습하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오바마는 분명히 인기는 높고, 말은 잘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할찌는 미지수입니다. 그의 정치경력이라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8년, 미국 상원의원 4년이 전부입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유명해진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소망의 담대함" (Audacity of Hope) 연설 때문입니다. 이 연설이 방송에 나가면서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4년만에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케네디 대통령도 인기에 비해서는 이루어 놓은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시작했다든지,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위기에 빠진 서베를린에 가서 "나도 베를린 사람이다 (Ich bin ein Berliner)"라고 말함으로 자유세계가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일, 그리고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까를 묻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찌 물으라"는 취임 연설후,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섬기는 평화 봉사단 (Peace Corps)을 설립한 일 등입니다. 즉, 그는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는 일은 대단히 잘했지만, 실제로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미지수입니다 (이는 그가 취임후 3년도 못되어 암살되었기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찌는 아직은 미지수라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변화를 모토로 내세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최소한 앞으로 몇달은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표를 봐도 미국의 금융부분은 많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결혼생활의 현실이 시작될 때, 지도자로서 오바마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겠지요. 과연 그가 어떤 지도력을 보일찌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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