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을 맞아, 이러한 위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서 찾는 음모론 (conspiracy theory)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블로그나 토론 사이트에 가보면 "유대인 세력의 음모" "미국 정부의 음모" 등에 대한 많은 주장이나 이론을 찾아 볼 수 있죠.
음모론은 크게 봐서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주체의 음모론은 지금 벌어지는 사태 뒤에 일반인이 모르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음모론에 따르면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는 그림자 정부 (shadow government)나 프리메이슨, 또는 유대인 자본가들의 비밀결사 등이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주체의 음모론을 잘 믿지 않는 것은, 이러한 비밀에 싸인 조직을 상상하지 않고도 무능한 정치 지도자, 탐욕스러운 경영자, 무지한 대중, 그리고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기 팽창과 수축만으로 세계 경제 위기가 온 원인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철학자인 오캄은 (쉽게 풀어쓰자면) "필요 없는 존재는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쓸데 없는 존재를 베어내는 오캄의 면도날 이지요. 오캄의 면도날을 음모론에 대입해 본다면, 세계적인 음모를 꾸미는 세력은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데 필요가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그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없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둘째, 계획의 음모론은 지금 벌어지는 사태가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시장이 혼동에 쌓인 것 같아도, 결국 음모를 꾸민 세력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마음대로 상황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전재를 깔고 있습니다. 즉, 아주 강력한 세력이 마음을 먹으면 정부와 경제계를 동원해서 원하는대로 경제 위기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경제위기를 끝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특정한 원인은 늘 특정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인과론 (causality)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가능한 생각이지만, 인과론을 믿지 않는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과거에는 인과론이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자들은 세상을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로 보았고, 따라서 특정한 조건을 준다면 결과를 거의 100%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인과론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약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유리를 향해 광자 (photon)를 쏘면 어떤 광자는 튕겨나가고, 어떤 광자는 통과합니다. 이는 같은 원인이 다른 결과를 내는 좋은 예입니다. 생각이 없는 물질의 세계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찐데,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 수십억명이 모여 사는 세계를 특정한 세력이 마음대로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은 믿기 힘듭니다.
세째, 의도의 음모론은 정부나 기업 등이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달러를 지원하는 것은 겉으로는 그 나라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그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죠.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꼭 음모론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외교관계는 늘 겉으로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면서 속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마련입니다. 미국이 2차세계대전 후 마샬 플랜을 시작한 것은 유럽의 복구를 돕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 경제가 회복되어야 미국의 수출 시장이 커지기 때문이었던 면도 있죠.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면서 "한국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투자가 이익을 내리라는 사실이죠.
어느 나라에서나 정부가 발표를 할 때, 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즉, 정부의 말과 실제가 다르다는 사실은 상식에 가까운 것이지요. 따라서 의도의 음모론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지만, 워낙 약한 형태의 음모론이기 때문에 주체의 음모론과 계획의 음모론에 설득력을 더하지는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음모론이 어느정도 증명된 예를 찾을 수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 혁명의 시기에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비밀결사가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 문서를 바탕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또한 1981년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인, 장군, 기업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밀결사 P2 (Propaganda Due)가 발각되었는데, 이들은 이탈리아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국가 속의 국가" 또는 "그림자 정부"였다고 합니다. 당시 검찰 조사 중 P2회원의 명단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엔 현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는 "이름만 올렸다"고 주장했죠). 따라서 지금 떠도는 음모론이 나중에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음모론에 입각한 경제 해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음모론이 들어가면 객관적인 논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칼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반증 (falsification), 즉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과학인데 음모론은 틀렸다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 금융세력이 세계 정복을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면 왜 유대계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느냐?"고 따져도 "그것은 유대계 세력의 꼬리자르기였다"고 말하면 끝입니다. 부시 정부가 경제위기를 통해 다른 나라를 삼키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면 왜 공화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느냐?"고 따지면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뒤로는 다 한 통속이다"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음모론을 부정하려고 나서도, 음모론은 틀렸다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음모론에 대한 논의는 서로 동의할만한 결론에 이르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다 끝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음모론은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야기를 제공하기에 인기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경기의 흐름이나, 파생상품이 돌고 돌면서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대인 자본가들이 신흥시장을 싼 값에 사들이기 위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를 합니다. 하늘에 뜬 별을 있는 그대로 보기 보다는, 가까운 별 끼리 연결해 별자리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별자리를 만들면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죠. 게다가 "내가 욕심을 부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손해를 봤다"고 말하기 보다는 "싼 값에 부동산을 사려는 외국 세력이 루머를 퍼트려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마음에 위안이 되죠. 이러한 이유에서 음모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음모론의 진정한 위험은, 음모론만 믿다 보면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으로 힘들고,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기 보다는 "전세계적인 음모"만 탓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음모론이 많이 떠돌기는 하지만, 너무 쉽게 음모론을 믿기 전에, "과연 이러한 음모론이 사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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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크게 봐서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주체의 음모론은 지금 벌어지는 사태 뒤에 일반인이 모르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음모론에 따르면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는 그림자 정부 (shadow government)나 프리메이슨, 또는 유대인 자본가들의 비밀결사 등이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주체의 음모론을 잘 믿지 않는 것은, 이러한 비밀에 싸인 조직을 상상하지 않고도 무능한 정치 지도자, 탐욕스러운 경영자, 무지한 대중, 그리고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기 팽창과 수축만으로 세계 경제 위기가 온 원인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철학자인 오캄은 (쉽게 풀어쓰자면) "필요 없는 존재는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쓸데 없는 존재를 베어내는 오캄의 면도날 이지요. 오캄의 면도날을 음모론에 대입해 본다면, 세계적인 음모를 꾸미는 세력은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데 필요가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그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없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둘째, 계획의 음모론은 지금 벌어지는 사태가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시장이 혼동에 쌓인 것 같아도, 결국 음모를 꾸민 세력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마음대로 상황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전재를 깔고 있습니다. 즉, 아주 강력한 세력이 마음을 먹으면 정부와 경제계를 동원해서 원하는대로 경제 위기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경제위기를 끝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특정한 원인은 늘 특정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인과론 (causality)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가능한 생각이지만, 인과론을 믿지 않는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과거에는 인과론이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자들은 세상을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로 보았고, 따라서 특정한 조건을 준다면 결과를 거의 100%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인과론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약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유리를 향해 광자 (photon)를 쏘면 어떤 광자는 튕겨나가고, 어떤 광자는 통과합니다. 이는 같은 원인이 다른 결과를 내는 좋은 예입니다. 생각이 없는 물질의 세계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찐데,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 수십억명이 모여 사는 세계를 특정한 세력이 마음대로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은 믿기 힘듭니다.
세째, 의도의 음모론은 정부나 기업 등이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달러를 지원하는 것은 겉으로는 그 나라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그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죠.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꼭 음모론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외교관계는 늘 겉으로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면서 속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마련입니다. 미국이 2차세계대전 후 마샬 플랜을 시작한 것은 유럽의 복구를 돕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 경제가 회복되어야 미국의 수출 시장이 커지기 때문이었던 면도 있죠.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면서 "한국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투자가 이익을 내리라는 사실이죠.
어느 나라에서나 정부가 발표를 할 때, 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즉, 정부의 말과 실제가 다르다는 사실은 상식에 가까운 것이지요. 따라서 의도의 음모론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지만, 워낙 약한 형태의 음모론이기 때문에 주체의 음모론과 계획의 음모론에 설득력을 더하지는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음모론이 어느정도 증명된 예를 찾을 수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 혁명의 시기에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비밀결사가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 문서를 바탕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또한 1981년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인, 장군, 기업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밀결사 P2 (Propaganda Due)가 발각되었는데, 이들은 이탈리아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국가 속의 국가" 또는 "그림자 정부"였다고 합니다. 당시 검찰 조사 중 P2회원의 명단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엔 현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는 "이름만 올렸다"고 주장했죠). 따라서 지금 떠도는 음모론이 나중에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음모론에 입각한 경제 해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음모론이 들어가면 객관적인 논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칼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반증 (falsification), 즉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과학인데 음모론은 틀렸다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 금융세력이 세계 정복을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면 왜 유대계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느냐?"고 따져도 "그것은 유대계 세력의 꼬리자르기였다"고 말하면 끝입니다. 부시 정부가 경제위기를 통해 다른 나라를 삼키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면 왜 공화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느냐?"고 따지면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뒤로는 다 한 통속이다"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음모론을 부정하려고 나서도, 음모론은 틀렸다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음모론에 대한 논의는 서로 동의할만한 결론에 이르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다 끝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음모론은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야기를 제공하기에 인기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경기의 흐름이나, 파생상품이 돌고 돌면서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대인 자본가들이 신흥시장을 싼 값에 사들이기 위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를 합니다. 하늘에 뜬 별을 있는 그대로 보기 보다는, 가까운 별 끼리 연결해 별자리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별자리를 만들면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죠. 게다가 "내가 욕심을 부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손해를 봤다"고 말하기 보다는 "싼 값에 부동산을 사려는 외국 세력이 루머를 퍼트려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마음에 위안이 되죠. 이러한 이유에서 음모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음모론의 진정한 위험은, 음모론만 믿다 보면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으로 힘들고,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기 보다는 "전세계적인 음모"만 탓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음모론이 많이 떠돌기는 하지만, 너무 쉽게 음모론을 믿기 전에, "과연 이러한 음모론이 사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