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747 공약 (7%경제성장, 4만불 국민소득, 세계7위 경제강국)을 들고 나왔을 때, 그의 지지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은 "그래, 열심히 노력하면 이 정도 목표는 이뤄낼 수 있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 정도였고, 연간 성장률은 4%대였기에 747 공약은 "지금 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하면 이룰 수 있는 목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1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747 공약이 곧 이루어지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우선 경제성장률이 너무 떨어져 내년엔 마이너스 성장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고, 환율이 너무 올라 달러 환산 국민소득도 작년에 비해 수십% 낮아졌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노무현 정부때는 경제가 나빠서 죽겠단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때가 태평성대 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러면 왜 한국 경제는 이렇게 빠르게 무너져 내렸을까요? 그 원인은 다음 세 가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세계적인 경제 불황
낮은 금리로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해온 미국은 결국 주택 부분의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사태에 휩쌓였고, 서브프라임 사태는 각종 파생상품을 타고 다른 나라 금융기관까지 위기에 빠트려 (아이슬란드가 대표적인 예)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금융위기는 신용경색 (금융 기관이 돈을 빌려주기 꺼리는 현상)을 낳았고, 신용경색은 실물경제를 흔들어 경기침체가 현실로 나타났죠.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두 가지 면에서 한국 경제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선, 위기가 닥치면서 안전한 달러 표시 자산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심리 때문에 한국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의 대량 탈출이 시작되었고, 이는 채권 가격 상승, 주가 하락, 환율 상승을 낳았습니다. 또한 한국 은행들의 신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은행들은 외국의 돈을 빌려오지 못해 지금까지 몇년에 걸처 빌린 돈을 당장 갚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수출이 어려워지면 환율이 더 오르고,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외국인의 철수가 더욱 빨라지겠죠.

2. 한국 경제 내부의 문제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하필이면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정점인 시점에서 나타났습니다. 지난 몇년간 한국의 은행들은 고수익을 얻고자 주택을 담보로 많은 돈을 개인에게 빌려줬습니다. 이러한 고수익에 대한 욕구는 결국 예대율 (예금대비 대출)의 지나친 상승을 낳았는데, 이는 은행들이 고객에게 받은 돈으로 대출을 해줬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돈을 빌려 (CD, 은행채 발행 등) 대출을 해준 금액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가진 돈에 비해 많은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치자 CD, 은행채 금리가 올라 자금 부족에 휩싸이게 되었고, 빨리 예대율을 낮추기 위해 대출을 회수하면서 기업들이 운영자금 부족으로 도산 위기에 휩쌓이게 되었습니다.

경제성장기 높은 저축률을 자랑하던 한국인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진 돈을 거의 다 소비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소득을 생활비로 쓸 뿐 아니라 빚을 내 생활을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많은 사회는 위기에 취약하기 마련이죠. 특히 많은 가정이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이자율이 올라가자 자산 손실과 생활비 부족에 휩싸였고, 이는 내수위축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 경기가 안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죠.

3. 한국 정부의 무능
"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막상 취임하자 경제에 대한 무지와 시대에 뒤떨어지는 소견으로 많은 사람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물가가 오르자 "물가를 잡겠다"며 특정 상품을 가격 관리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는 모습을 보였고,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등 60년대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은 시장 참여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죠.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무조건 수출만 많이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초에 고환율 정책을 써서 외환시장을 흔들었고, 환율이 지나치게 오르자 딜러들 점심 먹으러간 사이에 달러를 대량매도하는 이른바 "도시락 폭탄"을 투하해 딜러들의 점심시간만 빼앗고, 외환 보유고만 축내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하려는 나라의 모든 상황, 특히 정치 지도자가 유능한지의 문제도 주의깊에 살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경제팀을 유능하다고 보는 투자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이는 한국의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말이고,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줄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뜻이죠.

영어에서는 몇가지 안 좋은 요소가 만나 대재앙이 발생할 때 이를 "perfect storm"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한국이 처한 경제위기는 perfect storm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지난 며칠간 시장이 잠잠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도 우리가 거대한 폭풍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이 폭풍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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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