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많은 정부는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에 대항하는 정책을 쓰는 중이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정부가 돈을 많이 푸는 모습을 보면 7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염려도 들기 마련이죠. 실제로 미네르바님이 과거에 쓴 글을 읽어보면 "생필품을 미리 사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물가가 많이 오르리라는 경고의 뜻이겠죠. SDE님의 글에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들리는 소식을 들어보면 10월 소비자 물가가 1% 내렸다고 하는데, 이는 소비자 물가를 통계내기 시작한 1947년 이후 최대의 하락폭이라고 합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독일에서도 TV에서 물가 하락에 대한 뉴스가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한쪽에선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현실에선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는 상황인데, 과연 앞으로 물가가 오를찌 내릴찌가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 보다 더 커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지금 각국 정부가 돈을 시중에 많이 풀긴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돌아야 물가가 오르는데, 지금은 돈이 돌지 않고 있습니다. 시중에 돈이 도는데는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금융기관, 즉 은행들은 지나치게 높은 예대율을 낮추느라 돈이 한 번 들어오면 다른 곳에 돈을 빌려주질 않는 중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돈을 시중에 공급하면 이 돈은 돌고 돌면서 계속 신용을 창출합니다. 즉, 이익을 낸 회사가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 은행은 이 돈 중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돈을 다시 빌려주고, 돈을 빌려간 회사는 그 돈으로 사업을 해 이익을 내 은행에 맞기고, 은행은 다시 이 돈 중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돈을 다시 빌려주고... 이렇게 해서 정부가 공급한 본원통화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시중에 돌기 마련이죠.
그런데 지금은 은행들이 워낙 대책 없이 돈을 많이 빌려준 상태라 예금이 아무리 늘어나도 이 돈을 다시 빌려주는데 쓰지 않고 그냥 가지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본원통화는 늘어나도 신용창조가 별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엔 여전히 돈이 부족하고, 따라서 물가는 오르지 않게 됩니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 (Irving Fischer)는 물가와 통화량의 관계를 MV = PT라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교환방정식 (the equation of exchange)이라고 부르는 이 공식에서 M은 통화량, V는 돈의 유통속도, P는 물가, T는 해당기간의 거래총량입니다. 이 공식에 따르면 통화량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고 거래가 활발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돈의 유통속도까지 고려해 생각한다면, 통화량은 많아져도 돈의 유통속도가 느려진다면 물가가 오르고 거래가 활발해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그러한 예이지요.
지금 각국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기준이자를 낮추었는데, 이는 결국 돈의 유통속도를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은행으로선 이자가 높아야 수익을 내고 싶은 마음에 돈을 빌려줄텐데, 이자가 워낙 낮으니 누가 부도날찌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빌려주기 보다는 차라리 그냥 가지고 있는 쪽이 속 편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출이 어렵다면 돈의 유통속도도 느려지겠죠.
그렇다면 지금 인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렸다 하더라도 이는 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데는 부족하고, 따라서 미국에서 나타난 디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지금 미국 국채 10년물에 인플레이션 방지 (inflation protection)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연1%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이는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앞으로 10년간 물가가 연1% 정도 오르는데 그치리라고 예상한다는 뜻이지요.
만약 지금 상황이 디플레이션의 시작이라면, 미국이나 일본의 예에서 보듯 앞으로 거의 10년간은 불경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썼지만, 디플레이션은 한 번 일어나면 없애기가 극히 힘듭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반대로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자리도 줄어들고, 따라서 많은 사람이 궁핌을 면하기 힘들죠. 미국의 1930년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아직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지금 상황이 결국은 장기불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사실 이보다 더 끔찍한 시나리오도 많기 때문에 장기불황은 그에 비하면 다행이긴 한데, 만약 장기불황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많은 사람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긴 합니다. 그리고, 미국도 1929년 주가폭락 이후, 1930년에 잠깐 주가가 반등했습니다. 만약 내년 쯤 이러한 반등이 온다고 해도 "불황 끝났네"하고 안심하지 마시고, 좀 더 장기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글
한국경제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1) - 투자승수 문제 (이론) SDE님
통화량이란 무엇인가? 세일러님 (카페 가입 필요)
[사고실험] 돈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면... lawfully님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들리는 소식을 들어보면 10월 소비자 물가가 1% 내렸다고 하는데, 이는 소비자 물가를 통계내기 시작한 1947년 이후 최대의 하락폭이라고 합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독일에서도 TV에서 물가 하락에 대한 뉴스가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한쪽에선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현실에선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는 상황인데, 과연 앞으로 물가가 오를찌 내릴찌가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 보다 더 커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지금 각국 정부가 돈을 시중에 많이 풀긴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돌아야 물가가 오르는데, 지금은 돈이 돌지 않고 있습니다. 시중에 돈이 도는데는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금융기관, 즉 은행들은 지나치게 높은 예대율을 낮추느라 돈이 한 번 들어오면 다른 곳에 돈을 빌려주질 않는 중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돈을 시중에 공급하면 이 돈은 돌고 돌면서 계속 신용을 창출합니다. 즉, 이익을 낸 회사가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 은행은 이 돈 중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돈을 다시 빌려주고, 돈을 빌려간 회사는 그 돈으로 사업을 해 이익을 내 은행에 맞기고, 은행은 다시 이 돈 중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돈을 다시 빌려주고... 이렇게 해서 정부가 공급한 본원통화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시중에 돌기 마련이죠.
그런데 지금은 은행들이 워낙 대책 없이 돈을 많이 빌려준 상태라 예금이 아무리 늘어나도 이 돈을 다시 빌려주는데 쓰지 않고 그냥 가지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본원통화는 늘어나도 신용창조가 별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엔 여전히 돈이 부족하고, 따라서 물가는 오르지 않게 됩니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 (Irving Fischer)는 물가와 통화량의 관계를 MV = PT라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교환방정식 (the equation of exchange)이라고 부르는 이 공식에서 M은 통화량, V는 돈의 유통속도, P는 물가, T는 해당기간의 거래총량입니다. 이 공식에 따르면 통화량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고 거래가 활발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돈의 유통속도까지 고려해 생각한다면, 통화량은 많아져도 돈의 유통속도가 느려진다면 물가가 오르고 거래가 활발해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그러한 예이지요.
지금 각국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기준이자를 낮추었는데, 이는 결국 돈의 유통속도를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은행으로선 이자가 높아야 수익을 내고 싶은 마음에 돈을 빌려줄텐데, 이자가 워낙 낮으니 누가 부도날찌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빌려주기 보다는 차라리 그냥 가지고 있는 쪽이 속 편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출이 어렵다면 돈의 유통속도도 느려지겠죠.
그렇다면 지금 인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렸다 하더라도 이는 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데는 부족하고, 따라서 미국에서 나타난 디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지금 미국 국채 10년물에 인플레이션 방지 (inflation protection)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연1%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이는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앞으로 10년간 물가가 연1% 정도 오르는데 그치리라고 예상한다는 뜻이지요.
만약 지금 상황이 디플레이션의 시작이라면, 미국이나 일본의 예에서 보듯 앞으로 거의 10년간은 불경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썼지만, 디플레이션은 한 번 일어나면 없애기가 극히 힘듭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반대로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자리도 줄어들고, 따라서 많은 사람이 궁핌을 면하기 힘들죠. 미국의 1930년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아직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지금 상황이 결국은 장기불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사실 이보다 더 끔찍한 시나리오도 많기 때문에 장기불황은 그에 비하면 다행이긴 한데, 만약 장기불황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많은 사람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긴 합니다. 그리고, 미국도 1929년 주가폭락 이후, 1930년에 잠깐 주가가 반등했습니다. 만약 내년 쯤 이러한 반등이 온다고 해도 "불황 끝났네"하고 안심하지 마시고, 좀 더 장기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글
한국경제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1) - 투자승수 문제 (이론) SDE님
통화량이란 무엇인가? 세일러님 (카페 가입 필요)
[사고실험] 돈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면... lawfully님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파생상품의 위험 (3) | 2008/12/12 |
|---|---|
| LTCM이 남긴 교훈 (3) | 2008/12/10 |
|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전쟁 II (8) | 2008/12/09 |
| 이명박 정부의 경제 도덕주의 (10) | 2008/12/05 |
| 퍼펙트 스톰에 휩싸인 한국 (13) | 2008/12/03 |
| 추천 도서 (8) | 2008/12/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