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은행 (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자신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The Age of Turbulence)에서 2000년에 에딘버러에 있는 아담 스미스의 무덤을 찾아간 미국 경제학자가 맥주 캔과 쓰레기를 제거한 후에야 아담 스미스의 낡고 수수한 묘비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즉, 자본주의의 기초를 놓은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고국 스코틀랜드에서 조차 한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는 말이지요.

아담 스미스의 경제론은 당시 경제를 지배하던 중상주의 (Mercantilism)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중상주의는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을 국부의 핵심으로 보았고, 따라서 가능한한 귀금속을 본국으로 모아들여야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상주의자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부가 관세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당시 유럽 각국 정부는 국부를 늘이기 위해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이를 비판하며, "금과 은이 많은 나라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으로 대단히 많은 은을 얻었지만, 그 결과 은으로 대부분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기에 산업이 발달할 여지가 없었고, 결국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진정으로 부유한 나라는 국민이 효율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나라이고, 이러한 나라에서 정부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지 말고 시장에서 손을 떼야 경제가 더 잘 돌아가는 법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면서 19세기 유럽은 점차 정부가 규제를 풀고 시장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 (Laissez-faire) 정책이 대세로 자리잡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흐름은 뒤바뀌게 되고, 한동안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교과서에나 찾을 수 있는 과거의 이론으로 잊혀지죠.

자유방임 정책이 끝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된 중요한 계기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929년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시장은 마비되고, 많은 국민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주장은 쑥 들어가고, "정부는 빨리 시장에 개입해 시장을 살려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은 당연했죠. 이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수요가 부족하다면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경제이론을 내놓았고, 실제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해 공공사업을 벌여 대공황과 맞섭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정부의 시장 관리 기능은 더욱 강화되죠. 정부는 "노사 갈등으로 파업을 하면 생산성이 떨어져서 전쟁에 이기는데 불리하니, 파업을 금지하는 대신 적정한 임금을 정부가 보장하고, 물가도 안정시키겠다"며 임금과 물가를 통제합니다. 또한 기업이 마음대로 사업을 벌이다 시장이 교란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기업의 활동을 규제합니다. 이러한 정부의 시장개입 전통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대에도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하지만 비상시에 도입된 조치들로 평시의 경제를 이끌기엔 무리가 따랐습니다. 특히 점차 발전하는 컴퓨터, 통신 기술을 이용한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펼치려면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 했죠. 앨빈 토플러는 1970년에 발표한 저서 Future Shock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새시대가 오리라고 예견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나오게 되었는에 이러한 패러다임의 핵심은 "기득권과 규제를 없애고,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 무한경쟁을 펼침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아담 스미스가 주장했던 자유 시장 경제의 현대적 부활이지요.

1980년 로날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아담 스미스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파티를 했다죠 (Todd Buchholz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로날드 레이건이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에 기초한 정책을 펼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의 시장 규제를 줄이고 사회 각 분야의 경제를 강화하는 레이거니즘을 추구하고, 이는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의 대처리즘과 함께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노조의 힘이 줄어들고 (다른 말로 하자면, 노동자가 누리는 권리가 줄어들고),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정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 양극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죠.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신자유주의는 단기간 내에 사회 전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득권이라는 말은 본래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으로, 꼭 나쁜 뜻은 아닙니다. 국민이 정부를 비판할 권리도 국민의 기득권이고, 노동자가 노조를 형성할 권리도 노동자의 기득권이죠. 과거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기득권이 잘 보호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 폐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고, 어떤 집단이든 기득권을 주장하면 "기득권 세력"이라는 오명을 쓰고 국민 전체의 비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은 공무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월급은 작고 빠르게 승진하기도 힘들어 별로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이 가장 인기가 높은 직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이처럼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공무원의 근무여건이 대폭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대폭 악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대부분의 직장인이 10년전 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 (특히 정년 보장의 영역에서)에서 일을 하는데, 이에 대해 크게 불평하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 만큼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인식이 바뀐 것이죠.

노동자의 권리가 대부분 무시되면서 일반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악화되자, 사람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기득권이 정부에 의해 보장되는 몇몇 직업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등이 그러한 직업이죠. 하지만 모든 기득권을 없애려는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영역까지 침투해서, 요즘은 공무원 개혁 (즉, 공무원이 누리는 권리의 축소), 사법개혁 (변호사의 숫자를 늘임으로 경쟁을 강화) 등의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인기가 높은 직업이라 할찌라도, 몇년 안에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심한 경쟁 속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겠죠.

내일은 주식과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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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