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몰락

해외 2009/03/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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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얼마전 극장에서 더 레슬러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젊은 시절 꽃미남이던 미키 루크가 얼굴이 망가진 채 늙은 레슬러로 나온다고 해서 유명하죠.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미키 루크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방탕한 생활로 낭비한 것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한때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권투선수로 나섰다가 얼굴이 망가졌기에 이제는 정상적인 배역을 맡기가 힘들어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찌도 모르는 이 영화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인생의 경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그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운동을 통해 구원을 찾는다는 이 영화의 주제는 록키와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주인공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전통적인 구원은 1.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회복, 2. 큰 돈을 범 3. 불가능에 도전하여 멋있게 성공하거나 장엄하게 실패함 인데, 이 영화엔 이러한 모습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이죠. 더 레슬러의 주인공인 랜디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들 (딸, 사랑하는 여자)과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 마리사 토메이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 장면이 중요하죠),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관객들로부터만 사랑받습니다. 또한 그는 돈과 상관 없이 마지막 경기를 벌이기에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그가 마지막에 거두는 승리는 정정당당한 실력이 아닌, "미국이 이란을 이겨야 한다"는 각본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구원을 찾지 못하고 구원의 겉모습만 취하는, 매우 서글픈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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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일찌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영화의 소재인 프로 레슬링 자체가 매우 미국적인 오락이지요. 옛 이집트인들이 옆모습을 그를 때 조차 눈은 앞쪽을 향한 듯 크게 그렸던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머리속의 개념에 맞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입니다. "눈"은 옆으로 길어야 눈 답게 보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프로 레슬링이 현실적인 싸움의 모습이 아닌 머리속 싸움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각본이 없이 진짜 싸우는 격투기를 보면, 바닥에 넘어져 엉킨 상태에서는 상대방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팔을 매우 조금씩 밖에 휘두루지 못합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이런 싸움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기에 재미가 없죠. 이들이 원하는 싸움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근육질의 남성들이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날아다니면서, 마음껏 환상적인 기술을 보여주는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에서 좋은편은 질듯 하다가 이기고, 악한편은 이길 듯 하다가 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환상의 세계에서 미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으뜸이고, 아무리 늙고, 힘이 없고, 심장이 마비될 지경이라 할찌라도 악의 상징 이란을 쉽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이란을 상징하는 아야톨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랜디에게 기꺼히 져주는 것이죠. 문제는 한발짜국 떨어져 이러한 싸움을 본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레슬링 판에서 랜디가 아야톨라를 이기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석의 미국인들이 불쌍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1776년 독립을 선언했을 때, 미국인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지식인은 미국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유럽을 가르칠 것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남북전쟁 등 어려움을 겪긴 하였지만, 빠른 시일 내에 경제를 발전해 유럽보다 부유해졌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우뚝 섰습니다. 또한 냉전시대에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였기에, 지금도 미국인들은 미국 대통령을 "자유세계의 지도자" (Leader of the Free World)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미국인들은 마침내 미국의 시대가 왔다고 흥분했죠. 심지어 미국인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가 승리함으로 역사는 더 이상 발전할 곳이 없어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담은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대단히 역설적으로, 미국이 승리한 듯 보였던 1990년대는 미국이 지도력을 잃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죠. 80년대 전세계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봤다면, 90년대는 나이지리아부터 한국까지 각국에 문화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미국으로부터 문화적 독립이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또한 과거에 반미 감정은 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90년대 이후론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가 미국을 싫어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지도력이 위협당하는 가운데, 미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미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린든 존스 대통령 등이 부자의 특권을 제한하고 중산층을 육성함으로 골고루 잘사는 나라였는데,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과 더불어 부자는 극도로 부유해지고, 중산층은 점차 몰락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이러한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한 원인은 미국이 중국으로 부터 공산품을, 인도로 부터 서비스를 수입하면서 물가가 내려가 생활비가 적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봉착하면서 새로운 탈출구로 가계대출이 늘어났죠.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가난해도 가난한 줄 모르고 소비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문제를 은행빚으로 해결하려던 미국식 자본주의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미국의 모습이죠.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국가는 태어날때는 스토아 학파 (자신에게 엄격한 학파)이지만, 몰락할때는 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을 추구하는 학파)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19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인은 분명히 근검절약하고 책임감이 강한 모습이었는데, 오늘날의 미국인은 방향을 잃고 쾌락으로 마음의 공허를 채우는 모습입니다.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보이던 수십년 전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죠.

미국은 독립한지 200년 남짓한 젊은 나라지만, 세계 역사상 200년 이상 단일 체제가 유지된 공화국은 많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문명의 꽃을 피운 후 마케도니아에 정복당하였고, 고대 로마는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뀌었죠. 어찌 보면 미국이 겪는 홍역은 세계 역사에서 늘 보이듯 늙어버린 국가가 힘을 잃어가는 과정일찌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과연 미국의 미래는 무엇일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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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