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오늘 (12일)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위해 6조 원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민생대책을 살펴보면, 우선 기초생활보장, 긴급복지제도 수급자를 총 10만 가구, 20만 명 늘리고 (즉, 기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을 늘리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지만, 근로능력 없는 50만 가구, 110만 명에게 12-35만 원을 6개월간 지급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40만 가구, 86만 명에게는 6개월간 공공근로를 통해 월급 83만원을 주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인 20만가구 44만 명에게 주택 등을 담보로 생계비를 빌려주는 등의 내용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추경을 통해 5조 4천억원을 지원하게 됩니다.

지금 경제위기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정부에서 서민을 돕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다니 반가운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정부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기가 어렵군요. 우선, 이번 대책 발표는 철저히 민주당을 압박해 국회에서 추경안을 통과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만약 민주당이 추경안 통과에 협조를 안 해줘서 당장 추경안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6월부터 예정된 이번 대책을 집행할 수 없고, 많은 서민은 민주당을 원망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으로선 추경안 통과를 민주당에 강력하게 요구할 명분은 얻은 셈이지요.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추경안은 30조 원입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추경이기에 슈퍼 추경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추경에 대해 민주당은 "규모가 지나치게 많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30조 원 중 5조 4천억 원을 민생대책용으로 배정함으로 추경 전체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추경을 감당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국채가 많아지면 국채를 다 팔기가 어렵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국채금리가 올라가면 시중금리도 따라 올라가고, 이는 정부와 한은이 추진하는 저금리정책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국채를 채권시장에 팔지 않고 한국은행이 직접 사들일 경우, 시중에 자금이 너무 많이 풀려 물가가 올라갑니다. 지금 물가가 워낙 많이 오르는 중인데 추경 때문에 물가가 더 오른다면 국민의 생활고는 말할 수 없이 커지겠죠.

한국은 전통적으로 정부 재정이 대단히 안정된 나라입니다.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하지 않아서 정부가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경제 위기를 핑계로 돈을 많이 풀었고, 올해도 수십 조원 규모의 재정 적자를 일으킨다고 하니, 1년 만에 정부의 재정균형이라는 전통을 무너뜨리는 이명박 정부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대책이 서민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근로능력이 없는 가구에 6개월간 평균 2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는데,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집세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가가 이렇게 올랐는데 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 돈은 노동력이 없는 가정에만 주는데, 노동력이 없는, 따라서 수입이 없는 가정에 20만 원 남짓 쥐어 준다고 해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게다가 6개월 주고 말겠다니, 돕는 생색만 내겠다는 뜻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실직자에게 공공근로를 시키겠다는 것도, 지금 정부가 얼마나 미봉책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공공근로는 쉽게 말해 "돈을 주되, 그냥 줄 수 없으니 뭐라도 시키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잡초 뽑기나 쓰레기 줍기 등을 시켰는데, 사실 거의 의미가 없는 일이었죠. 이번엔 학교 담장 부수기 등을 시키겠다는데, 86만 명이 6개월간 일하려면 전국 학교의 담장뿐 아니라 교실까지 부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들은 당장 몇십 만원이라도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6개월 후에는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숫자는 줄이면서 인턴 숫자는 늘리겠다고 하는데, 청년 인턴제라는 것도 단기간의 해결책이지,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의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지금도 중소기업은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구직난의 핵심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이지, 일자리가 전혀 없는 현실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결국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몇 년간 놀더라도 좋은 직장을 찾길 원하죠. 이런 상황에서 6개월간 담장 부수는 일을 정부가 제공한다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면, 부자에 대한 세금을 늘려야죠. 그래야 적자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서민을 위한 진정한 사회복지제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부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깎아준 상태라 정부는 돈이 없고, 그렇다고 서민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어 빚을 내서 우선 미봉책으로 여론을 무마하겠다는 말인데, 결국 이번 정부가 진 빚은 언젠가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가 져야 할 부담입니다. 물론 경제가 어렵기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었다고 하겠지만,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회의 통합을 위해 강력하게 부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이렇게 생긴 돈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보장이라도 강화해 주길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신의 위험  (4) 2009/03/23
한국의 이야기  (4) 2009/03/18
정부의 민생대책, 서민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까?  (3) 2009/03/12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4) 2009/02/11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  (12) 2009/02/09
용산 철거민 참사를 보며...  (6) 2009/01/20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