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년전 프랑스에 살 때 일입니다. 제가 일하던 센터에 학생들이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명단을 보니 영국에서 알던 사람과 first name이 같은 학생이 보이더군요. 과연 내가 알던 사람이 명단에 나온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워낙 잠깐 만난 사람이라 first name 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에 맞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사람이 맞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그 이후로는 곧 올 학생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 며칠 후 보니 영국에서 봤던 그 사람이 맞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어떻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그리고 정말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맞출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근원을 알 수 없는 지식을 직관 (intuition)이라고 부르죠.
합리성이 지배하던 시대엔 직관이 무시당했고, 기껏해야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죠. 여성이 직관이 강하다는 인식도 남성이 우월한 합리성을 맡는 대신 여성에게 열등한 직관을 할당한 면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이성 (reason)의 독재가 끝나고, 요즘은 이성을 보완하는 직관의 역할에 대해 점차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직관의 지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심리학자 칼 융이었습니다. 그는 심리 유형 (Psychological Types)라는 책에서 이성, 감정, 감각과 함께 직관을 심리적 유형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그 후,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융의 연구를 기반으로 Me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를 개발하였고, 많은 교육 기관과 기업에서도 MBTI를 받아들이면서 융의 심리 유형이 대중화 되었기에 "나는 심리 검사 결과 직관이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물론 아직도 직관을 "근거 없는 망상"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직관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도 직관을 존중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경험 많은 성인이라면 마땅이 할 일"이라고 지적했죠. 예를 들어, 어떤 사업상의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이유 없이 찜찜하다면 이를 무시하지 말고 결정을 미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합리적인 시대였다면, "근거 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무시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겠지만, 이제는 합리성과 객관성이 유일한 판단의 근거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직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워낙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하고, 꼭 어떤 주장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칼 융은 인간의 영혼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나 (ego)와 함께, 무의식의 영역을 포함하는 자신 (Self)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무의식의 영역은 인류 전체가 연결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지요. 따라서 직관은 이러한 자신 (Self)의 영역에서 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티핑 포인트 등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좀 더 합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그는 블링크 (Blink)에서 카드 묶음 둘을 놓고 카드를 뒤집어 나오는 패에 따라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벌인 실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런데 한쪽 묶음은 돈을 많이 따고 적게 잃는데 비해, 다른쪽 묶음은 돈을 적게 따고 많이 잃도록 카드를 준비합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계속 카드를 뒤집다 보면 한쪽 묶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쪽만 뒤집겠죠. 그런데, 도박사들에게 이러한 실험을 시켜보면, 열 장쯤 뒤집다 보면 불리한 쪽 묶음에 손을 댈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고, 땀 분비가 증가합니다. 이들이 이성적으로 한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50장 쯤 뒤집은 후이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깨달은 것이지요.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직관은 곧 이성이 처리하지 못한 정보를 다른 경로 (몸?)로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블링크는 직관에 대해 흥미로운 예가 많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 재미는 있는데 결론이 똑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는데, 몇년 전 어느 나라에서 수영을 하는데 좀 더 깊은 쪽으로들어가고 싶었지만, 바다 속을 들여다 보니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냥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다 보니 내 눈 앞으로 작은 상어 한마리가 지나가더군요. 혹시 저도 그 때 상어가 물 속에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직관의 존재는 인간에게 인생과 세상의 신비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좁은 생각이 모든 진리를 안다고 고집하기 보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답이 세상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세상의 질서에 더 맞는, 진정으로 합당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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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해보면 어떻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그리고 정말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맞출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근원을 알 수 없는 지식을 직관 (intuition)이라고 부르죠.
합리성이 지배하던 시대엔 직관이 무시당했고, 기껏해야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죠. 여성이 직관이 강하다는 인식도 남성이 우월한 합리성을 맡는 대신 여성에게 열등한 직관을 할당한 면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이성 (reason)의 독재가 끝나고, 요즘은 이성을 보완하는 직관의 역할에 대해 점차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직관의 지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심리학자 칼 융이었습니다. 그는 심리 유형 (Psychological Types)라는 책에서 이성, 감정, 감각과 함께 직관을 심리적 유형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그 후,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융의 연구를 기반으로 Me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를 개발하였고, 많은 교육 기관과 기업에서도 MBTI를 받아들이면서 융의 심리 유형이 대중화 되었기에 "나는 심리 검사 결과 직관이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물론 아직도 직관을 "근거 없는 망상"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직관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도 직관을 존중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경험 많은 성인이라면 마땅이 할 일"이라고 지적했죠. 예를 들어, 어떤 사업상의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이유 없이 찜찜하다면 이를 무시하지 말고 결정을 미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합리적인 시대였다면, "근거 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무시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겠지만, 이제는 합리성과 객관성이 유일한 판단의 근거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직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워낙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하고, 꼭 어떤 주장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칼 융은 인간의 영혼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나 (ego)와 함께, 무의식의 영역을 포함하는 자신 (Self)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무의식의 영역은 인류 전체가 연결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지요. 따라서 직관은 이러한 자신 (Self)의 영역에서 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티핑 포인트 등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좀 더 합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그는 블링크 (Blink)에서 카드 묶음 둘을 놓고 카드를 뒤집어 나오는 패에 따라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벌인 실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런데 한쪽 묶음은 돈을 많이 따고 적게 잃는데 비해, 다른쪽 묶음은 돈을 적게 따고 많이 잃도록 카드를 준비합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계속 카드를 뒤집다 보면 한쪽 묶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쪽만 뒤집겠죠. 그런데, 도박사들에게 이러한 실험을 시켜보면, 열 장쯤 뒤집다 보면 불리한 쪽 묶음에 손을 댈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고, 땀 분비가 증가합니다. 이들이 이성적으로 한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50장 쯤 뒤집은 후이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깨달은 것이지요.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직관은 곧 이성이 처리하지 못한 정보를 다른 경로 (몸?)로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블링크는 직관에 대해 흥미로운 예가 많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 재미는 있는데 결론이 똑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는데, 몇년 전 어느 나라에서 수영을 하는데 좀 더 깊은 쪽으로들어가고 싶었지만, 바다 속을 들여다 보니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냥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다 보니 내 눈 앞으로 작은 상어 한마리가 지나가더군요. 혹시 저도 그 때 상어가 물 속에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직관의 존재는 인간에게 인생과 세상의 신비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좁은 생각이 모든 진리를 안다고 고집하기 보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답이 세상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세상의 질서에 더 맞는, 진정으로 합당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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