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위험

사회 2009/03/23 18:23
어느 심리학자가 하바드대학에서 MBA 과정 학생들에게 경매를 제안했습니다. 경매 물품은 현금 20달러인데, 경매 방식은 1달러 단위로 입찰을 하고, 1등은 자신이 부른 가격에 20달러를 얻지만, 2등은 자신이 부른 가격을 지불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조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1달러 부터 경매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12달러를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학생은 '이러다가 2등을 해서 돈을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경매를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경매를 포기하지 못하는 두 명이 꼭 남기 마련인데, 이 두 명은 지금 경매에서 1위를 하는 사람과, 바로 직전에 1등을 하던 사람입니다. 지금 1등을 하는 사람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위치이기에 포기할 이유가 없고, 직전에 1등을 하던 사람은 지금 경매가 끝나면 자신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포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A가 11달러를 부르고 B가 12달러를 불렀다면, A는 13달러를 부를 수 밖에 없고, 그러면 B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14달러를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A는 다시 손해를 피하기 위해 15달러를 부르고, 이런 식으로 경매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갑니다. 이러한 경매를 여러 번 실시했는데, 최고가는 204달러까지 올라갔다고 하는군요. 20달러를 얻기 위해 204달러를 냈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한 셈이죠. 만약에 20달러 경에서 깨끗하게 "내가 졌다"고 손을 털었다면 손해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바드대 MBA 학생이라면 경제감각이 뛰어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Ori Brafman과 Ram Brafman은 Sway라는 책에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헌신 (commitment)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헌신은 늘 희생이 적은 상황에서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경매에 참가한 학생들은 '만약 2등을 한다고 해도 몇 달러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고 경매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2등이 감당해야 하는 손해는 갈수록 커지고, 나중엔 손해를 피하려고 내린 결정 때문에 더 많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죠.

이처럼 손해를 보기 싫어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경제 활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손절매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실제로 주가가 떨어진다면 손절매를 하기 보다는 "곧 오를거야"라는 생각으로 주식을 계속 보유합니다. 주가가 더 떨어진다면, "조금만 다시 오르면 팔아야지"하는 생각으로 팔지 못하죠.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기약 없는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되는 것이죠. 아마 몇년 전 펀드 넣다가 큰 손해를 보고 지금까지 보유하신 분이라면 이런 심리에 쉽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손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 부동산 가격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호황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지난 1-2년간은 부동산 가격이 주춤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은 "최소한 내가 구입한 가격만큼 오르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심리로 물건을 내놓지 않는 중이고, 따라서 매수세도 없지만 매도세도 없기에 거래가 잘 안되는 중입니다. 만약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았다면, 경기 불황을 반영해 가격이 많이 떨어졌겠죠.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한 방향으로 헌신했다가 손해를 보는 예는 정치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The Great Society)를 만들겠다며 흑인의 인권을 신장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회보장을 실시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지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당시 북베트남은 워낙 군사력이 변변치 못하기에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죠. 따라서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포만 쏘고도 "미국은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를 섬멸하는 중이다"라고 자랑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베트남에 개입하게 되자, 전쟁은 점차 확대되었고, 미국은 특별한 명분이 없이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미국인들에게는 베트남에서 승리하는 중이라고 선전했는데, 갑자기 군대를 철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글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미군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도 어려웠죠. 결국 베트남전은 미국에서 대단한 논쟁을 일으키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재선 포기를 선언합니다. 쉽게 시작한 베트남전이 확대하면서, 헌신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자신의 대통령직을 망친 것이지요. 결국 미국은 닉슨 대통령때가 되서야 매우 부끄럽게 베트남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이처럼 국가관계에서 강경책을 쓰기 시작하면 결국은 전면전을 벌이거나 큰 수치를 당하고 나서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경책을 쓰기 전에는 여러 번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북한의 비위에 맞추려고 아양을 떠는 추태를 보였죠. 결국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 때문에 강대국 미국이 "깡패 국가" 북한한테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최근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직접 접근하면서, 보수 언론은 "북한에 끌려가면 안된다" "6자회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강경책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전면전을 벌일 것이 아닌 이상, 북한과 대치국면으로 몰고 가는 정책은 매우 위험합니다. 6자회담을 박차고 나오는 일은 매우 쉽지만, 그러고 나면 북한과 대화할 최소한의 자리조차 없어지는 셈이고, 결국 미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지요.

헌신은 늘 작은 희생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거래입니다. 끝까지 그 방향으로 갈 용기가 없다면, 헌신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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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