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직장인 처럼 주말이면 즐겁고 월요일이면 괴롭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죠.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한지 1년이 넘었지만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려면 늘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요즘 처럼 주중에 매일 글을 올리려면 늘 아이디어와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게다가 제가 쓰는 글은 딱 정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틀에 맞춰 글을 쓸 소재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에는 시간 날 때 글을 많이 써두었다가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미리 써놓은 글을 올리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저장했던 글을 읽어보면 영 신선한 맛이 없는게, 반쯤 상한 과일 같은 느낌이 나서 요즘은 좀 괴롭지만 매일 신선한 재료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 보면 매일 아침 맑은 정신에 당일 촬영 대본을 쓴다는 홍상수 감독의 정신을 이해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가 그분만큼 창조적이진 못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글이란게 노력만 한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영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감이 떠오르면 글이 술술 풀리고, 글이 술술 풀리면 읽는 사람도 술술 읽게 됩니다. 그에 비해 영감이 깃들지 않은 글은 왠지 어색하고, 쓰기도 읽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글의 소재가 산책을 할 때 떠오를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디오북을 들으며 산책을 하는 동안, 귀로 들리는 글의 내용에 동감이 되면서, 그 글에 이러 저러한 예를 덧붙이면 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흔하죠. 만약 바뻐서 산책을 못하는 날이면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몹시 고생을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은 예술가나 사상가는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해 자연 속으로 산책하며 음악의 영감을 얻었다는데, 물론 자연이 영감을 불어 넣기도 했겠지만,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도 창의력 발산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산책시간이 너무 일정해 그가 나타나면 농부들이 그를 기준으로 시계를 맞췄다죠. 그러고 보면 칸트가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도 꾸준한 산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걸어가다가 어떠한 문제를 골몰히 생각하게 되면 가만히 서서 생각을 계속했고, 심지어 그렇게 길에 서서 밤을 세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산책을 멈춰야 생각이 잘된 예라고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소크라테스는 길을 걷다 영감을 얻었기에 멈춰서 골몰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모든 창의적인 활동은 인간의 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을 "신들린 존재"라고 생각했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연기를 잘하면 "신들린 연기"라는 칭찬을 하죠. 이는 꼭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만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야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저는 건전하게 산책을 영감의 근원으로 들었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는 각종 마약을 영감의 기원으로 듭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도 마약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가 꽤 되죠 (60년대는 마약이 불법이라기 보다 하위문화의 정당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비틀즈도 마약 복용에 대해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창의적 활동에서 영감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에디슨이 대표적인 예인데, "천재는 99%의 땀 (perspiration)과 1%의 영감 (inspiration)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그의 말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엔 영어 글쓰기의 고전인 On Writing Well을 쓴 William K. Zinsser가 그러한 예인데, 그는 글을 쓸 때 영감을 구하지 않고, 일단 써 놓고 수십 번 고치는 방식으로 글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을 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라기 보다 기술이고, 글 쓰는 사람이 영감 운운하는 것은 사치이자 허영이지요. 이러한 태도는 특히 저널리스트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Zinsser도 저널리스트 출신이죠). 하긴 데드라인과 싸워야 하는 기자들이, "저 아직 영감이 안 떠오르는데요" 하는 핑계로 원고 마감을 미룰 수는 없을 테니 신입기자 시절부터 시간이 되기 전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결국 영감이 있든 없든 글을 쓰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죠.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유명한 기자 출신의 작가 김훈씨도 자신이 기자로 일할 때 혹독하게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어디선지 알 수 없는 근원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이러한 영감조차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훈련하면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하게 보이네요. 역시 인간은 신비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끝으로 이번 주도 마감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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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한지 1년이 넘었지만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려면 늘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요즘 처럼 주중에 매일 글을 올리려면 늘 아이디어와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게다가 제가 쓰는 글은 딱 정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틀에 맞춰 글을 쓸 소재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에는 시간 날 때 글을 많이 써두었다가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미리 써놓은 글을 올리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저장했던 글을 읽어보면 영 신선한 맛이 없는게, 반쯤 상한 과일 같은 느낌이 나서 요즘은 좀 괴롭지만 매일 신선한 재료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 보면 매일 아침 맑은 정신에 당일 촬영 대본을 쓴다는 홍상수 감독의 정신을 이해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가 그분만큼 창조적이진 못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글이란게 노력만 한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영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감이 떠오르면 글이 술술 풀리고, 글이 술술 풀리면 읽는 사람도 술술 읽게 됩니다. 그에 비해 영감이 깃들지 않은 글은 왠지 어색하고, 쓰기도 읽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글의 소재가 산책을 할 때 떠오를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디오북을 들으며 산책을 하는 동안, 귀로 들리는 글의 내용에 동감이 되면서, 그 글에 이러 저러한 예를 덧붙이면 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흔하죠. 만약 바뻐서 산책을 못하는 날이면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몹시 고생을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은 예술가나 사상가는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해 자연 속으로 산책하며 음악의 영감을 얻었다는데, 물론 자연이 영감을 불어 넣기도 했겠지만,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도 창의력 발산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산책시간이 너무 일정해 그가 나타나면 농부들이 그를 기준으로 시계를 맞췄다죠. 그러고 보면 칸트가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도 꾸준한 산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걸어가다가 어떠한 문제를 골몰히 생각하게 되면 가만히 서서 생각을 계속했고, 심지어 그렇게 길에 서서 밤을 세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산책을 멈춰야 생각이 잘된 예라고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소크라테스는 길을 걷다 영감을 얻었기에 멈춰서 골몰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모든 창의적인 활동은 인간의 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을 "신들린 존재"라고 생각했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연기를 잘하면 "신들린 연기"라는 칭찬을 하죠. 이는 꼭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만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야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저는 건전하게 산책을 영감의 근원으로 들었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는 각종 마약을 영감의 기원으로 듭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도 마약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가 꽤 되죠 (60년대는 마약이 불법이라기 보다 하위문화의 정당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비틀즈도 마약 복용에 대해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창의적 활동에서 영감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에디슨이 대표적인 예인데, "천재는 99%의 땀 (perspiration)과 1%의 영감 (inspiration)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그의 말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엔 영어 글쓰기의 고전인 On Writing Well을 쓴 William K. Zinsser가 그러한 예인데, 그는 글을 쓸 때 영감을 구하지 않고, 일단 써 놓고 수십 번 고치는 방식으로 글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을 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라기 보다 기술이고, 글 쓰는 사람이 영감 운운하는 것은 사치이자 허영이지요. 이러한 태도는 특히 저널리스트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Zinsser도 저널리스트 출신이죠). 하긴 데드라인과 싸워야 하는 기자들이, "저 아직 영감이 안 떠오르는데요" 하는 핑계로 원고 마감을 미룰 수는 없을 테니 신입기자 시절부터 시간이 되기 전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결국 영감이 있든 없든 글을 쓰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죠.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유명한 기자 출신의 작가 김훈씨도 자신이 기자로 일할 때 혹독하게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어디선지 알 수 없는 근원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이러한 영감조차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훈련하면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하게 보이네요. 역시 인간은 신비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끝으로 이번 주도 마감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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