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는 대학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익숙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이 바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었죠. 그는 장미의 이름이 성공한 후, "과연 내가 소설을 쓸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작가가 아닌 학자가 본업이었기에, 장미의 이름 만큼 그럴듯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실험적으로 써 본 소설이 "푸코의 진자"(Il pendolo di Foucault)였습니다. 이 작품이 다시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 그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는 그 이후로도 전날의 섬(L'isola del giorno prima), 바우돌리노(Baudolino),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La misteriosa fiamma della regina Loana) 등 많은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입니다.
학자였던 그가 이처럼 많은 소설을 창작한 비결은 우선 그가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중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학자였기 때문에 중세를 배경으로한 소설을 쉽게 쓸 수 있었고, 또한 기호학에 능통한 학자였기 때문에 이 소설을 열린 작품 (opera aperta)으로 구성할 수 있었죠. 즉, 그는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풍부하게 소유하였기에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부족한 창의성을 쥐어 짜내서 한 권을 겨우 쓰는 작가들보다 훨씬 출발이 수월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가 계속 소설가로 성공을 거둔 비결은 어쩌면 그의 서재 덕인지도 모릅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에서 에코의 서재에는 책이 3만권 있다고 말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보니, 에코는 집이 두 채인데, 한 집에 있는 서재에는 3만권, 다른 집에 있는 서재에는 2만권이 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책이 많으니 모르는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늘 지식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의 샘이 마르지 않는 것이죠.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기 원합니다. 만약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 밖에 없는 법이죠. 예술사를 보면 창의력을 계속 발휘하는데 실패한 예술가가 많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이라는 걸작을 내 놓은 J. 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성공을 거둔 후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하지 못하고 단편, 중편만 쓰다가 삶을 마감헀죠. 핀란디아를 써서 핀란드의 영웅으로 떠오른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젊은 시절 일곱 개의 심포니를 쓸 정도로 작곡을 많이 했지만, 생의 마지막 30년간 새로운 음악을 거의 쓰지 못하였습니다. 시, 희곡, 문학비평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T.S. 엘리엇은 나이가 많이 든 후 더 이상 심각한 시를 쓸 능력이 사라졌다고 합니다(그래서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처럼 쓴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는 나중에 뮤지컬 Cats의 원작이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 엘리엇은 재능을 잃은 후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셈입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은 젊어서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을 내놓고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되지만, 그 후 거의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만약 그가 젊은 시절처럼 창의적인 연구를 계속했다면 과학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움베르토 에코의 예에서 보듯,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첫 작품을 내놓을 때 얼마나 창의성의 여력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창의성이 부족한 예술가가 첫 작품에 지나치게 창의성을 쏟아놓고 만다면, 다음 작품을 만들 창의성이 없어서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창의성이 워낙 풍부해 첫 작품을 쉽게 작성했다면, 둘째 작품 부터는 창의성의 입력, 출력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창의성을 증진하는 활동 (독서, 여행 등)을 함으로 창의성이 줄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창의성을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창의력의 수위 조절을 잘 한다면, 오랜 기간 동안 창의성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첫 작품을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첫 작품을 끝내고 나면 창조가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즉, 인공위성도 궤도진입이 어렵지, 일단 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별 문제 없는 이상 계속 지구 주위를 돌 듯, 예술가도 일단 예술가가 되고 나면 비교적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10대 시절부터 엄청나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끊임 없이 쏟아낼 능력이 있었을까요? 또, 일가 친척의 돈을 모아 힘들게 영화를 만들던 젊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블록버스터의 아이디어 수십가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창조가 시작되고 난다면, 잘 관리하기만 해도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 보면 스티브 코비는 생산/생산능력 균형 (P/PC balance)에 대해 말합니다. 즉, 너무 생산만 하지 말고 생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창조적인 작업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자신의 창조적 생산능력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관리한다면, 창의성의 샘물은 바닥이 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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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였던 그가 이처럼 많은 소설을 창작한 비결은 우선 그가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중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학자였기 때문에 중세를 배경으로한 소설을 쉽게 쓸 수 있었고, 또한 기호학에 능통한 학자였기 때문에 이 소설을 열린 작품 (opera aperta)으로 구성할 수 있었죠. 즉, 그는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풍부하게 소유하였기에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부족한 창의성을 쥐어 짜내서 한 권을 겨우 쓰는 작가들보다 훨씬 출발이 수월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가 계속 소설가로 성공을 거둔 비결은 어쩌면 그의 서재 덕인지도 모릅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에서 에코의 서재에는 책이 3만권 있다고 말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보니, 에코는 집이 두 채인데, 한 집에 있는 서재에는 3만권, 다른 집에 있는 서재에는 2만권이 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책이 많으니 모르는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늘 지식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의 샘이 마르지 않는 것이죠.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기 원합니다. 만약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 밖에 없는 법이죠. 예술사를 보면 창의력을 계속 발휘하는데 실패한 예술가가 많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이라는 걸작을 내 놓은 J. 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성공을 거둔 후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하지 못하고 단편, 중편만 쓰다가 삶을 마감헀죠. 핀란디아를 써서 핀란드의 영웅으로 떠오른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젊은 시절 일곱 개의 심포니를 쓸 정도로 작곡을 많이 했지만, 생의 마지막 30년간 새로운 음악을 거의 쓰지 못하였습니다. 시, 희곡, 문학비평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T.S. 엘리엇은 나이가 많이 든 후 더 이상 심각한 시를 쓸 능력이 사라졌다고 합니다(그래서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처럼 쓴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는 나중에 뮤지컬 Cats의 원작이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 엘리엇은 재능을 잃은 후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셈입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은 젊어서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을 내놓고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되지만, 그 후 거의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만약 그가 젊은 시절처럼 창의적인 연구를 계속했다면 과학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움베르토 에코의 예에서 보듯,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첫 작품을 내놓을 때 얼마나 창의성의 여력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창의성이 부족한 예술가가 첫 작품에 지나치게 창의성을 쏟아놓고 만다면, 다음 작품을 만들 창의성이 없어서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창의성이 워낙 풍부해 첫 작품을 쉽게 작성했다면, 둘째 작품 부터는 창의성의 입력, 출력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창의성을 증진하는 활동 (독서, 여행 등)을 함으로 창의성이 줄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창의성을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창의력의 수위 조절을 잘 한다면, 오랜 기간 동안 창의성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첫 작품을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첫 작품을 끝내고 나면 창조가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즉, 인공위성도 궤도진입이 어렵지, 일단 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별 문제 없는 이상 계속 지구 주위를 돌 듯, 예술가도 일단 예술가가 되고 나면 비교적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10대 시절부터 엄청나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끊임 없이 쏟아낼 능력이 있었을까요? 또, 일가 친척의 돈을 모아 힘들게 영화를 만들던 젊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블록버스터의 아이디어 수십가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창조가 시작되고 난다면, 잘 관리하기만 해도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 보면 스티브 코비는 생산/생산능력 균형 (P/PC balance)에 대해 말합니다. 즉, 너무 생산만 하지 말고 생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창조적인 작업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자신의 창조적 생산능력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관리한다면, 창의성의 샘물은 바닥이 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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