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가격

경제 2009/04/20 22:16
오스카 와일드는 "냉소주의자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The cynic knows the price of everything and the value of nothing.)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러한 정의를 경제학자에게 적용합니다. 경제학자는 가격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경제학자가 단지 가격 뿐 아니라 가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 발달하던 초기에 경제학자들을 지배한 이론은, 제품의 가치는 노동에서 온다는 노동가치이론(Labour Theory of Value)였습니다. 리카르도부터 막스까지 수 많은 경제학자가 받아들인 노동가치이론은, 경제적 가치의 근원은 노동이고, 따라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의 양이 많을 수록 가치가 높은 제품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막스는 이 이론을 대단히 중요시했는데, 이는 그가 "노동이 가치의 근원이라면 경제체제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는 오직 노동자 뿐이고, 자본가와 지주는 노동자가 마땅히 얻어야 할 이익을 빼앗아간다"며 노동가치이론을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중요한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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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Wikipedia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는 한계효용이론을 내세워 노동가치이론에 맞섭니다. 한계효용이론이란, 어떤 제품의 소비가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은 엄청나게 유용합니다. 하지만, 물을 한 잔 마신 사람에게 다시 또 한 잔의 물을 준다면 그리 유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물을 한 잔 더 준다면 그는 물을 마시기 보다는 세수를 하는데 쓸 가능성이 더 크겠죠. 이처럼 재화나 서비스가 증가한다면 총효용은 어느 지점까지 계속 커지겠지만(예를 들어, 물을 한 잔만 가지는 것 보다는 물을 열 잔 가지는 것이 전체적으로 봐서는 더 유용하겠죠), 한계 유용성은 양이 증가할수록 줄어들기 마련입니다(예를 들어, 첫 번째 물 한잔은 너무도 유용했는데, 아홉 잔을 가진 상태에서 받는 물 한잔은 별로 유용하지 않은 것이죠).

한계효용이론은 가치의 중심을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놓았다는데서 대단히 혁명적이었고, 실제로도 한계혁명(the Marginal Revolution)이라고 불립니다. 이제는 생산자가 "이 제품은 만드는데 대단한 고생을 했으니 대단히 가치가 높다"고 말해봤자 의마가 없고, 소비자가 "이 제품은 내게 유용하니까 가치가 높다"고 말해야 의미가 있는 시대가 되었죠. 이처럼 경제의 주체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한 데는 한계효용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가격은 가치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즉, 가치가 높은 제품은 가격도 높고, 가치가 낮은 제품은 가치도 낮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에서 가격은 가치와 상관 없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가치는 천천히 변하지만, 수요와 공급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가치와 가격의 차이가 벌어질 때가 많죠. 예를 들어, 작년에 석유 가격은 급등 후 급락을 하였습니다. 석유를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력이나, 석유가 소비자에게 주는 한계유용성은 1년 사이에 얼마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은 급작스럽게 변했고, 이는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일으킨 것이죠. 이는 한국의 집값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집값은 지난 몇년간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그렇다고 집이 과거에 비해 몇 배나 유용해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경제상황에 따라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다 보니 집값이 지나치게 오른 것 뿐이었죠. 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돈의 가치가 급격히 변할 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은 가치를 가격으로 바꾸는 기준인데, 돈 자체의 가치가 급격히 변한다면(예를 들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돈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면), 제품의 가치와 상관 없이 제품의 가격이 크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격은 가치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올바른 투자는 가치에 비해 가격이 낮은 품목을 사들이는 것이겠죠. 이것이 바로 벤자민 그레이엄이 주창한 가치투자(Value Investing)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가격의 변동이 매우 심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올바른 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죠. 따라서 가격에서 거품이 빠지고 나면 위기도 끝이 나겠죠.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P.S. 독일에 잘 도착했고, 열심히 적응하고 있습니다.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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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