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치의 재림

정치 2009/05/25 17:52
많은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집권세력엔 두려움으로 작용했나 봅니다. 뉴스를 들으니 정부는 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부근을 경찰버스로 에워싸고 경찰들을 주둔시켰더군요.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셨던 분이 돌아가셨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정부 눈에는 이들 시민이 "잠재적 시위꾼"으로 보였나 봅니다. 하긴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말처럼, 실력도, 인기도, 정당성도 없으면서 살아 있다는 이점 하나로 버티는 사람은 죽은 사람조차 무섭기 마련이겠죠.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구호로 내세우고 집권했지만,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이념은 "공포"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자아내게 해서 정부의 정책에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지요. 정부는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우선, 도심에 전경버스를 배치하고 수많은 경찰을 주둔시킴으로 육체적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이는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대학 캠퍼스에 경찰을 주둔시킨 것 만큼이나 시민에게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 미네르바 구속에서 보듯,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법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는 이미 수많은 블로거가 블로그를 폐쇄했거나 비공개로 바꾼 데서 보듯 파급 효과가 큽니다. 세 번째, 강만수 장관, 어청수 청장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한동안 경질하지 않았던 예에서 보듯, 여론을 무시함으로 "정부를 위해 궂은 일을 한 사람은 정부가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정부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민과 대치하도록 격려하고, 국민은 "아무리 정부로부터 피해를 당해도 결국 나만 억울할 뿐이구나"라는 절망감에 빠지도록 합니다.

지금 상황은 70-80년대 군사정권 당시 정부의 공포 분위기 조성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당시 군사정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국민을 다스리는 유일한 길은 공포심 유발뿐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정부에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므로 많은 사람이 감히 정부를 비난하지 않도록 압박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고문은 없다고 하지만, 고문만큼이나 무서운 고소, 고발, 세무조사 등으로 사람들을 압박하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국민은 정부에 대해 비판하기를 겁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겁한 정책이고, 빨리 사라져야 할 정책이지 결코 정상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부는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따라서 국민은 정부를 비판할 권리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당시엔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루고자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버릴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이처럼 정당성에 자신이 있는 정부는 결코 공포정치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서유럽 대부분 국가도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고소, 고발을 통해 국민을 겁주는 예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이탈리아는 예외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는 이탈리아가 워낙 정치적 후진국이기 때문이고, 서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도 선거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정당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손님으로 초대받아 남의 집에 들어간 사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손님의 자격을 잃듯, 정당하게 선거로 뽑힌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는 순간 정당성을 잃기 마련입니다.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이 두렵고, 국민이 두려우면 국민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정책에 의존하기 마련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런 모습이고, 대한문 주위 봉쇄는 이러한 두려움의 표현일 뿐입니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떠나간 분이 아쉽고 그리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픈 마음뿐이죠. 그러한 애절한 마음을 무시하고, 끝까지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만에 하나 벌어질 시위의 가능성" 조차 제거해 버리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자신들이 정당하다면 아무리 많은 시민이 모인들 무엇이 겁나겠습니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워낙 국민의 뜻과 먼 정치를 펼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반정부 시위를 벌일 것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답답하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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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