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대선에서 세라 페일린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와 정통 보수층의 지지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던 존 매케인을 도우며 맹활약을 벌였습니다. 알래스카 출신인 페일린은 미국 본토의 보수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보수주의의 가치관(기독교, 가정중심, 동성애 반대, 백인 중심의 사고 등)을 그대로 재현해 냈기에 보수적인 유권자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페일린은 "작은 마을에 사는 미국인이 진짜 미국인이다."라는 말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죠. 미국 본토에서 떨어진, 매우 특수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 진짜 미국인을 논한다는 사실이 우습긴 하지만, 페일린 자신이 보여주듯, 정치적 경향만 놓고 본다면 알래스카 인들이 본토 미국인보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더 잘 반영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처럼 본토에서 떨어진 지역이 본토보다 더 본토의 전통적인 사고를 잘 계승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교포 중엔 한국의 70-80년대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막상 한국에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생각을 버렸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미국으로 떠나던 당시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간직하기 때문이죠. 또한,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90년대풍의 간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미적 감각이 한국을 떠난 당시 이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18세기 유럽 문화의 산물이고, 유럽이 18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로 넘어왔는데 비해, 미국은 여전히 18세기 유럽 문화의 전통을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예 중 하나가 바로 세계의 질서에 대한 믿음이지요. 18세기 유럽인들은 뉴턴의 물리학으로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조에 크게 영향을 받은 미국인들은 지금도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20세기에 물리학 혁명을 거치며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게 된 유럽인들은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죠.
이러한 철학적인 차이는 경제를 대하는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인들은 합리적으로 머리를 잘 쓰면 경제현상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즉, 더 훌륭한 수학 모델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남보다 더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이 낳은 열매는 Long Term Capital Management(LTCM)였습니다.
살로몬에서 arbitrage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 나와 차린 LTCM은 자신들이 시장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바로 어제 쓴 Random Walk Hypothesis 때문이었습니다. Random Walk Hypothesis에 따르면 시장의 움직임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따라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현상의 확률을 계산하는 수학의 모델을 쓴다면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하지만, LTCM의 생각과 다르게, 시장은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팔자" 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공황 심리가 퍼지면서 모두가 팔자에 나서기 마련이죠. 즉, 동전을 던질 때는 한쪽 면만 계속 나올 확률이 극히 낮지만, 시장은 모두가 팔자에 나설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것이죠. 다른 말로 하자면, 무작위로 벌어지는 현상은 극단적인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은 거의 바닥에 붙은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경제현상에선 극단적인 경우가 가끔은 발생하기 때문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이 바닥에서 뜬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를 fat tail이라고 부르죠.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LTCM의 믿음은 현실을 볼 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주가가 20% 이상 떨어진 1987년의 Black Monday는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가설에 따르면 우주 역사에 한 번 있음 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주식의 역사에선 이렇게 주가가 급격히 떨어진 예가 종종 나타나죠. LTCM의 두뇌들은 이처럼 분명한 사례를 알면서도 자신들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LTCM의 종말을 불러온 러시아의 부도 사태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LTCM은 복잡한 계산 끝에 러시아의 부도를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으리라는 쪽에 큰 돈을 베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를 구제할지는 수학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는 정치적 고려의 영역이고, 심리학의 영역이기에 수학적 확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맹신하고 러시아에 투자했고, 그 결과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시장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미국인의 태도와 대조를 이루는 태도를 우리는 조지 소로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로스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이고 영국의 명문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전형적인 유럽의 유대계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펀드 이름을 Quantum(양자) Fund라고 지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핵심적인 불확정성 원리는 그의 투자철학에 기반을 제공해주었죠. 그는 시장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예상하지 않고,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게 움직이리라고 예상합니다. 따라서 시장이 급격한 혼돈에 빠질 때 시장에 들어가 큰돈을 벌고 나오는 방식으로 투자하길 좋아하죠.
어제 합리적인 경제관에 도전하는 세 명(나심 니콜라스 탈렙, 브느와 만델브로, 조지 소로스)를 언급했는데, 생각해보니 세 명 모두 유럽인, 또는 유럽계네요(탈렙은 그리스계 레바논인, 만델브로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 그에 비해 LTCM은 앵글로-색슨계가 주류를 이루는 금융회사였습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는 경제관의 차이를 낳았고, 경제관의 차이는 각각 다른 주장을 낳았죠. 작년 경제 위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합리적인 경제관이 경제계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작년 가을 이후로는 이러한 경제관이 설득력을 많이 잃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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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본토에서 떨어진 지역이 본토보다 더 본토의 전통적인 사고를 잘 계승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교포 중엔 한국의 70-80년대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막상 한국에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생각을 버렸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미국으로 떠나던 당시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간직하기 때문이죠. 또한,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90년대풍의 간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미적 감각이 한국을 떠난 당시 이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18세기 유럽 문화의 산물이고, 유럽이 18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로 넘어왔는데 비해, 미국은 여전히 18세기 유럽 문화의 전통을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예 중 하나가 바로 세계의 질서에 대한 믿음이지요. 18세기 유럽인들은 뉴턴의 물리학으로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조에 크게 영향을 받은 미국인들은 지금도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20세기에 물리학 혁명을 거치며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게 된 유럽인들은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죠.
이러한 철학적인 차이는 경제를 대하는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인들은 합리적으로 머리를 잘 쓰면 경제현상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즉, 더 훌륭한 수학 모델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남보다 더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이 낳은 열매는 Long Term Capital Management(LTCM)였습니다.
살로몬에서 arbitrage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 나와 차린 LTCM은 자신들이 시장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바로 어제 쓴 Random Walk Hypothesis 때문이었습니다. Random Walk Hypothesis에 따르면 시장의 움직임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따라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현상의 확률을 계산하는 수학의 모델을 쓴다면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하지만, LTCM의 생각과 다르게, 시장은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팔자" 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공황 심리가 퍼지면서 모두가 팔자에 나서기 마련이죠. 즉, 동전을 던질 때는 한쪽 면만 계속 나올 확률이 극히 낮지만, 시장은 모두가 팔자에 나설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것이죠. 다른 말로 하자면, 무작위로 벌어지는 현상은 극단적인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은 거의 바닥에 붙은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경제현상에선 극단적인 경우가 가끔은 발생하기 때문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이 바닥에서 뜬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를 fat tail이라고 부르죠.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LTCM의 믿음은 현실을 볼 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주가가 20% 이상 떨어진 1987년의 Black Monday는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가설에 따르면 우주 역사에 한 번 있음 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주식의 역사에선 이렇게 주가가 급격히 떨어진 예가 종종 나타나죠. LTCM의 두뇌들은 이처럼 분명한 사례를 알면서도 자신들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LTCM의 종말을 불러온 러시아의 부도 사태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LTCM은 복잡한 계산 끝에 러시아의 부도를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으리라는 쪽에 큰 돈을 베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를 구제할지는 수학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는 정치적 고려의 영역이고, 심리학의 영역이기에 수학적 확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맹신하고 러시아에 투자했고, 그 결과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시장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미국인의 태도와 대조를 이루는 태도를 우리는 조지 소로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로스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이고 영국의 명문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전형적인 유럽의 유대계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펀드 이름을 Quantum(양자) Fund라고 지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핵심적인 불확정성 원리는 그의 투자철학에 기반을 제공해주었죠. 그는 시장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예상하지 않고,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게 움직이리라고 예상합니다. 따라서 시장이 급격한 혼돈에 빠질 때 시장에 들어가 큰돈을 벌고 나오는 방식으로 투자하길 좋아하죠.
어제 합리적인 경제관에 도전하는 세 명(나심 니콜라스 탈렙, 브느와 만델브로, 조지 소로스)를 언급했는데, 생각해보니 세 명 모두 유럽인, 또는 유럽계네요(탈렙은 그리스계 레바논인, 만델브로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 그에 비해 LTCM은 앵글로-색슨계가 주류를 이루는 금융회사였습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는 경제관의 차이를 낳았고, 경제관의 차이는 각각 다른 주장을 낳았죠. 작년 경제 위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합리적인 경제관이 경제계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작년 가을 이후로는 이러한 경제관이 설득력을 많이 잃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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