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억류 문제로 꼬여 있던 북미 관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이에 따른 여기자들의 석방으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원래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북한을 방문하려고 노력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루어졌는데, 여기자의 석방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문을 개인차원으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이번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미국으로선 북한과 대치해보았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대치의 끝은 결국 전쟁인데, 이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다 뒷감당이 안돼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는 미국 정부가 섣불리 무력 사용을 검토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아직 어려운 상황에서 동아시아라는 중요한 경제권이 불안에 빠지길 원하지도 않겠죠. 게다가, "못된 놈들은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응징해야 한다."라는 조지 부시 식의 강박관념이 없는 오바마로선 미국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한 북한을 잘 길들여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따라서 북한이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미국은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설 마음이 많은데,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 정부가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겠죠.

북한 정부도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혼자서 "미제 원수"와 전쟁을 벌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고, 북한 지도층은 미국을 적대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북한 정부에게 남은 일은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전까지 나라가 망하지 않게 잘 버티는 일인데, 이를 위해선 미국의 물자 제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핵무기를 활용해서 협상을 통해 최대한 도움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미국과 친구가 되지 말란 법도 없죠.

문제는 남한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려고 일부러 햇볕정책의 반대인 먹구름 정책을 펼쳤는데, 대북 관계에 먹구름이 끼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보는 눈초리가 달라졌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외교는 주도권이 중요한데, 하도 북한과 대치에만 치중하다 보니 북한과 관련해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위치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개성공단 문제,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문제 등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북한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보수적인 여권 정서상 이러한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죠.

문제는 아무리 한국 정부가 인상 팍 쓰고 북한과 미국을 째려봐도, 북한과 미국은 앞서 쓴 이유 때문에 언젠가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싸우면 손해고, 친해지면 이득인데, 어떻게 대치 상태가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남한의 보수층을 주도하는 세력은 6.25때 북진통일을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인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분들은 북한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 북한 정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거든요. 하지만, 북한이 정말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남한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다 떠나면서 97년 외환위기 이상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를 알기에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도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보수층 핵심세력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자꾸 보수 언론을 동원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는 식으로 훈수를 둔다는 점이죠. 이분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 대해서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고 참견합니다. 거 참, 오바마 정부가 조중동 구독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 잉크는 낭비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어쨌든 북한과 미국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의 이익을 좇아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북한과 한 민족인 남한이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혀서 아직도 북한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통미봉남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을 배신하고 북한과 가까워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층 지도자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한다면 이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열심히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북한은 자원이 풍부하고, 언어가 통하는 저렴한 노동력을 갖추었기에 경제적인 면만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인도적인 면을 보더라도, 이렇게 우리와 가까운 곳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지켜만 본다면 부끄러운 일이겠죠. 부디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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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