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의미

문화 2009/08/18 05:10
저는 요즘 휴가 2주차를 맞아 매우 느긋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고, 같은 공간에 살면서 때로 이메일로 업무도 보고 하기에 완전히 휴가 기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매우 가볍네요. 다음주까지 휴가를 즐기고 나면 9월부터 바빠질 일정에 대비할 활력이 비축되리라고 봅니다.

유럽에서 일하다 보면 유럽 사람들은 휴가에 대해 거의 종교적 열정을 낸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사는 사람도 여름이 되면 한달 정도 일정으로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떠납니다. 심지어 돈이 별로 없거나 빚에 허덕이는 사람도 휴가 만큼은 꼭 가더군요. 휴가를 안가거나, 가봤자 1주일 남짓하게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살던 저로선 잘 이해가 안되지만, 뭐 제가 남의 휴가를 가지 말랄 것도 없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겠죠.

유럽인들은 여름 휴가가 한달 정도로 길 뿐 아니라, 평소에도 주말이 이틀 반 정도로 깁니다. 제가 일하는 센터도 금요일 점심식사 후 대청소를 하고, 오후 세시면 차와 케익을 함께 먹은 후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야 업무가 시작되니 주말이 상당히 여유롭지요. 프랑스는 주간 35시간 노동이 법적인 기준인데, 이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나흘을 일한 후, 닷세째(금요일)는 세시간만 일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프랑스 노동자가 35시간만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동시간이 국가의 기준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분위기와 정반대인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은 원래 평균 노동시간이 긴 나라인데, 90년대 후반부터 노동환경이 악화하면서 근로시간이 더 늘어났고, 이제는 아홉시 전에 퇴근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주변에서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 저녁 아홉시에 퇴근한다면 하루 13시간 일하는 것이고, 닷세 동안 65시간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거의 프랑스 기준 시간의 두배 가까운 노동시간이지요.)

한국 정부는 몇년 전에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주5일제를 추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주5일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토요일을 쉬는 대신 평일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고, 직장인들은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며 재충전을 하기 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토요일 새벽부터 학원에 나가거나,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진심이 담기지 않은 주5일제는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이죠.

물론 지나치게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럽은 휴일, 휴가가 많다 보니 툭하면 가게 문을 닫아 놓아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럽만큼 부유하지 않은 나라라면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삶을 보면 너무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삶의 리듬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해의 움직임이 계절을 낳고, 달의 움직임이 조수간만의 차를 낳듯, 자연엔 거대한 리듬이 존재합니다. 자연속에 사는 인간은 그러한 리듬을 따라 살 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땡볕이 내리쬐고 곡식이 여물어가는 여름에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했지만, 논밭이 눈으로 덮히고 동물이 동면하는 겨울이면 일을 멈추고 사랑방에 모여 앉아 이웃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른바 농번기와 농한기의 순환이었죠. 하지만 기계가 생산을 주도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자도 기계처럼 밤낮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은 "자연의 리듬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지식 사회가 도래하고,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이 아닌, 창조적인 인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휴식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영화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 처럼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나사만 조이는 작업을 하려면 많은 휴식이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적절한 양의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창조는 정신적 소모가 큰 작업인 만큼, 창조적 작업이 끝나고 나면 긴장을 풀어야 다시 창조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는 법이죠. 그래서 배우, 가수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작업과 휴식을 번갈아가며 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주말에 잘 쉬어야 한주간 글을 쓸 소재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말에도 글을 쓴다면 소재를 소비만 할 뿐, 개발할 여유가 없기에 블로그 운영을 오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휴가는 단지 시간의 낭비가 아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자신을 정비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기간 동안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도록 권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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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