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름이 없는 "재야인사"였습니다. 서슬이 퍼렇던 5공화국 당시, 정부는 언론이 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못하도록 검열했고, 따라서 언론은 그를 "재야인사"라고 둘러 부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정부가 수많은 정치인 중 그만 이처럼 탄압한 이유는 그의 정치적 파괴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고, 많은 사람은 부정투표가 없었다면 그가 선거에서 이겼으리라고 판단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존재를 군사독재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죠. 1971년 대선이 끝난 직후,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는 평생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을뻔했고, 1980년에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수많은 투옥과 고문, 정치적 핍박을 이겨내었기에 "겨울을 이겨낸 풀"이라는 뜻의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명답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부도상태인 국가 경제를 물려받아 이른 시일 내에 정상화했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힘썼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린다는 판단이 서자 과감하게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하였고, 국민에게 독재의 위험을 경고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은 그가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이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경향을 보고만 있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 나이의 나도 무언가 하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꾸짖을 만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남긴 업적과 잘못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가 너무 빨리 경제를 살리려고 무리한 정책을 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당시 상황이 느긋한 정책을 펼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해 보입니다. 그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기에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최소한 그가 자신을 지지해준 서민들을 마음으로 배신하지는 않았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현실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모든 사람을 일깨우는 경구입니다.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정치 이야기를 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는데, 논란이 두려워 글조차 쓰지 않는다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올해 들어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의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단지 이분들을 추모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분들처럼 훌륭한 유산을 남기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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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많은 정치인 중 그만 이처럼 탄압한 이유는 그의 정치적 파괴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고, 많은 사람은 부정투표가 없었다면 그가 선거에서 이겼으리라고 판단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존재를 군사독재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죠. 1971년 대선이 끝난 직후,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는 평생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을뻔했고, 1980년에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수많은 투옥과 고문, 정치적 핍박을 이겨내었기에 "겨울을 이겨낸 풀"이라는 뜻의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명답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부도상태인 국가 경제를 물려받아 이른 시일 내에 정상화했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힘썼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린다는 판단이 서자 과감하게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하였고, 국민에게 독재의 위험을 경고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은 그가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이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경향을 보고만 있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 나이의 나도 무언가 하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꾸짖을 만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남긴 업적과 잘못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가 너무 빨리 경제를 살리려고 무리한 정책을 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당시 상황이 느긋한 정책을 펼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해 보입니다. 그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기에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최소한 그가 자신을 지지해준 서민들을 마음으로 배신하지는 않았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현실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모든 사람을 일깨우는 경구입니다.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정치 이야기를 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는데, 논란이 두려워 글조차 쓰지 않는다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올해 들어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의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단지 이분들을 추모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분들처럼 훌륭한 유산을 남기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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