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DNA

문화 2009/09/04 06:17
어제는 몸이 안 좋아 비타민C를 먹었는데, 평소에도 목에 잘 걸리더니 몸이 안 좋아 그런지 반쪽으로 쪼개도 넘어가질 않아 결국 네 쪽, 다섯 쪽으로 쪼개서 먹었습니다. 제가 목구멍이 좀 작긴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비타민C는 기껏해야 두 쪽으로 쪼개면 넘길 수 있었는데, 역시 유럽 알약이 크긴 크더군요. 인터넷에도 미국이나 유럽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목에 걸린다는 글이 올라오던데,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미묘한 신체적 차이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에 인도에 갔을 때 리바이스 청바지가 싸기에 입어보니 묘하게 허벅지가 끼는 것이 영 불편했습니다. 치수를 바꿔가며 몇 개 입어봤는데 모두 불편하게 느껴지기에 포기하고 안 샀는데, 나중에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래 한국 사람이 인도에서 만든 청바지를 입으면 안 맞는다고 합니다. 면바지는 그럭저럭 입을 수 있지만, 청바지는 신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형의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외국 사람이 한복을 입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복은 한국인의 체형을 바탕으로 한 옷이기에, 외국 사람이 입으면 영 이상하게 느껴지죠. 그에 비해 한국 사람은 아무리 체형이 서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양 사람보다는 한복을 잘 소화해냅니다. 이는 명절에 한복 입고 나오는 연예인만 봐도 알 수 있죠.

민족의 신체적 특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서 북미 원주민까지 몽골계통의 아시아인은 몽고반점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보입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 사는 바스크인들은 겉으로는 유럽인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다른 유럽인들과 전혀 다르고, 이를 볼 때 조상이 다른 지역에서 왔으리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의 차이는 바스크인 중 Rh-형이 35%나 발견되는 등 유럽인과 혈액형 비율이 전혀 다르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죠. 전통적으로 우유를 마시지 않은 한국인들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Lactase deficiency)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높습니다. 알레르기가 현대식 생활의 결과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인종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백인은 주로 음식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데 비해, 한국인은 피부에 나타나는 알레르기 증상인 아토피가 많습니다(구글에서 영어로 atopy를 검색하면 50만 개의 결과가 나오는데, 한글로 아토피를 검색하면 2백만 개 이상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아토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말이죠).

민족 간의 신체적 차이는 남녀 간의 차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라틴계통의 민족들은 남자는 남성스럽고, 여성은 여성스럽게 보입니다. 이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각각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은 그렇게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죠. 이러한 신체적 차이는 문화의 차이를 낳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라틴문화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치근덕대는 것이 매우 일상적입니다. 라틴계통의 여자들은 지극히 여성적으로 옷을 입고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에 비해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가 크지 않은 문화에서 여자가 레이스 달린 꽃 치마 등 지극히 여성적인 옷을 입거나, 가정주부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가 성적 자극에 민감하기에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는 몸매의 여성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은 한국에서는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남자도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면 턱이 각지고, 목소리가 굵고, 몸에 털이 많기 마련인데, 이런 남자도 한국에는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가 한국인의 신체를 바탕으로 발전했기에 지금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성의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미인은 단아하게 아름다운데, 지금도 한국 연예계의 대표미인 중에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많죠.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은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여성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이러한 한국인의 미인관을 이해해야 왜 90년대에 맥 라이언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신디 크로퍼드나 파멜라 앤더슨은 한국에서 인기가 전혀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는 사람은 한국에서는 부담스러운 느끼한 남자일 뿐입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자는 지나치게 남성성이 강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의 꽃미남이죠.

문화는 환경을 만들지만, 환경도 문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환경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고, 인간의 몸은 DNA가 결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DNA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다양한 문화를 DNA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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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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