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는 분은 제가 쓰는 글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미 아실 것입니다. 글의 분량이나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이 마치 틀에 찍어낸 듯 유사하죠.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의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작가라면 주제에 맞게 어떤 글은 길고, 어떤 글은 짧게, 어떤 글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애매하게 끝내기도 하면서 변화를 주겠지만, 이렇게 형식을 바꿔가면서 글을 쓰려면 너무 고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글쓰기에 편한 형식을 정해놓고, 글의 내용만 바꿔가며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놓은 형식 중 하나는 시작할 때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되는 일화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는 DNA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낳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글의 시작은 유럽에서 구입한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몇 쪽으로 나눠 삼켰다는 일화입니다. 글의 주제는 추상적이지만, 도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라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통적인 글쓰기였다면 "세계에는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각 민족은 문화뿐 아니라 신체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인은 체구가 클 뿐 아니라 목구멍도 큽니다..."라는 식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글은 과거에는 글쓰기의 모범이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이렇게 썼다가는 구독자들이 다 떠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글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지나치게 객관적이라 더 읽을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죠.

현대인은 정보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돈을 많이 줘야 정보를 구할 수 있었기에 정보가 귀중했지만, 오늘날엔 인터넷에서 이미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기에 누가 막연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보가 구체적인 사람의 삶에 연결된 모습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터넷에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땀이 느껴지는 진실한 글이 많기 때문이죠. 만약 정말 귀중한 정보만 원한다면 무료로 고전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독자가 원하는 글이 바뀌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솔한 글을 써야 독자와 교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자들은 글을 가면 삼아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가린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기에 플라톤의 글에 나오는 철학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인지 플라톤의 생각인지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교과서 같은 책을 썼기에 그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의 사생활은 알 수가 없습니다. 칸트, 헤겔 등 위대한 사상가들도 사생활과 분리된 글을 쓰는데 능했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이러한 저자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발표되는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났을 뿐이죠.

하지만, 점차 정보가 많아지고, 특히 보편교육이 도입되어 국민 대부분이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과거에 생활고에 쫓겨 국민학교도 나오기 어려웠던 시절엔 혼자서 밤에 공부하면서도 희열을 느꼈지만, 억지로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을 끝내게 된 사람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많은 정보가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일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인간관계가 점차 약화하고, 인간-인간의 만남이 인간-미디어-인간의 만남으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길 갈망했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부분 철저한 연출을 따른 꾸며진 모습이기에 현실과 달랐기 때문이죠.

이러한 대중의 갈망은 스포츠와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처럼 꾸미지 않아도 극적입니다. 선수들이 승리하고, 패배하며, 실수를 저지르고, 그러한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진실성(authenticity)을 보았고, 여기서 매력을 느꼈죠.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처럼 스포츠가 인기를 끈 적은 없었다는 사실과 20세기는 미디어가 대중의 삶에 침투한 시기라는 사실은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리얼리티 쇼로는 미국의 American Idol, 영국의 Big Brother, 프랑스의 Star Academie 등이 대표적인 예죠. 엄밀히 말해 리얼리티 쇼도 연출이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드라마처럼 완전히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형 리얼리티 쇼인 "우리 결혼했어요"는 유명인 중심이고, 실제 상황(상을 받기 위한 경쟁 등)이 아닌 가상의 결혼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국의 유명 리얼리티쇼와 다릅니다. 어쩌면 이는 한국이 서양 국가들보다 미디어가 생활에 들어온 역사가 짧고, 따라서 서양인처럼 "진실한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은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라는 기이한 장르를 낳았습니다.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룬 The Office(원래 영국에서 만들었지만 미국판이 더 유명해짐)나 뉴질랜드 청년들의 뉴욕 적응기를 다룬 The Flight of the Conchords(오자 아님), 사인펠드 쇼를 만든 래리 데이비드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Curb Your Enthusiasm 등이 그러한 예죠. 리얼리티 쇼의 매력은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인데,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는 드라마이기에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현대인은 드라마조차 리얼리티 쇼 같기를 원합니다. Lost 등을 만든 J.J. Abrams 감독의 영화 Cloverfield도 현실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라는 점에서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와 공통점이 보이죠.

미디어의 현실왜곡에 질식된 현대인이 미디어를 통해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모습은 매우 모순적입니다. 정말 현실을 보고 싶다면 TV를 끄고 가족,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죠. 하지만, 현대인은 미디어 없이는 살 수가 없기에 미디어를 통해 현실의 환상을 찾습니다. 과연 현대인이 TV와 영화, 인터넷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 주엔 스위스에 회의를 다녀오느라 글을 못올릴 것 같습니다. 많은 양해 바라고, 9월 14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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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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