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드디어 끝나가는 징후가 보입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에 세계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한국 경제에도 훈풍이 부는 모습입니다. 한때 환율과 주가 역전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주가가 1,700선을 돌파하고, 환율은 1,200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점차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는 소식도 집을 사려는 사람에겐 나쁜 소식이지만,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미국의 부동산 가격 급락 때문이었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부동산 대출을 해준 금융권의 부실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신문에는 "몇 년 만에 추석 분위기가 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실물경기까지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이 정도면 경제위기는 이미 다 끝난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경제상황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주가와 환율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은 경기부양정책 때문에 돈이 넘쳐나는데 금리는 낮아서 투자처를 찾아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이렇게 달러가 들어오니 환율이 내려가고, 이렇게 들어온 돈이 주식 시장에 들어가니 주가가 오르는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현상입니다. 게다가, 거래량이 워낙 적으니 지금 거래가는 실제 경기상황의 반영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경기가 살아났다."는 보도도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소비를 유도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물경제의 상황은 언론을 믿기보다 여러분이 직접 주변을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말로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는다면 투자와 소비가 늘면서 경제가 정말 살아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심리만 바뀐다면, 겉 자란 보리가 겨울 추위에 얼어 죽듯 투자와 소비에 나섰던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결국 경기 회복은 더욱 늦어질 것입니다.

저는 작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이번 경제 위기가 10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고, 지금도 이러한 전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언론과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전망을 하여도, 실제 경제가 살아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경제위기는 나름대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한계기업이 대부분 부도가 났고, 수익률이 좋은 기업만 살아남으면서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돈을 빌리지 못해 고생한 기업들은 엄청난 현찰을 쌓아 놓게 되었고, 이 덕분에 위기대처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경제위기의 또 다른 긍정적인 작용은 성장잠재력이 큰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 9/11사태로 항공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많은 항공사가 인원절감에 나서자 당시 생겨나기 시작한 저가항공사들은 저렴한 인건비로 유능한 조종사를 많이 채용했고, 그 결과 지금은 저가항공사가 대형항공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는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도 못했고, 작은 기업이 좋은 자산을 저가에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지도 못했습니다. 즉, 각국 정부가 위기를 넘기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기침체의 긍정적인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경제위기의 또 다른 순기능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불황기에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고, 1970년대의 불황은 반대로 정부가 가격, 임금 통제로 경제에 간섭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말 경제위기가 터지자 진정으로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막상 1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나왔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가 않습니다. 즉,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은 없이, 정부가 돈을 푸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돈을 풀어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는 개념은 이미 그린스펀 의장이 90년대부터 열심히 쓰다가 이번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개념에 의지한 해결책이 진정한 해결책일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은 이번 위기가 빠르게 정리되고 호황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과 현실을 혼동하면 안 되겠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지난주부터 훈련 과정이 시작되면서 매우 바쁜 일정이 진행 중입니다. 꼭 시간이 없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해 글을 자주 쓰기가 어렵네요. 어쨌든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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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