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코스트너는 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수많은 히트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인기 배우였습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였을 뿐 아니라 늑대와 춤을(Dancing with the Wolves)이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맡을 만큼 재능 있는 영화인이었죠.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의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은 왕년의 스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톰 크루즈가 아직도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한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그의 인기하락은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인기를 끌었던 원인은 그가 헨리 폰다나 그레고리 펙처럼 미국인의 긍정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언터처블(The Untouchables),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보디가드(The Bodyguard) 등에서 양심적이고, 예의 바르고, 정의를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무력을 쓰는 케빈 코스트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에게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에 나온 퍼펙트 월드(Perfect World)를 기점으로 그는 훨씬 어둡고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기 시작합니다. 클린턴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범죄자로 나옵니다. 물론 그가 유괴한 아이와 애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전형적인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블록버스터 주연을 맡던 배우의 배역치고는 지나치게 어둡고 폭력적이었죠. 1995년에 나온 워터월드(Waterworld)는 코스트너의 변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육지가 거의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매우 차갑고 계산적인 인물을 연기합니다. 그는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여자를 학대합니다. 물론 나중엔 여자와 아이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늦게 나오기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극 중간까지 보인 차가운 인물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선한 이미지를 버리고 차갑고 어두운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흥행배우로서 그의 가치는 크게 손상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한 모습은 약자를 보호하고 악당을 징벌하는 정의의 심판자인데, 그는 지나치게 어둡고(Mr. Brooks에서 그는 살인충동에 시달리는 역할로 나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Open Range에서 그는 총에 맞아 쓰러진 적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다가 주변 사람의 만류로 포기합니다. 도덕심이 보통사람만도 못한 것이죠), 때로는 완전히 악의 편에 서기도 하니(3000 Miles to Graceland에서 그는 악당을 등치는 악당으로 나옵니다) 대중이 그가 나오는 작품을 외면한 것은 당연했죠.

지난 10년간 그가 나온 영화 중 그나마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는 Thirteen Days를 들 수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는데, 정치적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가정을 걱정하는 마음이 끔찍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가 이 영화의 흥행성공을 결정지었다고 말하기는 무리지만, 어쨌든 그가 과거에 보여주었던 선한 주인공의 이미지를 다시 보인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케빈 코스트너의 문제는 그가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는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어두운 역할을 맡을 때 무언가 어색하다는 점입니다. 톰 크루즈는 매그놀리아나 Tropic Thunder 등에서 전혀 블록버스터 주인공 같지 않은 어둡고 기괴한 역할을 맡아도 나름대로 잘 어울립니다. 이는 아마도 톰 크루즈라는 사람 자체가 기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케빈 코스트너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무언가 착한 면이 숨어 있는 듯이 보이고, 따라서 그가 영화 초반에 조금 삐딱하게 나와도 "저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착한 사람으로 돌아올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죠. 이러한 기대가 이루어지려면 처음에 보이는 불량한 모습이 어느 수준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퍼팩트 월드에서 다른 탈옥수를 죽이는 장면이나 Open Range에서 어린 동료를 발로 차 물에 빠뜨리는 장면은 그러한 수준을 넘어서기에 매우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장면이 나오고, 나중에도 주인공의 삶이 대단히 변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실망하고 속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1997년 에어포스 원의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포스트맨을 만들기 위해 이 역할을 포기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연은 해리슨 포드가 맡았고, 이 영화는 대 히트를 기록했죠. 그가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포기하고, 암울한 인류 종말상황을 그린 영화를 만든 것은, 과거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의 반영으로 보입니다(결국, 포스트맨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그의 인기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그는 또한 속편을 만들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데, 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제작과 주연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둔 톰 크루즈와 비교되는 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케빈 코스트너는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새로운 방향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러한 영화에서 그가 보인 이미지는 대중의 기대와 너무도 달랐기에 갈수록 대중에게서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하긴 존 웨인처럼 대중이 사랑하는 배우도 추격자(The Searchers)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내뱉는 어두운 역할을 맡았다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어두운 역할만 계속 맡는 배우가 인기를 잃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는 최근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는 등 영화에 대한 애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좋은 영화를 내놓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부디 이 재능있는 배우가 그냥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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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