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온 씨름은 1983년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생기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씨름은 힘만이 아닌 기술이 중요하고, 기술이 좋다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실제로 큰 인기를 끈 이만기 선수는 초기에 한라급 체중이었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백두급 선수들을 꺾고 천하장사에 여러 번 올랐죠. 이러한 씨름의 특성 때문에 씨름을 보다가 스모를 보면 억지로 몸무게를 늘린 선수들이 힘으로 상대를 밀어내려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살펴보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씨름은 완전히 쇠퇴하였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스모는 여전히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왜 씨름은 높은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씨름이 인기를 상실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씨름이 현대적 스포츠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씨름은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명절 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따라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었고,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즐기는 행사였기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천하장사대회도 처음엔 설날 등 명절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씨름이 인기가 높아가면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 아닌, "힘과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씨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씨름은 명절로부터 독립하였고, 다른 스포츠, 즉 역도나 권투처럼 효율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올림픽이 아니면 역도 중계를 TV로 보는 사람이 적고, 권투도 인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는데, 씨름만 인기를 끌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시청자는 극도로 사실적인 일본의 이종 격투기, 또는 잘 짜진 연극인 미국의 프로 레슬링을 원하지, 어정쩡하게 둘이 규칙에 맞춰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포츠로 변신한 씨름이 인기를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스모는 전통 의식을 그대로 보존함으로 21세기까지 인기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씨름과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스워 보이는 스모의 여러 가지 요소(기저귀 같이 보이는 마와시, 상투 튼 머리 모양, 경기 전 천천히 다리를 드는 모습)는 관중에게 '당신은 시간을 초월한 의식(儀式, ritual)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즉, 스모는 스포츠로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일본인에게 역사를 뛰어넘는 일본의 문화에 참여하도록 해주는 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띄죠. 그렇기에 스모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있음에도(예를 들어, 스모선수의 등급은 객관적 성적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고, 스모 협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 됩니다), 여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죠.
인간은 의식을 통해 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자신의 주권을 확립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시간대는 잠에서 깨서 출근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쁘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깨자마자 하는 일련의 행위(기지개를 켜고, 세수를 하고, 신문을 먹으면서 아침을 먹고, 시계를 힐끔 보고 지하철 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가는 등)를 통해 아침 시간대를 다스립니다. 이러한 의식을 확립하고 나면 매일 "오늘은 어떻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피할 수 있죠.
의식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박자를 표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던 시절엔 계절을 따른 의식을 지냄으로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봄의 기운이 가득한 5월 초가 되면 메이데이를 즐겼고, 한국인은 더위가 극에 달하는 복날이 되면 보양식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이 설을 쇠거나 미국인이 가을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과거에 계절에 따른 의식이 현대에도 살아남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의식은 평범한 행위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이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고시래)라고 하며 음식을 땅에 던지는 풍습도 음식을 먹는 행위를 영적인 행위로 바꾸는 의식이었습니다. 마법의 술이라고 알려진 압생트를 설탕 위에 부어서 압생트의 색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마시는 사람은 "이 술은 정말 신비한 술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이처럼 의식은 어떤 행위의 특정한 의미를 강조하거나,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 의식을 결합하면 중요한 행위로 바뀔 수 있습니다. 테킬라의 본고장인 멕시코 사람들은 테킬라를 그냥 마십니다. 그런데 멕시코 밖에서는 테킬라를 마시기 전 손등에 묻은 소금을 핥고, 테킬라를 마신 후에는 라임을 빠는 방식으로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작은 의식은 이미 수백 가지 술이 존재하는 세계 주류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테킬라가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이 없이 마시는 테킬라는 그냥 술일 뿐이지만, 소금을 핥고 라임을 빠는 행위를 추가함으로 테킬라는 의식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죠.
마틴 린드스트롬이 쓴 Buyology에 따르면 기업들은 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자사의 제품을 의식과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을 잠글 때 나는 "철커덕" 소리는 다른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소리입니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제품을 쓰던 사람이 다른 제품을 쓰면 무언가 허전하게 느끼겠죠. 그러고 보면 맥의 시동음이나 윈도우의 시동음도 사용자를 자사 제품에 묶어 두기 위한 작은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이 리듬을 잃을수록 사람들은 의식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말 이러한 의식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올바르지 못한 의식은 인생을 낭비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죠.
P.S. 저는 지난주부터 엇그제까지 이탈리아에 강의차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글을 쓸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일정을 소화하는데 벅차 글을 못올렸습니다. 사실 정해진 날자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라 그냥 건너뛰고 나니 매우 찜찜하더군요. 어쨌든 약속을 못지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주엔 베를린과 프라하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녀오는데, 돌아와서 주말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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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살펴보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씨름은 완전히 쇠퇴하였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스모는 여전히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왜 씨름은 높은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씨름이 인기를 상실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씨름이 현대적 스포츠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씨름은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명절 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따라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었고,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즐기는 행사였기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천하장사대회도 처음엔 설날 등 명절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씨름이 인기가 높아가면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 아닌, "힘과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씨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씨름은 명절로부터 독립하였고, 다른 스포츠, 즉 역도나 권투처럼 효율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올림픽이 아니면 역도 중계를 TV로 보는 사람이 적고, 권투도 인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는데, 씨름만 인기를 끌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시청자는 극도로 사실적인 일본의 이종 격투기, 또는 잘 짜진 연극인 미국의 프로 레슬링을 원하지, 어정쩡하게 둘이 규칙에 맞춰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포츠로 변신한 씨름이 인기를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스모는 전통 의식을 그대로 보존함으로 21세기까지 인기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씨름과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스워 보이는 스모의 여러 가지 요소(기저귀 같이 보이는 마와시, 상투 튼 머리 모양, 경기 전 천천히 다리를 드는 모습)는 관중에게 '당신은 시간을 초월한 의식(儀式, ritual)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즉, 스모는 스포츠로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일본인에게 역사를 뛰어넘는 일본의 문화에 참여하도록 해주는 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띄죠. 그렇기에 스모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있음에도(예를 들어, 스모선수의 등급은 객관적 성적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고, 스모 협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 됩니다), 여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죠.
인간은 의식을 통해 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자신의 주권을 확립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시간대는 잠에서 깨서 출근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쁘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깨자마자 하는 일련의 행위(기지개를 켜고, 세수를 하고, 신문을 먹으면서 아침을 먹고, 시계를 힐끔 보고 지하철 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가는 등)를 통해 아침 시간대를 다스립니다. 이러한 의식을 확립하고 나면 매일 "오늘은 어떻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피할 수 있죠.
의식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박자를 표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던 시절엔 계절을 따른 의식을 지냄으로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봄의 기운이 가득한 5월 초가 되면 메이데이를 즐겼고, 한국인은 더위가 극에 달하는 복날이 되면 보양식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이 설을 쇠거나 미국인이 가을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과거에 계절에 따른 의식이 현대에도 살아남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의식은 평범한 행위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이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고시래)라고 하며 음식을 땅에 던지는 풍습도 음식을 먹는 행위를 영적인 행위로 바꾸는 의식이었습니다. 마법의 술이라고 알려진 압생트를 설탕 위에 부어서 압생트의 색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마시는 사람은 "이 술은 정말 신비한 술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이처럼 의식은 어떤 행위의 특정한 의미를 강조하거나,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 의식을 결합하면 중요한 행위로 바뀔 수 있습니다. 테킬라의 본고장인 멕시코 사람들은 테킬라를 그냥 마십니다. 그런데 멕시코 밖에서는 테킬라를 마시기 전 손등에 묻은 소금을 핥고, 테킬라를 마신 후에는 라임을 빠는 방식으로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작은 의식은 이미 수백 가지 술이 존재하는 세계 주류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테킬라가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이 없이 마시는 테킬라는 그냥 술일 뿐이지만, 소금을 핥고 라임을 빠는 행위를 추가함으로 테킬라는 의식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죠.
마틴 린드스트롬이 쓴 Buyology에 따르면 기업들은 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자사의 제품을 의식과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을 잠글 때 나는 "철커덕" 소리는 다른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소리입니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제품을 쓰던 사람이 다른 제품을 쓰면 무언가 허전하게 느끼겠죠. 그러고 보면 맥의 시동음이나 윈도우의 시동음도 사용자를 자사 제품에 묶어 두기 위한 작은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이 리듬을 잃을수록 사람들은 의식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말 이러한 의식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올바르지 못한 의식은 인생을 낭비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죠.
P.S. 저는 지난주부터 엇그제까지 이탈리아에 강의차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글을 쓸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일정을 소화하는데 벅차 글을 못올렸습니다. 사실 정해진 날자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라 그냥 건너뛰고 나니 매우 찜찜하더군요. 어쨌든 약속을 못지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주엔 베를린과 프라하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녀오는데, 돌아와서 주말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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