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복권 소식을 듣고 나니 정말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군요. 이로서 한국에서 삼성은 법 위에 존재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던 "법치"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와 함께 싹튼 개념이 아니라 왕정시대부터 존재하던 오래된 전통입니다. 사회를 법으로 다스리려면 일부에게만 법을 적용하고 일부는 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무지몽매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옛사람들 조차 당연하다고 인정한 바입니다. 그런데, 만민이 평등하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재벌 총수는 죄를 지어도 제대로 댓가를 치르는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특정한 계층이 법의 처벌을 늘 피할 수 있다면, 법치는 그야말로 서민을 억압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고, 정의는 힘있는 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미사여구일 뿐입니다. 이렇게 명분 없는 사면을 해놓고 정부는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이 차도로 진출했다고 잡아 넣는 일을 계속하겠죠. 과연 이런 나라에서 정부와 경찰의 권위가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전 "국민들에게는 법을 지키라 하고 정작 위에서는 범죄가 저질러지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나"고 말했고, "내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많은 국민은 이러한 약속 때문에라도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분명히 "내 임기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사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건희 전 회장이 저지른 일은 그 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죠. 청와대는 이에 대해 “국익을 고려해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부폐가 처벌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정말 평창 올림픽 유치가 법치의 근간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권에 실망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정말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번 결정은 한국이 정의가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정의가 무너진 사회가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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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