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느 민족에서나 하늘의 별을 별자리로 묶어내는 풍습은 같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너무 많고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를 별자리로 묶으면 영웅과 신, 동물들의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의미란 곧 이야기에서 나오고, 이야기 중에서도 하늘에 떠 있기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띄기 때문이죠.
이처럼 대부분 민족은 별을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쳤지만, 그리스 민족은 별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별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은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의 학자들은 별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서 점성술(astrology)을 연구하였고, 그리스의 학자들은 별의 움직임 자체를 알고자 천문학(astronomy)을 연구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연구의 전통은 결국 서양에 과학이 탄생하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수학적으로 연구한다면 인간은 세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설명했죠.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상을 수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이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과학적 사고는 모든 나라로 퍼지게 되죠.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하고,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자연의 이용은 자연의 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조금 어리석고, 조금 손해 보는 듯 해도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되었죠. 한국에서 몇 년 전 유행하던 "웰빙"이라는 표현도, 결국은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목적만 추구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살고, 물질세계는 대부분 수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적 필요만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부분이 있고, 이처럼 신비한 부분을 지닌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모든 민족이 별자리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인생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잉태된 인간이 우주 역사의 0.00000001%도 안 되는 기간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찰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존재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의미라는 말 자체가 비합리적인 언어의 사용 때문에 생겨난 무의미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당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말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과학에서 채워진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은 과학의 영향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인생의 의미와는 매우 멀어졌는데, 이처럼 인문학이 변질되면서 인생의 의미 연구라는 본래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자극하는 가운데 발전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 관심을 보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오늘날은 과학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고, 인문학, 예술 종교 등은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과학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자들도 과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 인간의 의미에 대해 연구합니다. 두뇌를 연구함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나 인간의 본성을 진화에서 찾으려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그러한 예죠. 또한, 인간이 죽을 때 몸무게가 21그램 줄어든다며, 영혼의 중량이 21그램이라는 주장도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라는 신비를 과학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과학을 통해 지식을 얻지만, 과학 이외의 활동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렇게 얻은 지혜야말로 인간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삶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이처럼 대부분 민족은 별을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쳤지만, 그리스 민족은 별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별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은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의 학자들은 별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서 점성술(astrology)을 연구하였고, 그리스의 학자들은 별의 움직임 자체를 알고자 천문학(astronomy)을 연구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연구의 전통은 결국 서양에 과학이 탄생하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수학적으로 연구한다면 인간은 세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설명했죠.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상을 수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이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과학적 사고는 모든 나라로 퍼지게 되죠.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하고,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자연의 이용은 자연의 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조금 어리석고, 조금 손해 보는 듯 해도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되었죠. 한국에서 몇 년 전 유행하던 "웰빙"이라는 표현도, 결국은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목적만 추구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살고, 물질세계는 대부분 수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적 필요만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부분이 있고, 이처럼 신비한 부분을 지닌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모든 민족이 별자리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인생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잉태된 인간이 우주 역사의 0.00000001%도 안 되는 기간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찰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존재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의미라는 말 자체가 비합리적인 언어의 사용 때문에 생겨난 무의미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당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말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과학에서 채워진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은 과학의 영향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인생의 의미와는 매우 멀어졌는데, 이처럼 인문학이 변질되면서 인생의 의미 연구라는 본래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자극하는 가운데 발전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 관심을 보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오늘날은 과학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고, 인문학, 예술 종교 등은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과학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자들도 과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 인간의 의미에 대해 연구합니다. 두뇌를 연구함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나 인간의 본성을 진화에서 찾으려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그러한 예죠. 또한, 인간이 죽을 때 몸무게가 21그램 줄어든다며, 영혼의 중량이 21그램이라는 주장도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라는 신비를 과학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과학을 통해 지식을 얻지만, 과학 이외의 활동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렇게 얻은 지혜야말로 인간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삶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과학, 심리학, 두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외국어 학습의 세 가지 모델 (2) | 2010/09/03 |
|---|---|
| 분노 (5) | 2010/01/18 |
| 21그램 (1) | 2010/01/07 |
| 무의식의 활용 (4) | 2009/08/15 |
| 하품이 전염되는 원인은? (4) | 2009/07/04 |
| 육체와 정신 (5) | 2009/06/30 |

TAG 과학과 인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