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의 의미

사회 2010/04/22 19:58
한국인과 미국인의 차이점을 말할 때 "미국인은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요즘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남녀관계가 밋밋한 한국인에 비해 미국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수위가 높아서 이러한 차이점을 말하면 대부분 쉽게 수긍하죠. 그런데 애정표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놓고 본다면 미국인들은 뜻밖에 인색하기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물론 미국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사랑(love)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실제로 연인끼리는 사랑한다는 말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트콤을 봐도 이러한 상황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인펠드에서 조지 코스텐자는 애인인 시에나에게 용기를 내어 "I love you"라고 말하지만, 시에나는 "배고프다. 식사하러 가자"며 그를 외면합니다. 프랜즈에서 챈들러는 애인인 모니카가 머리에 칠면조를 얹고 춤추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무의식중에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모니카가 "뭐라고?"하고 묻자 정색을 하며 "아무 말도 안했다"고 부인합니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테드는 처음 만난 로빈과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I think I am in love with you)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깨지고, 결국 로빈의 집에서 쫓겨나듯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남녀간에 "love"라는 쉽게 쓰지 않는 상황은 남녀관계의 변천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DNA를 후대에 전파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여자와 육체관계를 많이 맺기만 하면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자손을 낳을 뿐 아니라 기르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 혼자서 자녀에게 먹일 식량을 구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따라서 여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돌볼 능력과 마음이 있는 배우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쫓아다니고, 여자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 중 누가 유능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조심스럽게 판단해서 배우자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게 되어 임신하였는데, 남자가 자신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 피임약(the pill)이 개발되면서 남녀관계는 획기적으로 전환됩니다. 임신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이 과거와 다르게 남녀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60년대에 미국인의 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는데, 이를 성 혁명(Sexual revolution)이라고 부르죠.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남녀의 관계도 바뀌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여자가 남자와 거리를 두고 관계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60년대 이후론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여성이 늘었습니다. 과거에 "남자에게 꼬리 친다"며 부정적으로 보던 태도가 이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은 것이죠. 이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거리를 두던 관습이 사라지면서 남자와 여자가 심각한 연애 감정 없으면서도 연애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flirting이 보편화하게 됩니다. Flirting은 지극히 새로운 개념이기에 다른 언어로는 아직 번역이 안되었고, 불어나 독어에서도 그냥 영어 단어를 씁니다. 한국은 아직 전통적인 연애관이 남아있기 때문에 flirting이 덜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에겐 flirting이 보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변화 때문에 이제 남녀는 서로 쉽게 접근하고, 쉽게 연애하고, 쉽게 육체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 때문에 남녀가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상대방이 나를 그냥 쾌락을 위해 만나는지,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가벼운 만남이 일상화한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진지함이 그리운 법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냥 사귀는 관계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관계를 "I love you"라는 말로 구분합니다. "I love you"라는 말을 한다면 이는 곧 "나는 너를 그냥 즐기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의도로 만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쪽이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난다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결혼을 전제로 매우 진지하게 맺던 관계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의 고백은 곧 결혼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I love you"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I love you"라는 말은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띄지만, 이를 제외한 관계에서는 쉽게 써도 되고, 실제로도 많이 씁니다. 음식에 대해 쓰는 "I love pizza"부터 친구 사이의 "I love you", 부모 자식 간의  "I love you, son" "I love you, daddy" 집단을 향한 "I love you, guys"등은 모두 오해의 여지가 없기에 써도 괜찮죠.

한국은 아직도 전통적인 연애관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연애는 곧 진지한 일이고, 따라서 연애를 하는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미국인에게 연애하고 싶다고 "I love you"라고 하거나,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I love you"라고 했다간 엄청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애인에게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정보의 전달이 아닌 데 비해, 미국인은 "I love you"라는 말을 "나는 진지하게 너만을 사랑하고, 너랑 결혼할 마음도 있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이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문화가 같은 표현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P.S. 이번 주엔 이탈리아에 와서 회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이탈리아 내 여행이 계획되었는데, 화산재 때문에 비행편이 취소돼서 밀라노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내일 기차 편으로 독일로 돌아갑니다.

P.S.S. 저도 트위터를 합니다. 별로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는데, 어쨌든 주소는 @cimi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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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