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 2.0

경제 2010/05/08 06:00
금요일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어제에 이어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전날 미국 증시는 다우 지수가 장중 1,000포인트나 떨어지는 폭락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수 하락의 큰 부분은 주문 실수로 말미암은 오류 때문이라지만, 이를 제외하고라도 주가가 하루에 3.2%나 떨어졌으니 세계 증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언론은 세계적인 주가 하락이 그리스의 부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 사태는 몇 달 전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정부의 재정고갈과 이에 따르는 긴축재정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예견되어 있었고, 최근에 새로 나온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갑자기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하는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언론은 대중이 이해할 만한 원인을 들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법이고, 이번 주가 하락이 "그리스 사태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기에 대부분 언론이 맹목적으로 보도할 뿐,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은 주식 시장이 재료(주가 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소식)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주식 시장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료가 등장했을 때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시장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료보다 재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두바이 사태가 벌어졌을 때, 세계 증시를 뒤흔들 위험한 재료였지만 별문제 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시장이 견디지를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시장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2008년 가을 이후, 세계 경제는 늘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경제의 핵심인 실물경제가 안 좋았기 때문이죠. 실물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악순환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각국 정부는 이러한 불황을 타개하려고 금리를 낮추고(저금리), 돈을 많이 찍어내고(양적 양화), 재정 지출을 늘리는(재정 적자) 정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돈을 구하기가 쉬워졌고, 경기가 되살아나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돈은 금융권에만 머물렀기에 주가는 올랐지만, 실물경제엔 도움이 전혀 안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금리가 낮아지자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에 돈이 몰리면서 한국은 2010년 1분기 GDP가 전년대비 7.8%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으로 들어온 돈도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주가를 올리고 환율을 낮추는 역할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작년 대비 보유 주식이 7.8% 오른 사람은 많아도, 소득이 7.8% 오른 사람은 적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겉으로나마 좋아진 듯 보이던 경제상황이 이제 부실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빚을 내려면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 좋아야 하는데, 개인의 빚은 정부가 공급할 수 있지만, 정부의 빚은 정부 자체의 신용이 좋아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던 몇몇 정부가 지난 2년간 경제위기를 넘기 위해 지출을 더 늘리다 보니 신용이 급격히 안 좋아졌습니다. 유럽만 놓고 볼 때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이고, 세계적으로는 STUPID(스페인, 터키,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두바이)이 여기에 속하죠. 즉, 2008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정부가 나서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2년이 지나고 나니 경제는 안 살아나고 정부까지 부도가 나게 생긴 것이죠.

지금 세계적으로 돈이 부족한 정부가 많은데 그리스와 포루투갈 등 유럽 정부에서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이들이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쓰기 때문입니다. 유로지역 국가들은 단일 통화를 쓰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ECB)을 통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합니다. 이는 한 나라가 돈이 부족하다고 통화량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출 수 없다는 말이죠. 즉, 유로존 국가는 위기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훨씬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못 넘긴다면 세계 경제는 2008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당시엔 "각국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구할 것이다"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부도 믿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물론 당장은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사실 미국도 유럽보다 상황이 좋다고 할 수가 없기에 언제까지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겪는 나라 중 한두 개 정부라도 부도가 난다면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신용경색이 오고, 소비심리가 위축돼 세계적인 공황이 올 수가 있습니다. 1997년 동남아시아의 위기가 한국과 브라질을 거쳐 러시아로 퍼지던 현상이 세계적인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에야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많기에 증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죠.

결국, 이번 위기는 각국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세계 경제는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고 난 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유럽이 이번 위기를 잘 이겨낸다고 해도(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이 위기의 끝은 아니라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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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