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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9 바보 노무현을 떠나보내며... (6)
  2. 2009/05/29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 (1)
살아 있을 때는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비난을 듣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서거 이후엔 좌파와 우파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좌파는 그의 정책에 대해 극렬히 반대하던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단체, 개인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떠나갔다는 사실에 대해 큰 슬픔을 표현하는 데 비해, 우파는 "정적이 제거되었다."고 좋아하거나, 그의 죽음이 그들에게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지 않을지 걱정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죽고 나니 누가 진짜 친구이고, 누가 진짜 적인지 분명해진 셈이죠.

평소에 그를 비난하던 좌파도 그를 인정하는 까닭은 그가 진정한 "바보"였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바보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지만, 한국의 바보는 자신의 이익을 악착같이 찾아 먹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은 여러 가지 논란을 낳았지만, 최소한 그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소수의 우파를 제외한 국민 전체가 인정하고, 그래서 대다수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바보 노무현의 존재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대단히 충실한 한국 사회라는 배경 때문에 더욱 돋보입니다. 굴곡이 많은 현대사를 거치면서 한국인은 "나를 보호하는 존재는 나 자신뿐이고, 내 이익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믿음이 굳건해졌습니다. 조선 말기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기에 국민을 돌보지 않았고, 조선 정부를 몰아낸 일본은 다른 민족이기에 한민족을 핍박했고, 일본이 떠나가자 또 다른 남의 나라 미국의 군대가 점령군처럼 찾아왔고, 독립정부를 세우자마자 전쟁이 나서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국부" 이승만 대통령은 종신독재를 꿈꾸며 국민의 뜻과 어긋나는 정치를 벌였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간 끔찍한 핍박과 고난을 겪고 난 한국인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무한 투쟁을 벌일 각오가 된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로 거듭났고, 정이 많은 한국인 고유의 성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잘살아보세"를 구호로 "가난의 한을 풀고 싶은" 국민의 정서를 자극했고, 경제발전의 성공으로 경제수준이 올라가자 "나도 이 기회에 팔자 고쳐보자."는 심리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강남이 개발되고 복부인이 생겨나면서 이사 몇 번 하면 집이 한 채 생길 정도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자 나의 부동산 투기로 손해볼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고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생존기계에게 남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던 것이죠.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국은 다시 어려움을 겪고, 한국인의 생존본능은 다시 한 번 자극을 받게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직업을 잃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힘을 합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내 자식은 실업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직업을 얻도록 좋은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시경쟁만 배로 심해집니다. 2000년대 중반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던 1970-1980년대 추억이 살아난 한국인은 다시 한 번 부동산 투기에 기대를 걸었고, 건설업계 출신으로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친화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되던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이기적인 태도는 가족 이기주의를 낳았고, 가족 이기주의는 지역 이기주의로 이어져서, 손바닥만한 나라지만 동과 서로 나뉘어 싸움을 벌였고, 결국 정치판은 정책대결의 장이 아니라 지역 이기주의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절대적인 세를 과시하는 어떤 정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세가 굳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죠.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인 노무현의 등장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인구가 많은 지역 출신이지만, 그 지역 정치지도자가 원칙을 버리고 여당과 합당을 하자 "야합에 반대한다."며 합당을 거부하고 당을 떠났습니다. 그는 지역적으로 대척 관계에 있는 정치 지도자와 손을 잡고 고향에서 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보기 좋게 떨어져 버렸죠. 거기서 그의 정치 인생이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결국 2002년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는 지역이라는 특권을 포기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정치 지도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력의 특권도 포기하였습니다. 한국은 결국 정치, 경제, 언론, 법, 종교 지도자들이 혈연과 학연으로 연결되어 지배계층을 이루는 나라이고, 이들은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 나갑니다. 한국의 지배계층은 전통적인 명문가문 출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굴곡의 현대사를 겪으면서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즉, 최고의 생존기계라고 할 수 있죠. 이들에게 "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편법으로 자식을 직원으로 채용해 세그을 포탈하기도 하고, 법을 어겨가며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생존경쟁이 몸에 뱄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도울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그들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나쁜 특성이 있습니다. 그들의 빈곤 대책은 "너희도 우리처럼 생존경쟁에서 이겨라. 그러면 문제는 해결된다. 너희가 가난한 것은 너희가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고, 너희처럼 노력을 안 하는 인간은 도움을 받을 자격도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견제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사람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중 최초로 한국을 지배하는 계층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그는 다른 정치인처럼 지배계층에 동화하고, 그들의 위한 정책을 펴는 대신, 지배계층을 공격함으로 사회의 비주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지배계층과 대립한 결과 그는 국회의원 대다수에 의해 탄핵을 당합니다. 당시 두 개의 거대 정당이 힘을 합쳐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가 탄핵을 극복하고 돌아왔지만, 한국의 지배계층은 끝까지 그를 미워했습니다. 언론은 연일 정부를 흔드는 보도를 쏟아냈고, 검사들은 그의 권위에 도전했고, 경제계는 "좌파 정부 때문에 투자를 못 하겠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렇게 지배계층이 그를 흔드니 결국 국민의 마음도 그를 떠났고, 그는 매우 인기가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죠.

하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돌아볼 때, 그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은,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지역적, 신분적 특권을 포기하였고, 이익을 쫓기 보다 신념을 쫓았고, 권력을 누리기보다 국민 전체를 생각했습니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은 정파와 관계없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사실은 그가 참된 "바보"였다는 사실을 잘 증명합니다.

이제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보여준 희생의 정신과 불의에 대한 저항의 정신은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밝게 타오르는 불로 남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이 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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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여러분이 아르바이트생인데, 시급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아마 지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새로 지를 물건을 찾아볼 것이고, 미래에 대비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저축을 늘리기 원할 것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가 보기에 매우 정상적이고, 상식에 맞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인간이 단위 소득의 증대에 대해 지출이나 저축의 확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최근에 들어 생겨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단위 소득이 증가하면 노동량이 감소하는 반응이 나타났고, 따라서 전체 소득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시급이 늘었으면 과거와 똑같이 일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행동 아니냐?"라고 따지시겠지만, 전통적인 사회에 살던 사람이라면 "시급이 늘었으면 일을 적게 하고도 같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일을 줄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냐?"라고 따질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우리가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경제활동을 삶의 일부분, 그것도 매우 작고 하찮은 일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직업관을 보여주는 사농공상이라는 분류를 봐도, 돈을 가장 적게 만지는 선비가 가장 대접받았고, 돈을 많이 만질수록 격이 떨어져, 결국 돈을 가장 많이 만지는 상인은 가장 비천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돈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던 시대에는 돈을 많이 벌려는 노력은 곧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대부분 사람은 돈은 적절히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당시엔 농사가 경제의 중심이었기에,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그럴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죠.

돈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돈을 벌려는 노력에 대한 멸시는 많은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황금을 좋아해서 결국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게 되었지만, 이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어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고대 그리스의 미다스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맘몬(돈의 신)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쳤고,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 만 악의 뿌리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돈을 사랑하는 저주스러운 마음(auri sacra fames)이 인간을 어려움에 빠트린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중세 신학자들이 물질을 향한 탐욕(avarice)을 교만과 함께 가장 끔찍한 죄로 인정한 것은 당시 사회의 물질관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근대가 시작되면서 돈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막스 베버는 미국의 사상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이러한 새로운 태도의 예를 찾습니다.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열심히 돈을 벌라."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르침은 우리가 보기엔 당연한 말이지만, 돈을 벌려는 노력을 죄악시하는 전통적인 사회의 가치관을 뒤엎는, 당시로선 매우 혁명적인 가르침이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돈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Der Geist Des Kapitalismus)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정신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진정한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지요.

자본주의 정신을 옹호하는 이론적 토대를 놓은 사람은 바로 애덤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노력할 때 결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 모두가 부유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과거엔 돈을 벌려는 노력이 이기심의 표현이기에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지만,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돈을 벌려는 노력은 모두를 유익하게 하기에 사회가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하게 되었죠.

사회가 돈을 긍정적으로 대하자, 전통적으로 돈에 대한 욕심을 부정적으로 보는 교회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고,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고, 가능한 한 많이 베풀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교회가 돈을 많이 벌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인정한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보자면,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상업이 사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르면서, 돈을 벌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대가 열립니다. 이러한 때에 생겨난 속담이 바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라는 말이죠. 이 말은 "돈을 버는 일은 천하다."라는 말과, "돈을 열심히 벌라."라는 말 사이에 충돌이 느껴지는데, 이는 당시 진행되던 가치관의 변화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을 벌면 신분이 올라갈 수 있다"는 뜻까지 담고 있기에 당시 시대 상황에 잘 맞는 말이죠.

이처럼 돈을 적극적으로 버는 태도가 도덕적이고 올바른 태도로 인정되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열심히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전통의 가치인 공동체나 가정, 겸손과 절제는 무너졌고,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지요. 특히 "기독교"라는 전통이 돈을 중시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견제한 서구와 다르게(물론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교회가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한국은 전통의 모든 종교(유교, 불교, 샤머니즘)가 무너져내린 공백으로 자본주의 정신이 들어왔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자본주의 정신이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중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고,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막는 역할을 포기한 지난 20-30년 동안 사회 전체가 급격하게 자본주의화 하면서, 물질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가 없게 되었고, 남에게 큰 피해를 주더라도 나만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물론 돈을 열심히 벌려는 자본주의 정신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자본주의 정신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인류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편적 풍요"(universal opulence)에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과거엔 부유한 왕, 부유한 귀족은 있었어도, 국민 대부분이 부유한 나라는 찾아볼 수 없었죠. 그에 비해 지금은 웬만한 선진국에선(미국 제외) 어느 이하로 가난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이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신은 풍요와 함께 인간성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도덕도 예의도 염치도 모르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박한 인식은 자본주의 정신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장 경제 체제에서 살아가지만, 자본주의 정신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 정신이 좋아서 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겠죠. 자본주의 정신을 거부한다고 우파들이 말하는 "빨갱이"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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