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09/30 경제위기, 정말 끝났는가? (5)
  2. 2009/09/19 위기의 남성 (5)
  3. 2009/09/18 전자책의 미래 (3)
  4. 2009/09/17 조용한 죽음 (3)
  5. 2009/09/16 인생의 자본 (2)
  6. 2009/09/05 리얼리티 쇼의 시대 (5)
  7. 2009/09/04 문화와 DNA (4)
  8. 2009/09/03 오늘은 하루 쉬겠습니다 (5)
  9. 2009/09/02 모험심과 책임감 (3)
  10. 2009/09/01 일본 민주당의 선거혁명 (5)
작년 가을에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드디어 끝나가는 징후가 보입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에 세계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한국 경제에도 훈풍이 부는 모습입니다. 한때 환율과 주가 역전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주가가 1,700선을 돌파하고, 환율은 1,200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점차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는 소식도 집을 사려는 사람에겐 나쁜 소식이지만,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미국의 부동산 가격 급락 때문이었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부동산 대출을 해준 금융권의 부실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신문에는 "몇 년 만에 추석 분위기가 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실물경기까지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이 정도면 경제위기는 이미 다 끝난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경제상황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주가와 환율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은 경기부양정책 때문에 돈이 넘쳐나는데 금리는 낮아서 투자처를 찾아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이렇게 달러가 들어오니 환율이 내려가고, 이렇게 들어온 돈이 주식 시장에 들어가니 주가가 오르는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현상입니다. 게다가, 거래량이 워낙 적으니 지금 거래가는 실제 경기상황의 반영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경기가 살아났다."는 보도도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소비를 유도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물경제의 상황은 언론을 믿기보다 여러분이 직접 주변을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말로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는다면 투자와 소비가 늘면서 경제가 정말 살아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심리만 바뀐다면, 겉 자란 보리가 겨울 추위에 얼어 죽듯 투자와 소비에 나섰던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결국 경기 회복은 더욱 늦어질 것입니다.

저는 작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이번 경제 위기가 10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고, 지금도 이러한 전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언론과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전망을 하여도, 실제 경제가 살아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경제위기는 나름대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한계기업이 대부분 부도가 났고, 수익률이 좋은 기업만 살아남으면서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돈을 빌리지 못해 고생한 기업들은 엄청난 현찰을 쌓아 놓게 되었고, 이 덕분에 위기대처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경제위기의 또 다른 긍정적인 작용은 성장잠재력이 큰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 9/11사태로 항공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많은 항공사가 인원절감에 나서자 당시 생겨나기 시작한 저가항공사들은 저렴한 인건비로 유능한 조종사를 많이 채용했고, 그 결과 지금은 저가항공사가 대형항공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는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도 못했고, 작은 기업이 좋은 자산을 저가에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지도 못했습니다. 즉, 각국 정부가 위기를 넘기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기침체의 긍정적인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경제위기의 또 다른 순기능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불황기에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고, 1970년대의 불황은 반대로 정부가 가격, 임금 통제로 경제에 간섭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말 경제위기가 터지자 진정으로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막상 1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나왔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가 않습니다. 즉,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은 없이, 정부가 돈을 푸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돈을 풀어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는 개념은 이미 그린스펀 의장이 90년대부터 열심히 쓰다가 이번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개념에 의지한 해결책이 진정한 해결책일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은 이번 위기가 빠르게 정리되고 호황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과 현실을 혼동하면 안 되겠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지난주부터 훈련 과정이 시작되면서 매우 바쁜 일정이 진행 중입니다. 꼭 시간이 없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해 글을 자주 쓰기가 어렵네요. 어쨌든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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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성

사회 2009/09/19 04:42
과거에 남자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들이 직장생활에 쫓기게 되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남자들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은 슈퍼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괴력을 발휘해 악당을 섬멸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애인과 친구를 구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소년들은 "그래, 나도 나중에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되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하지만, 슈퍼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은 현실성이 떨어졌기에 슈퍼히어로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근육질 남자(80년대의 실버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90년대의 장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로 대치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는 유능하고, 똑똑하고, 힘세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위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다."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보여준 주인공은 다양한 모험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구해낸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남성상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영웅이 아닌, 지능이 보통사람보다 떨어진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덤앤 더머는 지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주인공들이 실패뿐인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2000년대 미국 영화계를 휩쓰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의 인생 실패기(The 40-Year-Old-Virgin이 대표적인 예죠)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TV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The Big Bang Theory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미성숙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남자와 이성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이를 성숙한 관계로 발전시킬 능력이 결핍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과학 영역에서는 뛰어나지만, 관계, 가정, 사회생활 등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지 못하고, 만화책과 비디오 게임으로 현실의 불만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The Flight of the Conchords는 뉴욕에서 자리 잡으려고 노력하는 뉴질랜드 출신 2인조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노래는 너무도 썰렁해 관중은 반응이 전혀 없고, 이들의 매니저는 너무나 무능해 밴드를 망치는 존재이고, 이들을 따르는 유일한 팬은 팬이라기보다 스토커에 가깝습니다. 또한, 이들은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기에 이성에게 접근하기조차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이들이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이러한 영화나 TV 쇼가 인기를 끄는 것은 남성들이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영웅이 될 수가 없다고 느끼고, 따라서 영웅이 나오는 영화보다 자신과 비슷한 loser가 나오는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입니다(물론 21세기에도 배트맨 등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배트맨은 슈퍼맨과 비교한다면 훨씬 어둡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은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의 남자들이 보이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들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창조성, 인간관계 능력 등을 요구하는 21세기 사회는 근육량이 많은 남자에게 절대 유리했던 농경사회와는 매우 다르고, 남자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생존하기조차 벅차다고 느낍니다. 물론 지금도 남자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많은 영역에서 여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남자는 여자들과 경쟁에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여성적인 특징을 익혀서 섬세한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 것이지요. 즉, 생긴 대로 거칠고 투박하게 살면 되던 과거와 다르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살면서 남자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남자의 반응은 감정적인 미성숙입니다. 감정적인 미성숙은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심리의 표현이죠. 남자가 어른이 되길 싫어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봤자 좋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하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취직해봤자 직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며, 결혼하면 존경은 기대하기 어렵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일생을 바쳐야 하고, 여성들은 알파걸로 진화해 남자를 지배하려고 드니, 이렇게 복잡한 어른의 삶을 포기하고 어린 아이로 남아 남자를 위한 영화(스타워즈부터 매트릭스까지)나 보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동성 친구들과 만나 영원한 어린아이처럼 사는 편이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죠.

오늘날 남자들이 처한 상황은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처했던 상황만큼이나 구조적인 문제라 쉽게 바꿀 수가 없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20세기 초반까지 보편적이었던 강하고 멋있는 남성의 모습을 실생활에서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주 부터는 이곳에서 훈련과정이 시작되고, 제가 이 과정의 책임자기 때문에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을 올리겠다고 미리 약속하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일단 3개월간은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더라도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연말부터는 다시 한가하질 테니 그때부터 다시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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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올해 들어 킨들2와 킨들 DX를 내놓으면서 전자책(ebook)시장을 지배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이에 맞서는 정보 서비스의 강자 구글은 이미 스캔해 놓은 엄청난 양의 책을 판매하고 저자들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하기로 합의를 함으로 단번에 아마존을 위협하는 전자책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한국의 아이리버도 스토리라는 이름의 이북리더를 내놓는 등 많은 기업이 이북 단말기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몇 년간 지지부진하던 이북 시장에 새로운 활기가 도는 모습이 반갑습니다.

전자도서는 인터넷만큼이나 역사가 깁니다. 콘텐츠가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저작권이 없는 책을 스캔해 텍스트파일로 인터넷에 올렸고, 이러한 움직임은 Project Gutenberg로 이어졌죠.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제 영어로 된 고전은 거의 모두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초기엔 저작권이 있는 책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불법적인 전자서적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불법적인 전자책을 구할 수 없게 되면서 90년대 말부터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합법적으로 전자책을 공급하는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학술 서적 온라인 도서관인 Questia나 휴대기기용 전자책 서비스인 mobipocket.com, ereader.com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전자책은 대중화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첨단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전자책이 대중화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은 콘텐츠의 부족과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출판사는 전자책의 보급이 곧 해적판의 난립으로 이어지리라는 착각을 극복하지 못하였고(해리포터 시리즈가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죠), 따라서 소수 타이틀을 제외하고는 전자책으로 발행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은 손끝에 느껴지는 책의 감촉, 코로 맡는 책의 냄새 등 전자책과 다른 종이책의 매력을 포기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쉽게 빌려줄 수 있고, 다 읽은 책은 중고로 팔 수 있는 종이책을 버리고 배터리가 다되면 더는 읽을 수 없는 전자책을 받아들이길 꺼렸습니다.

전자책 보급의 또 다른 장애물은 회사마다 다른 포맷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어도비의 전자책 포맷으로 책을 샀는데, 어도비 리더가 몇 번 업데이트 되더니 정해진 인증횟수를 초과했다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전자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mobipocket에서 구입해 Palm에서 읽던 전자책은 Palm을 쓰지 않으면서 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고 나면 ebook을 사기가 꺼려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작년에 아마존이 킨들을 발표하면서 전자책이 대중화할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아마존은 대형 출판사를 직접 상대하기 때문에 전자책을 출판하도록 설득하기가 쉽고, 따라서 요즘 나오는 인기도서는 대부분 킨들로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마존은 10불이 훨씬 넘는 베스트셀러들을 9.99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함으로 판매를 촉진했습니다. 게다가, 아마존이라는 거대기업이 지원하는 포맷이라는 점에서 킨들 이북은 앞으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확신을 준다는 점도 강점이죠. 하드웨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올해 나온 킨들2와 킨들DX는 작년에 나온 킨들1의 단점을 상당 부분 극복하였고, 아마존이 아이폰/아이팟 터치용 어플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 수천만명의 아이폰/아이팟 터치 사용자를 잠재적 킨들 독자로 흡수하였습니다(저도 아이팟 터치에서 킨들 이북을 읽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미국의 전자책 시장에 비한다면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아이리버의 스토리를 예로 들자면, 스토리는 교보문고와 협력하여 전자책을 공급한다고 하지만, 교보문고가 얼마나 출판사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또한, 아이리버 자체가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했다가 접었던 기억이 있기에 앞으로 스토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밀어줄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침체된 출판시장을 생각한다면, 종이책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익숙하지도 않고 초기비용에만 수십만 원이 들어가는 전자책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에서 전자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하는 시기는 미국 등에서 전자책이 완전히 정착하고, "전자책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라는 인식이 퍼진 후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양피지 두루마리가 종이책으로 진화했듯,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진화하리라고 추측하기는 쉽습니다.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장애물 때문에 시장형성에 어려움이 컸지만, 아마존이 나서고, 구글이 아마존과 경쟁하는 구도가 정착하면서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빨리 전자책 시장이 커져서 모든 책을 종이책보다 저렴하게 위치의 구애를 받지 않고 구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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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죽음

사회 2009/09/17 05:06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 단계로 보았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공산주의가 국가의 지배이념이 된 최초의 나라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영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뒤진 러시아였죠.

러시아가 방대한 영토에도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다르게 가난한 원인은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서양문명의 본산인 그리스로부터 멀었기에 문명이 늦게 전해졌고, 따라서 야만상태를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신약성경엔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스구디아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지금의 러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미 1세기부터 러시아 지역은 야만인이 사는 지역의 상징이었다는 뜻이죠.) 그리스의 문명이 유럽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엔 문화가 꽃피고, 이는 다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영국, 독일 서부지역으로 퍼져 나갔죠.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독일 동부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지역도 유럽문명에 편입되었지만, 러시아는 서유럽으로부터 너무 멀었기에 서유럽 국가들처럼 로마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들이 경험한 로마 제국의 지배, 중세 가톨릭 교회의 지배,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운동, 18세기의 정치적 혁명, 19세기의 산업혁명 등을 경험하지 못하고, 몽골의 지배, 로마가 아닌 그리스의 종교(정교회), 육로를 통한 국토확장 등 독특한 경험을 통해 민족성이 형성됩니다.

러시아의 역사를 결정한 또 다른 요인은 혹독한 추위입니다. 날씨가 추우니 추위와 싸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파르타의 척박한 자연환경이 스파르타의 잔혹한 정치체제를 낳았듯, 러시아의 척박한 환경도 러시아의 지배계층이 대중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체제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자연환경과 지배계층 양쪽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던 러시아 민중은 결국 공산주의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념을 해결책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러시아는 차르의 통치 시절보다 더 혹독한 독재를 경험합니다.

1990년대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난 러시아는 자유세계에 편입되어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러시아가 겪은 인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후진적인 정치, 구조적인 부패,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조직범죄 등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증거이죠. 무엇보다, 러시아의 암울한 현실은 인구 감소에서 잘 드러납니다. 1990년에 1억 4천8백만명에 달하던 러시아의 인구는 현재 1억 4천3백만명으로 줄었고, 2050년까지 1억 1천1백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이러한 인구 감소의 원인은 보편적인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짦은 평균수명과 낮은 출산율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러시아인이 살기 좋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니 인구의 감소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죠.

역사를 보면 살기 힘든 나라의 인구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이민족의 지배와 빈곤에 시달리던 19세기의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남부가 대규모 이민으로 인구가 줄어든 것은 대표적인 예죠. 그에 비해 살기 좋은 나라는 인구가 늘어납니다. 미국의 출산율이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사실은 아직 미국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죠(물론 이러한 상황은 빠르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60-70년대에 대규모 이민이 있었지만, 80년대 이후로 한국을 완전히 떠나 이민 가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점차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중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사실은 한국이 더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0%대를 향해가는 낮은 출산율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조용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살기 좋은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삶을 누릴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자녀를 많이 낳기 마련이죠. 그에 비해 살기 어려운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힘든 삶을 물려주기 싫다."라는 생각에 자녀를 낳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처한 인구 감소의 위기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개조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한국이 살 만한 나라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한국의 인구 증감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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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자본

사회 2009/09/16 04:54
얼마 전 여기 있는 DVD 라이브러리에 Good German이라는 영화가 보이길래 제목에 끌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채 보게 되었습니다. 흑백으로 된 이 영화는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처럼 2차대전 직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였습니다. 이 영화는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좌우로 넓지 않은 비율의 화면이나 배경음악의 분위기 등이 1940-50년대의 영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영화는 1940년대에 쓰던 촬영 장비만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그래서 줌렌즈나 무선 마이크 등도 쓰지 않았다는군요.

과연 왜 이렇게 기이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했는데,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라는 영화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최근엔 Ocean's Eleven, Twelve, Thirteen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재능 있는 감독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업적인 성공만 추구하지 않고, 실험적인 영화를 꾸준히 발표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카프카 등 대중의 취향과 거리가 먼 작품을 만들어 거의 잊힌 감독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가 감독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흥행공식에 맞게 작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기보다는, 연출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을 골라 만들었던 것이죠. 이러한 수련 기간을 10년 이상 보내고 난 후, 그는 에린 브로코비치로 화려하게 재기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회복하고 나서도 그는 대중적인 작품과 실험적인 작품을 번갈아가며 만들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키워가는 중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가 만든 실험적인 작품은 별로 훌륭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2002년에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만든 Full Frontal은 대중의 외면을 받았을 뿐 아니라 평단의 혹평을 들어야 했죠. Good German도 크게 성공적인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는 실험 작을 만드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결과이지요. 실패가 싫다면 자신이 잘 만드는 영화, 대중이 좋아할 영화만 만들면 될 것입니다. 소더버그가 실험 작에 계속 도전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는 시트콤 Seinfeld가 큰 성공을 거둔 후에도 계속해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습니다. 그는 이미 돈을 매우 많이 번 상태였기에 공연으로 돈을 벌 필요는 없었지만, 관객과 호흡하면서 코미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무대에 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늘 하던 레퍼토리를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새로 개발한 소재로 공연할 때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를 소재로 다룬 Comedia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가 무대에서 새로운 소재로 공연하다 말이 막혀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코미디언이라고 할만한 사인펠드가 관객들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매우 애처롭지만, 그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실패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죠.

사업을 하려면 자본이 필요하듯, 인생에도 자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자본을 쓰면 돈을 벌고, 직위를 얻습니다. 문제는 인생의 자본을 소모하기 만 하다 보면 "밑천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밑천이 떨어진 사람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잘하지만, 아무런 창조성도 발휘하지 못하고, 상황이 조금만 변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도퇘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장기적으로 본다면 당장 인생의 자본을 써서 돈을 벌 생각만 하지 말고, 적절하게 자본의 소비와 축적을 조절해야 하죠.

인생의 자본을 축적하려면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받는 자극이 창조성을 촉발하고, 여기서 새로운 능력이 생겨나는 것이죠. 특히 젊은 시절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인생의 자본을 축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너무 인생의 자본을 소비만 한다면, 얼마 되지 않아 발전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길게 본다면, 인생의 자본 축적이야 말로 젊은이가 힘써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P.S. 저는 스위스에 잘 다녀왔습니다. 텐트에서 자느라 추위에 떨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이탈리아에 있는 밀라노에 들러 피자를 먹은 것도 좋았습니다. 오는 길에 길을 잃어 새벽 한시에야 도착하고 보니 다음날 아침 렌터카를 정해놓은 시간까지 돌려주기가 쉽지 않더군요. 게다가 손님도 한 명 와서 거기도 신경 써야 했고, 와보니 일주일간 밀린 일도 쌓여 있고... 등등의 이유로 어제는 하루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제가 일하는 센터에서 3개월간 신앙 훈련과정이 시작되고, 제가 그 과정의 진행을 책임지게 됩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배우면서 하느라 좀 정신이 없네요. 이번 주는 정상적으로 블로그 운영을 할 생각이지만, 훈련이 시작되고 나면 글을 매일 올리기는 힘들 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부터 12월 중순까지는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그 이후엔 다시 정상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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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는 분은 제가 쓰는 글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미 아실 것입니다. 글의 분량이나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이 마치 틀에 찍어낸 듯 유사하죠.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의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작가라면 주제에 맞게 어떤 글은 길고, 어떤 글은 짧게, 어떤 글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애매하게 끝내기도 하면서 변화를 주겠지만, 이렇게 형식을 바꿔가면서 글을 쓰려면 너무 고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글쓰기에 편한 형식을 정해놓고, 글의 내용만 바꿔가며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놓은 형식 중 하나는 시작할 때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되는 일화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는 DNA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낳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글의 시작은 유럽에서 구입한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몇 쪽으로 나눠 삼켰다는 일화입니다. 글의 주제는 추상적이지만, 도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라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통적인 글쓰기였다면 "세계에는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각 민족은 문화뿐 아니라 신체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인은 체구가 클 뿐 아니라 목구멍도 큽니다..."라는 식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글은 과거에는 글쓰기의 모범이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이렇게 썼다가는 구독자들이 다 떠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글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지나치게 객관적이라 더 읽을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죠.

현대인은 정보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돈을 많이 줘야 정보를 구할 수 있었기에 정보가 귀중했지만, 오늘날엔 인터넷에서 이미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기에 누가 막연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보가 구체적인 사람의 삶에 연결된 모습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터넷에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땀이 느껴지는 진실한 글이 많기 때문이죠. 만약 정말 귀중한 정보만 원한다면 무료로 고전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독자가 원하는 글이 바뀌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솔한 글을 써야 독자와 교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자들은 글을 가면 삼아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가린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기에 플라톤의 글에 나오는 철학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인지 플라톤의 생각인지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교과서 같은 책을 썼기에 그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의 사생활은 알 수가 없습니다. 칸트, 헤겔 등 위대한 사상가들도 사생활과 분리된 글을 쓰는데 능했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이러한 저자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발표되는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났을 뿐이죠.

하지만, 점차 정보가 많아지고, 특히 보편교육이 도입되어 국민 대부분이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과거에 생활고에 쫓겨 국민학교도 나오기 어려웠던 시절엔 혼자서 밤에 공부하면서도 희열을 느꼈지만, 억지로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을 끝내게 된 사람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많은 정보가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일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인간관계가 점차 약화하고, 인간-인간의 만남이 인간-미디어-인간의 만남으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길 갈망했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부분 철저한 연출을 따른 꾸며진 모습이기에 현실과 달랐기 때문이죠.

이러한 대중의 갈망은 스포츠와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처럼 꾸미지 않아도 극적입니다. 선수들이 승리하고, 패배하며, 실수를 저지르고, 그러한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진실성(authenticity)을 보았고, 여기서 매력을 느꼈죠.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처럼 스포츠가 인기를 끈 적은 없었다는 사실과 20세기는 미디어가 대중의 삶에 침투한 시기라는 사실은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리얼리티 쇼로는 미국의 American Idol, 영국의 Big Brother, 프랑스의 Star Academie 등이 대표적인 예죠. 엄밀히 말해 리얼리티 쇼도 연출이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드라마처럼 완전히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형 리얼리티 쇼인 "우리 결혼했어요"는 유명인 중심이고, 실제 상황(상을 받기 위한 경쟁 등)이 아닌 가상의 결혼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국의 유명 리얼리티쇼와 다릅니다. 어쩌면 이는 한국이 서양 국가들보다 미디어가 생활에 들어온 역사가 짧고, 따라서 서양인처럼 "진실한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은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라는 기이한 장르를 낳았습니다.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룬 The Office(원래 영국에서 만들었지만 미국판이 더 유명해짐)나 뉴질랜드 청년들의 뉴욕 적응기를 다룬 The Flight of the Conchords(오자 아님), 사인펠드 쇼를 만든 래리 데이비드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Curb Your Enthusiasm 등이 그러한 예죠. 리얼리티 쇼의 매력은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인데,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는 드라마이기에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현대인은 드라마조차 리얼리티 쇼 같기를 원합니다. Lost 등을 만든 J.J. Abrams 감독의 영화 Cloverfield도 현실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라는 점에서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와 공통점이 보이죠.

미디어의 현실왜곡에 질식된 현대인이 미디어를 통해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모습은 매우 모순적입니다. 정말 현실을 보고 싶다면 TV를 끄고 가족,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죠. 하지만, 현대인은 미디어 없이는 살 수가 없기에 미디어를 통해 현실의 환상을 찾습니다. 과연 현대인이 TV와 영화, 인터넷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 주엔 스위스에 회의를 다녀오느라 글을 못올릴 것 같습니다. 많은 양해 바라고, 9월 14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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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DNA

문화 2009/09/04 06:17
어제는 몸이 안 좋아 비타민C를 먹었는데, 평소에도 목에 잘 걸리더니 몸이 안 좋아 그런지 반쪽으로 쪼개도 넘어가질 않아 결국 네 쪽, 다섯 쪽으로 쪼개서 먹었습니다. 제가 목구멍이 좀 작긴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비타민C는 기껏해야 두 쪽으로 쪼개면 넘길 수 있었는데, 역시 유럽 알약이 크긴 크더군요. 인터넷에도 미국이나 유럽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목에 걸린다는 글이 올라오던데,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미묘한 신체적 차이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에 인도에 갔을 때 리바이스 청바지가 싸기에 입어보니 묘하게 허벅지가 끼는 것이 영 불편했습니다. 치수를 바꿔가며 몇 개 입어봤는데 모두 불편하게 느껴지기에 포기하고 안 샀는데, 나중에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래 한국 사람이 인도에서 만든 청바지를 입으면 안 맞는다고 합니다. 면바지는 그럭저럭 입을 수 있지만, 청바지는 신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형의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외국 사람이 한복을 입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복은 한국인의 체형을 바탕으로 한 옷이기에, 외국 사람이 입으면 영 이상하게 느껴지죠. 그에 비해 한국 사람은 아무리 체형이 서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양 사람보다는 한복을 잘 소화해냅니다. 이는 명절에 한복 입고 나오는 연예인만 봐도 알 수 있죠.

민족의 신체적 특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서 북미 원주민까지 몽골계통의 아시아인은 몽고반점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보입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 사는 바스크인들은 겉으로는 유럽인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다른 유럽인들과 전혀 다르고, 이를 볼 때 조상이 다른 지역에서 왔으리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의 차이는 바스크인 중 Rh-형이 35%나 발견되는 등 유럽인과 혈액형 비율이 전혀 다르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죠. 전통적으로 우유를 마시지 않은 한국인들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Lactase deficiency)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높습니다. 알레르기가 현대식 생활의 결과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인종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백인은 주로 음식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데 비해, 한국인은 피부에 나타나는 알레르기 증상인 아토피가 많습니다(구글에서 영어로 atopy를 검색하면 50만 개의 결과가 나오는데, 한글로 아토피를 검색하면 2백만 개 이상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아토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말이죠).

민족 간의 신체적 차이는 남녀 간의 차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라틴계통의 민족들은 남자는 남성스럽고, 여성은 여성스럽게 보입니다. 이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각각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은 그렇게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죠. 이러한 신체적 차이는 문화의 차이를 낳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라틴문화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치근덕대는 것이 매우 일상적입니다. 라틴계통의 여자들은 지극히 여성적으로 옷을 입고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에 비해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가 크지 않은 문화에서 여자가 레이스 달린 꽃 치마 등 지극히 여성적인 옷을 입거나, 가정주부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가 성적 자극에 민감하기에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는 몸매의 여성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은 한국에서는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남자도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면 턱이 각지고, 목소리가 굵고, 몸에 털이 많기 마련인데, 이런 남자도 한국에는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가 한국인의 신체를 바탕으로 발전했기에 지금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성의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미인은 단아하게 아름다운데, 지금도 한국 연예계의 대표미인 중에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많죠.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은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여성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이러한 한국인의 미인관을 이해해야 왜 90년대에 맥 라이언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신디 크로퍼드나 파멜라 앤더슨은 한국에서 인기가 전혀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는 사람은 한국에서는 부담스러운 느끼한 남자일 뿐입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자는 지나치게 남성성이 강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의 꽃미남이죠.

문화는 환경을 만들지만, 환경도 문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환경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고, 인간의 몸은 DNA가 결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DNA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다양한 문화를 DNA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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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아토피
지난 주말 간사 리트릿 부터 무리를 했더니 오늘은 영 몸 상태가 안 좋네요. 하루 종일 업무도 못보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하루 쉬고 내일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imio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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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모험심과 책임감

사회 2009/09/02 05:11
지난주에 휴가를 보내며 스타워즈 시리즈 전편을 DVD로 보았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오리지널 3부작 따로, 프리퀄 3부작 따로 보았기에, 여섯 편을 한 번에 몰아 보니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더군요.

1977년에 나온 첫 번째 스타워즈(에피소드IV)는 조지 루커스가 투자자를 찾지 못해 어렵게 만든 작품이라 특수효과가 많이 부족합니다(그래서 루커스 감독은 90년대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완한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죠). 또한, 루커스 감독의 경험 부족으로 말미암아 어색한 부분도 곳곳에 보입니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 IV에서 오비완 케노비가 다스 베이더와 결투하는 장면을 에피소드I에서 오비완 케노비와 콰이곤 진이 다스 몰과 결투하는 장면과 비교하면 같은 감독의 솜씨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릅니다.

이처럼 많은 약점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오리지널 3부작이 프리퀄 3부작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두 3부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유머 감각입니다. 먼저 나온 3부작은 유머가 작품 전체에 녹아 흐르고, 심각한 듯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나중에 나온 3부작은 모든 등장인물이 심각하고, 유일하게 코믹한 등장인물인 자자 빙크스는 혼자서 겉돌기에 전혀 웃기지가 않고 짜증스럽게 보일 뿐입니다. 또한, 에피소드V에 나오는 요다는 농담도 하고 루크 스카이워커의 물건을 뒤지는 등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는데, 이러한 가벼운 모습은 나중에 나온 3부작의 심각한 요다에게선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조지 루커스가 처한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 스타워즈를 만들 때, 루커스는 겨우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젊은 감독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첫 번째 스타워즈 영화는 당시로써는 매우 모험적이고 새로운 작품이었죠. 그는 심혈을 기울여 쓴 시나리오가 너무 길어지자 축약을 하는 대신 (돈도 없이) 세 편의 영화로 만들려고 결심했을 만큼 무모한 도전을 하길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가 만든 세 편의 스타워즈는 젊은 루커스의 도전정신의 표현이었고, 그만큼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어려움과 싸우며 힘들게 만든 스타워즈는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고, 그는 원래 계획대로 세 편의 스타워즈를 모두 완성합니다. 스타워즈는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고, 그가 대형 스튜디오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한 Lucas Film은 대단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끝에 또 하나의 대형 스튜디오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타워즈 프리퀄을 만들기로 한 조지 루커스는 대단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선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 준 팬들을 실망시키면 안되었고, 자신이 거느린 회사의 수많은 직원을 실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작품에 투자한 수많은 투자자에 대한 책임도 고려해야 했겠죠. 그 결과 그는 신나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단한 특수 효과와, 젊은 관객이 좋아하는 동양의 검술을 흉내 낸 파워풀한 칼싸움장면, 그리고 스승의 충고를 무시하는 젊은 훈련생, 이상한 말을 쓰는 말썽꾸러기 등 정형화한 등장인물입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대단한 흥행 성공을 낳았고,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은 오리지널 3부작 보다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입니다. 하지만 루커스가 부담감을 바탕으로 작업했기에 프리퀄 3부작은 너무나 무겁고 진지해서 첫 3부작 같은 즐거움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환경이 바뀌면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젊은 시절엔 가진 것이 없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마련이고, 큰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이 많아지면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안전을 추구하기 마련이죠.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젊은 기업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신기술을 개발할까 궁리하는 데 비해, 대기업은 어떻게 하면 올해도 안정된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작고 젊은 기업이 많아야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돌기 마련이죠.

이처럼 나이와 지위에 따른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엔 젊어도 중년처럼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어쩌면 이는 젊은이들에게 실패할 여유조차 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실패를 두려워해서 꿈을 꾸지 않는다면, 그래서 늘 심각한 표정으로 현실적 목표만을 향해 달려간다면 한국은 청년이 없는, 재미없는 나라가 되고 말겠죠. 부디 한국의 청년들이 청년다운 모습을 빨리 회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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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1955년 이후로 정권을 유지하던 일본 자민당의 아성이 드디어 무너졌습니다.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은 480개 의석 가운데 119석을 얻는데 그쳐 308석을 얻은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습니다. 이번 자민당의 패배는 일본 정계, 나아가서 일본 사회 전체에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관료가 국가를 다스리는 관료주의 사회(bureaucracy)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의사보다 관료의 판단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선진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러한 기이한 정치형태는 안정을 추구하는 국민성과 2차대전에 패한 일본을 단기에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유능한 관료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90년대 장기 불황에 시달리면서 관료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렸고,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대장성을 해체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대장성이 해체되었다고 관료 중심의 국가 운영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관료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죠.

관료조직과 함께 일본을 이끄는 중요한 집단은 바로 자민당이었습니다. 아버지 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아들이 후보로 나온 선거구에는 대부분 아들이 당선될 만큼 일본인들은 낯선 정치인보다 익숙한 정치인(또는 정치인의 집안)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집단이 대대로 정권을 유지하다 보니 일본 정계에는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고, 국민이 심판하지 않으니 아무도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고이즈미는 이러한 정치권, 특히 자민당을 안에서부터 개혁하겠다고 약속하며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고이즈미가 약속한 개혁은 일본정치를 바꾸어 놓지 못했고, 자민당은 과거와 같은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잠시 회복되는 듯 보이던 일본을 다시 불황의 늪으로 밀어 넣었고, 자민당이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낼 정당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일본 국민은 반세기 이상 지지하던 정당을 포기하고, 새로운 정당에 정권을 맡긴 것이죠.

정권 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일본정치 개혁이 완성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선, 민주당은 관료조직의 개혁을 주장하는데, 과연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조직을 민주당이 어떻게 길들일지 주목됩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자체가 자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도 많고, 따라서 자민당이 보인 부패와 무능의 모습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자민당이나 자민당의 뒤를 잇는 정당에 지지를 보낼지도 모르죠.

내각제하에서 장기간 우파 정당이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일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독민주당(Democrazia Cristiana)은 바티칸의 지지와 공산당에 대한 견제심리를 바탕으로 1944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았고(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을 캐내지 않기 때문에 부패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법입니다), 결국 1992년 대형 부패 스캔들에 대한 조사(Mani pulite)가 시작되면서 기독민주당의 치부가 드러났고, 연이어 수많은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기독민주당은 해체되고 맙니다.

하지만, 기독민주당이 무너지고 난 후에도 이탈리아 정치는 후진적인 부패와 야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파악한 실업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Forza Italia(이를 우리말로 흉내를 내보자면 "오~ 필승 이탈리아!" 정도가 됩니다. 철저하게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라는 당을 만들어 순식간에 정권을 잡습니다. 이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투사였다면 좋았겠지만, 아시다시피 베를루스코니는 부패가 극심한 이탈리아 경제계에서도 매우 부패한 축에 드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가 총리로 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 국민이 얼마나 부패에 대해 관대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기독민주당이 해체되고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한 이탈리아의 상황은 부패한 정당의 권력이 부패한 개인에게 옮겨졌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불의한 집단이 무너졌다고 해서 곧바로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민주당의 해체가 이탈리아 정치발전에 중요한 계기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당은 여러 대에 걸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개인은 언젠가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합니다. 또한, 기독민주당은 반세기 동안 늘 권력을 유지했지만, 베를루스코니는 지금까지 두 번이나 권력을 내 주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 기독민주당과 비교하면 훨씬 위태하게 정권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정치가는 절대권력을 쥔 정치가에 비해 부정을 저지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자민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집권은 일본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도 수많은 문제가 생기고, 때때로 실망스러운 사태도 일어나겠지만, 이번 선거로 말미암은 구조적 권력의 몰락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라는 말이죠. 앞으로 일본이 과거의 안 좋은 유산을 극복하고 청렴한 정치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P.S. 저는 휴가 잘 마치고 업무복귀했습니다. 이번주는 정상적으로 블로그 운영을 할 생각인데, 다음주엔 1주일간 회의참석이 잡혀 있어서 블로그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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