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얼마 전부터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cimio). 엄밀히 말하면 몇 년 전부터 계정은 있었는데, 거의 쓰질 않다가 최근에야 트윗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죠. 지금까지는 트위터를 무슨 용도로 어떻게 쓰는지 이해가 안 돼서 못썼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감이 잡힙니다. 역시 모를 때는 직접 부딪쳐 봐야 깨달음이 오는 법인가 봅니다.

한 번에 140자밖에 쓰지 못하는 단문 서비스인 트위터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서비스로 자리 잡은 것은 트위터를 통해 개인이 정보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트위터에 글(영어로는 이를 tweet이라고 하죠)을 쓴다면 이는 정보를 창조하는 예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작성한 웹페이지의 주소를 적는다면 이는 정보를 전달하는 예입니다. 지금까지 정보를 소비만 하던 대중이 트위터라는 간단한 서비스를 통해 정보의 주체가 된 것이죠. 트위터에 올리는 글은 짧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창조되거나 전달되는 정보의 양도 적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부담 없이 정보를 창조하고 전달할 수 있고, 남의 글을 읽기도 부담이 없습니다. 따라서 트위터는 정보를 대중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창조하고 유통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혁명적입니다.

트워터 사용자가 늘면서 사회에서 정보를 유통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과거엔 활자 매체와 전파매체가 정보를 거의 독점했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포털, 또는 검색 사이트가 정보를 유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정보의 유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과거엔 신문에 난 내용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최근엔 네이버 첫 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는데, 이제는 트워터에서 많이 리트윗(남이 올린 트윗을 전파하는 행위)된 내용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이죠. 이는 전통적인 매체나 포털엔 큰 위협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모 신문에서 트위터 중독의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를 올린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한국에서 트위터의 인기는 아이폰의 인기와 연관됩니다. 특히, 아이폰이 발매된 작년 말부터 트위터 사용자가 급증한 사실은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트위터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할 수도 있지만, 이동 중에 쓸 때 더 큰 진가를 발휘합니다. 특히 생활 중에 발견한 특이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거나(엄밀히 말하면 트위터엔 사진을 올릴 수 없지만 연결된 서비스에 사진을 올리고 트위터에 링크를 걸 수 있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방문해서 foursquare 체크인을 하면서 이를 트위터에 전송하려면 스마트폰이 필수고, 특히 아이폰이 있다면 이러한 작업이 매우 쉽습니다. 그러고 보면 트위터는 생활 속으로 다가온 인터넷의 한 징후이고, 아이폰이 인터넷을 생활 속에서 즐기도록 돕는 기기이기에 아이폰과 트위터의 연결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인기가 별로 없던 트위터가 갑자기 인기를 끈 중요한 원인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트위터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김연아양이 트워터를 쓴다는 소문이 돌면서 트위터 가입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유명하죠. 지금은 김재동씨( @keumkangkyung ), 노회찬씨 ( @hcroh ), 이찬진씨 ( @chanjin )등 다양한 영역의 유명인사가 트위터를 쓰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팔로우(트위터에서 특정인이 올리는 트윗을 구독함)하면 유명인과 수평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색다른 경험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트위터 관리엔 크게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트위터계에선 영향력이 적은 데 비해,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 크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트위터를 잘 운영하기 때문에 트위터계에서 영향력이 엄청나게 큽니다. 독설닷컴을 운영하는 시사IN의 고재열 기자( @dogsul )는 자칭 '유명한 안 유명인'인데, 팔로워가2만명이 넘으니 "유명"하다고 할만 합니다. 이는 그가 한 번 글을 올리면 2만 명에게 자동으로 전달이 된다는 뜻이니까요.

트위터는 모든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수직적인 관계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대기업의 말단사원이라면 내게 우리 회사의 회장님은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존재겠죠. 하지만 트위터의 세계에서 나나 회장님이나 한 명의 사용자일 뿐이고, 내가 팔로워가 더 많다면 트위터에서 만큼은 내가 더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트위터 세계에서 영향력의 근원이랄 수 있는 팔로워의 숫자는 지극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결정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팔로워를 많이 얻기 마련이죠. 이는 새로운 종류의 영향력이 탄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블로그도 글솜씨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저도 블로그를 운영해 보면 포털이 밀어주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가 어렵습니다. 그에 비해 트위터는 포털이나 신문의 도움 없이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새롭고 흥분되는 기회죠.

한국은 아직 트위터 사용자가 많지 않지만, 그만큼 사용자가 늘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트위터가 민주적인 정보의 광장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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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아이폰이 들어온 지 6개월도 안되었지만, 이미 사회 곳곳에 이로 말미암은 변화가 눈에 띕니다. 지금까지 윈도우/인터넷 익스플로러/액티브 X라는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웹 사이트가 많았던 한국에 아이폰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어떤 플랫폼에서나 접근 가능한 웹사이트나 서비스가 늘어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또한, 트위터나 foursquare 등 외국 서비스의 사용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이폰의 영향이 크겠죠(트위터는 김연아양의 계정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지만, 실제로 사용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작년 말 부터입니다). 그리고 아이폰이 예상외로 많이 팔리면서 "한국엔 토종 제품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깨진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폰의 인기는 단지 아이폰의 디자인이나 기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많은 한국인에게 아이폰은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의 상징이고, 한국 문화를 바꾸는 촉매입니다. 이렇게 아이폰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오늘날 한국을 지배하는 문화를 싫어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겠죠.

지금 한국엔 정경유착을 통한 독점기업의 특권, 창의성을 말살하는 군대식 획일화,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숨막혀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폰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폰은 대기업의 특권이 잘 유지되는 이동통신 분야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은 자사에 등록된 휴대전화만 통신망에 연결을 허락하기에(이른바 White list 제도) SKT, KT, LGT라는 세 기업이 인정한 제품만 시장에서 유통됩니다. 이처럼 큰 권력을 누리는 이동통신사들은 제품의 스펙을 제한하는 등 수많은 횡포를 부렸고, 소비자는 이를 알고도 이러한 회사가 출시를 허용한 제품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이 나오면서 소비자들은 통신사의 간섭을 받지 않은 제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이폰은 애플의 제품이기에 애플 마음대로 만든 제품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소비자가 세 통신사의 간섭 없이 나온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혁명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애플이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깨고 들어왔기에 통신사와 함께 시장을 좌우하던 삼성은 큰 위기의식을 느꼈고, 아이폰을 들여온 KT와 관계가 멀어지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공고했던 이익의 공동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죠.

또한, 아이폰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획일성을 무너뜨리는 기능도 합니다. 한국사회는 하나의 "주류 문화"를 만들어 놓고, "너도 인간답게 살고 싶으면 여기 끼어들어라."라고 모든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맥사용자가 맥에서 방문하지 못하는 웹 사이트가 많다고 불평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너도 윈도우 써라."죠. 즉, 주류 문화에 편입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편은 모두 주류 문화를 거부한 사람의 몫이지, 사회가 이런 아웃사이더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한국인의 기본적인 의식입니다. 그런데 아이폰은 외국에서 들어왔기에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기기지만, 워낙 인기가 높기에 아무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즉, 비주류지만 인정받는 흔치 않은 예죠. 만약 아이폰 같은 제품이 많이 늘어나고, 한국을 지배하는 주류 문화가 수 많은 하위문화(sub-culture)로 해체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비주류이기에 주류로부터 당하는 설움도 없어지고, 남들과 똑같아야 한다는 압력도 사라지겠죠. 아이폰은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에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심리적 간격이 큰데, 정치, 경제권력을 기성세대가 갖고 있기 때문에 신세대는 그저 기성세대의 논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생산비를 낮춰야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기성세대의 논리는 마음껏 놀면서도 창의성 발휘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신세대의 논리를 완전히 압도하죠.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 부동산, 학벌이 작지만 창의적인 기업, 소프트웨어, 인터넷상의 영향력을 압도하는 나라죠. 하지만, 아이폰은 창의적이고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제품이 세계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아이폰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아이폰이 디자인이 좋거나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아이폰은 이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의 의미가 강합니다. 아이폰이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

아이폰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단지 아이폰이라는 기계만 바라본다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이폰을 싫어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휴대전화면 휴대전화지 거기에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깊게 부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이 강합니다. 만약 아이폰이 정말 문화적 상징성을 지닌다면, 내가 아이폰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몰릴 수 있고, 이는 매우 불공정하게 느껴지겠죠. 또한, 세계적으로 "Cool하려면 애플 제품을 써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애플이야말로 시장을 장악하고 소비자를 쥐고 흔드는 독점기업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삼성의 과도한 시장 장악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듯, 애플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어쨌든 현재 한국에서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아이폰은 여전히 주류에 맞서는 비주류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아이폰의 도입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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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침몰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지만, 아직 사건의 진실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는 많지만, 침몰의 원인을 정확히 목격한 사람도 없고, 아직 인양 작업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수 언론만 접하는 사람은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보수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믿음을 주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북한 어뢰의 파편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선체에 화약의 흔적이 남은 것도 아니지만, "절단면이 너덜너덜하다."는 한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놓고, 북한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보는 군 지휘부의 심증에 수많은 보수인사의 인터뷰를 더한 기사를 융단폭격식으로 내보내기에, 이런 보도만 접하는 사람이라면 3인승 반잠수정에 올라탄 13인의 북한군이 악천후를 뚫고 디귿 모양으로 감시망을 피해 남한 영해에 진입한 후, 그 중 인간 어뢰로 선발된 한 명이 어뢰를 몰아 천안함 밑에서 버블제트를 발생시켰고, 쇠로 된 배를 두 쪽 낼 만큼 강력한 이 버블제트는 물에는 작용하지 않아 감시병은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을 믿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때맞춰 잡혀준 간첩들은 황장엽 씨를 암살하기 위해 북한에서 파견되었다고 증언하니, 이것만 놓고 봐도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확해 보입니다(물론 곰곰이 생각하면 북한이 암살을 위한 간첩을 파견했다는 사실이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했다는 가정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편집의 묘미를 살린다면 독자에게 A=B라는 방정식을 주입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북한의 어뢰 공격설은 그야말로 하나의 설일 뿐입니다. 물론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고, 북한이 과거에도 무력 도발을 했던 전력이 있기에 이번 사태도 북한이 저지른 짓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는 말과, "분명한 사실이다."라는 말 사이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합니다. 보수 언론이 실수하는 부분은 전자와 후자를 구분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무조건 후자를 믿게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쓴 에도 북한 공격설이 나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북한이 공격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기에 이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는 내 생각과 상관없이, 객관적인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러한 객관적인 태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북한이 한 짓이 분명하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더군요. 이는 객관적인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할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북한의 공격이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북한을 무력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국제 관계에서 공격을 당하면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관례이자 피해국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가 안 했다"고 부인하는 가운데 우리가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이를 도발로 받아들이고, 결국 무력 대응에 나설 것입니다. 이는 곧 한반도에 전면전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실제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이 기회에 북한과 전쟁을 벌여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사랑하는 분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북한과 전쟁은 당분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우선,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 할지라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만약 어뢰 파편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이 파편이 분명한 북한의 어뢰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를 북한이 공격한 증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증거가 없다면 무력 대응을 할 명분조차 얻을 수 없겠죠.

또한, 전에도 썼듯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 보수보다는 경제 보수에 가깝고,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주변엔 경제 보수계 인사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최악의 대통령은 전쟁을 일으켜 경제를 붕괴시키는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전쟁이 아니라 무력 대응 가능성을 대통령이 언급만 해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정부가 실제로 무력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또한, 한국이 전쟁하려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물론 "우리가 원하면 전쟁하면 되지, 왜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라고 묻는 분도 있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겠다고 말함으로 남한이 단독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니 군대를 동원하려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죠). 한반도의 전쟁, 특히 북한의 핵무기가 등장하는 전쟁은 곧 동아시아 경제의 붕괴를 의미하고, 이는 세계경제가 대재앙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미국으로선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죠. 실제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의 어뢰공격설이 나오고 나서, "북한은 도발행동을 하면 안되고, 6자회담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경고라고 해석했는데, 진정한 의미는 그게 아니라 "빨리 6자회담으로 돌아와라."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관심은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 천안함 침몰에 있지 않다는 말이죠. 만약 미국이 북한과 일전을 불사한다면, 6자회담으로 나오라고 촉구했겠습니까?

이렇게 장황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주가와 환율만 봐도 전쟁이 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은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현재 주가는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환율은 1,100원대로 떨어졌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무력충돌의 징후가 나타났다면 주가와 환율의 널뛰기가 시작되었겠죠. 즉, 가장 정보력이 좋고 가장 정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계가 보기에 전쟁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조사결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침몰했다고 밝혀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한참 전에 심증만 가지고 전쟁 분위기로 몰고 가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언론의 본분을 저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증 가지고 글 쓰는 일은 블로거들에게 맡겨주시고, 언론은 언론답게 사실에 바탕한 객관적인 보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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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you"의 의미

사회 2010/04/22 19:58
한국인과 미국인의 차이점을 말할 때 "미국인은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요즘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남녀관계가 밋밋한 한국인에 비해 미국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수위가 높아서 이러한 차이점을 말하면 대부분 쉽게 수긍하죠. 그런데 애정표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놓고 본다면 미국인들은 뜻밖에 인색하기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물론 미국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사랑(love)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실제로 연인끼리는 사랑한다는 말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트콤을 봐도 이러한 상황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인펠드에서 조지 코스텐자는 애인인 시에나에게 용기를 내어 "I love you"라고 말하지만, 시에나는 "배고프다. 식사하러 가자"며 그를 외면합니다. 프랜즈에서 챈들러는 애인인 모니카가 머리에 칠면조를 얹고 춤추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무의식중에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모니카가 "뭐라고?"하고 묻자 정색을 하며 "아무 말도 안했다"고 부인합니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테드는 처음 만난 로빈과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I think I am in love with you)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깨지고, 결국 로빈의 집에서 쫓겨나듯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남녀간에 "love"라는 쉽게 쓰지 않는 상황은 남녀관계의 변천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DNA를 후대에 전파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여자와 육체관계를 많이 맺기만 하면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자손을 낳을 뿐 아니라 기르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 혼자서 자녀에게 먹일 식량을 구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따라서 여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돌볼 능력과 마음이 있는 배우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쫓아다니고, 여자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 중 누가 유능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조심스럽게 판단해서 배우자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게 되어 임신하였는데, 남자가 자신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 피임약(the pill)이 개발되면서 남녀관계는 획기적으로 전환됩니다. 임신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이 과거와 다르게 남녀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60년대에 미국인의 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는데, 이를 성 혁명(Sexual revolution)이라고 부르죠.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남녀의 관계도 바뀌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여자가 남자와 거리를 두고 관계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60년대 이후론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여성이 늘었습니다. 과거에 "남자에게 꼬리 친다"며 부정적으로 보던 태도가 이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은 것이죠. 이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거리를 두던 관습이 사라지면서 남자와 여자가 심각한 연애 감정 없으면서도 연애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flirting이 보편화하게 됩니다. Flirting은 지극히 새로운 개념이기에 다른 언어로는 아직 번역이 안되었고, 불어나 독어에서도 그냥 영어 단어를 씁니다. 한국은 아직 전통적인 연애관이 남아있기 때문에 flirting이 덜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에겐 flirting이 보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변화 때문에 이제 남녀는 서로 쉽게 접근하고, 쉽게 연애하고, 쉽게 육체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 때문에 남녀가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상대방이 나를 그냥 쾌락을 위해 만나는지,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가벼운 만남이 일상화한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진지함이 그리운 법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냥 사귀는 관계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관계를 "I love you"라는 말로 구분합니다. "I love you"라는 말을 한다면 이는 곧 "나는 너를 그냥 즐기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의도로 만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쪽이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난다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결혼을 전제로 매우 진지하게 맺던 관계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의 고백은 곧 결혼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I love you"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I love you"라는 말은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띄지만, 이를 제외한 관계에서는 쉽게 써도 되고, 실제로도 많이 씁니다. 음식에 대해 쓰는 "I love pizza"부터 친구 사이의 "I love you", 부모 자식 간의  "I love you, son" "I love you, daddy" 집단을 향한 "I love you, guys"등은 모두 오해의 여지가 없기에 써도 괜찮죠.

한국은 아직도 전통적인 연애관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연애는 곧 진지한 일이고, 따라서 연애를 하는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미국인에게 연애하고 싶다고 "I love you"라고 하거나,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I love you"라고 했다간 엄청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애인에게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정보의 전달이 아닌 데 비해, 미국인은 "I love you"라는 말을 "나는 진지하게 너만을 사랑하고, 너랑 결혼할 마음도 있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이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문화가 같은 표현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P.S. 이번 주엔 이탈리아에 와서 회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이탈리아 내 여행이 계획되었는데, 화산재 때문에 비행편이 취소돼서 밀라노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내일 기차 편으로 독일로 돌아갑니다.

P.S.S. 저도 트위터를 합니다. 별로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는데, 어쨌든 주소는 @cimi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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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3단계

문화 2010/04/14 18:29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독서량의 증가입니다. 블로그가 없다면 한동안 책읽기를 등한시해도 별문제가 없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책을 안 읽는다면 글 쓸 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연재물 같은 긴 글을 쓰려면 여러 권의 책을 읽거나 참고해야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글을 쓰다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잦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이 주제에 대해 잘 정리해 놓은 책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 마련이고, 이럴 때는 옛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닐 때 얼핏 들었던 책의 제목이 큰 도움이 됩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정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토머스 홉스의 레비아탄 등은 제목과 요점만 기억나지만, 이러한 정보만 가지고도 글을 쓸 때 큰 도움을 얻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공부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시험 준비 과정으로 변질하였만, 원래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렇게 얼핏 들은 책 제목과 내용만으론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글을 쓰려면 직접 책을 읽게 됩니다. 물론 글 한 편 쓰려고 수백 페이지가 되는 책을 읽기는 어렵고, 중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거나 요약된 글을 읽게 됩니다. 이는 대학교 때 보고서를 쓸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보고서를 쓰려면 좋은 책을 많이 언급해야 하는데, 모든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관련된 부분만 읽던지, 아니면 요약본을 읽게 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읽거나 요약본을 읽고 전체를 읽은 듯 보고서를 쓴다면 매우 부정직한 행위겠지만, 책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예를 들어, 국부론을 다 읽지 않아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업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했다."라는 말을 쓸 수는 있겠죠).

글을 다 쓰고 여유가 생기면 글을 쓸 때 참고했던 책을 다시 읽게 됩니다.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이죠. 물론 글을 쓸 때 언급한 책을 모두 읽는 것은 아니지만(그랬다간 일 년에 수백 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비중 있게 소개한 책은 꼭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책의 내용이 완전히 파악되고 깊이 있는 지식이 늘기 때문이죠. 요약본만 많이 읽은 사람과 원전을 찬찬히 읽은 사람의 차이는 크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독서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이런 책이 있다."는 아주 간략한 정보의 습득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무시하기 쉽지만, 실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겐 어떤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큰 자산입니다. 이러한 정보가 없는 사람은 좋은 책을 놔두고 엉뚱한 책만 읽다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죠. 전에 어떤 사람이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다가 나중에 학자가 되어서 큰 업적을 남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1단계 독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은 책의 대략적인 내용이나 부분적인 내용을 읽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단계입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만난 어느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백과사전의 중요한 항목을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이것만 읽어도 공부가 많이 된다."고 강조하셨는데, 백과사전 읽기는 원전 읽기 만큼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대학생이 빠르게 좋은 정보를 얻는 중요한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이러한 단계에만 머문다면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하기에 연결되지 않은 단편적 지식만 많은 "찢어진 백과사전"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마지막으론 풍부한 지식을 담은 좋은 책을 정독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이러한 독서의 3단계를 인정하지 않고 "정독"만을 독서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습니다. 인터넷에서 글을 읽다 보면 책에 관한 언급을 많이 접하기 마련이고, 인터넷 서핑을 많이 하는 사람은 어떤 책이 영향력이 있는지 잘 알기 마련입니다. 이는 벌써 독서의 1단계에 이른 것이죠. 또 어떤 사람은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요약된 형태의 정보를 많이 얻습니다. 이는 독서의 2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분야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책을 주문하거나, 고전이라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등에서 무료로 내려받아서 봅니다. 이는 독서의 3단계인 것이죠. 이제는 갈수록 독서의 3단계가 적어지고, 독서의 1단계와 2단계가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과거보다 정보를 적게 획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정보의 특성이 변했을 뿐이죠.

이렇게 본다면 교육가들이 인터넷을 독서의 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터넷을 독서와 연결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독서의 정의도 바뀌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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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청와대와 군이 사고를 보는 시각이 달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북한의 공격이란 증거가 없다."라는 입장인 데 비해, 군은 "북한의 공격일지도 모른다."라는 태도입니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청와대는 북한을 원인에서 제거하려 하고, 군은 북한을 원인의 하나로 남겨 두려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큽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북한 어뢰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자 청와대에서 "VIP"의 의견을 언급하는 쪽지를 보내 이를 수정하도록 지시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북한 관련 의혹은 군만이 아니라 보수 언론에서도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보수 언론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보수 언론과 죽이 잘 맞던 청와대는 이러한 가능성을 극구 부인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청와대와 군, 보수언론의 의견 충돌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보수층을 구성하는 두 가지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는 해방 이후 친미,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이승만 정부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보수층은 6.25를 겪으면서 반공의 중요성을 뼛속까지 느꼈고, 공산주의가 아니라 콩사탕만 빠는 사람도 빨갱이로 몰 정도로 경직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육영수 여사 피살, 아웅산 사건, 칼기 폭탄 테러, 서해 교전 등은 북한이 여전히 우리의 철천지원수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처럼 반공, 반북한을 중요한 이념으로 생각하는 보수층은 박정희 정권의 출현을 반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고, 반공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고문을 해서라도 간첩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함께 경제발전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합니다.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한 한국에서 유일하게 경제를 이끌 능력이 있던 것은 정부뿐이었죠. 따라서 60-70년대의 경제발전은 정부가 끌고 기업이 따르면서 진행되었습니다(이러한 경제발전 방식에 대해선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잘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적 성과를 내고, 세계적인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은 정부와 맞먹는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정부가 주도권을 잃은 것이죠. 특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재벌이 정부에 맞설 이론적 근거가 생깁니다. 신자유주의는 쉽게 말해 시장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에서 레이건-클린턴 정부, 영국에서 대처-블레어 정부의 경제 정책의 바탕이 되었고, 한국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90년대에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이 성장하면서 정부 대 기업의 관계는 기업이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됩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죠.

현대그룹에서 CEO를 지낸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정부는 국민의 정부도,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참여 정부)도 아닌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부라면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깎아서라도 4대 강 사업을 벌여 대기업에 새로운 수익원을 공급해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대기업 회장이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 특별 사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줘야겠죠. 권력은 시장이 쥐고, 시장은 몇몇 대기업이 독점하니 이러한 대기업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남기려면 사회가 안정돼야 합니다. 사람들이 불안감이 없어야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죠. 특히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외국에서 돈 빌리기도 어렵고, 주가도 내려가기 때문에 매우 안 좋습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안정되게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소한 남북 관계는 좋아지리라는 예상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의외로 북한을 자극하는 태도를 보이며 남북관계를 긴장상태로 끌고 갔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정말 북한과 대치하기 원해서가 아니라, 툭툭 말을 내뱉는 이명박 대통령의 특성상 의도와 다르게 북한의 자존심에 상처주는 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은 잘못을 깨달았는지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선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이 침몰했습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북한과 연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우리 군함을 공격했다면 이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이고, 곧 주가의 폭락과 환율의 폭등, 더 나아가 전면전으로 말미암은 경제의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완전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보수층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들은 "북한은 우리의 철천지원수"라는 시각으로 모든 사태를 보기 때문에 이번 일도 당연히 북한이 저지른 일로 생각합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라면 이런 사태에서 북한에 대해 "무력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연계 가능성을 언급한 국방장관의 입조차 막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이기에 대통령으로 뽑아준 이들로서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이죠.

이처럼 한국의 보수층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북한을 보는 태도에서 이념 보수와 경제 보수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이념 보수는 경제가 파탄 나도 북한을 공격하기 원하고, 경제 보수는 북한이 무슨 짓을 하든 경제를 위해 덮고 넘어가기 원합니다. 이번 천안함 사고는 두 세력 간의 간격을 확인하게 해준 중요한 계기죠. 이러한 두 집단 간의 차이가 다음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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