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나면서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강경한 표현을 쓰기 좋아하는 북한은 연일 공격적인 말투로 한국 정부를 비난 중이고, 우리 정부도 이번엔 밀리지 않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곧 전쟁이 난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북한 전쟁 선포설, 예비군 동원령 등 잘못된 정보를 담은 문자 메시지까지 돌아다니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한 지금, 남북 간의 전쟁은 한반도 전체의 파괴를 의미하기에 작은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온 국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실제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우선, 주가와 환율의 변동을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주가와 원화가치가 대폭 떨어졌는데, 그 원인은 남북관계의 긴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다시 찾아오면서 한국을 비롯한 고수익 고위험 시장에서 저수익 저위험 시장인 미국으로 돈이 옮겨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원화뿐 아니라 유로화도 가치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변동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한반도의 위기가 반영된 주가, 환율 변동 폭을 생각해 본다면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이는 경제계에선 이번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는 뜻이죠.

아마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을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당시 상황은 물리적인 변화가 원인이 아닌, 시스템상의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쳤다고 공장이 사라지거나 원자재가 증발하는 것은 아니죠. 단지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새기면서 상품이나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와는 다릅니다. 전쟁이 나면 경제활동이 둔해질 뿐 아니라 물리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에 있는 거대한 빌딩이 폭격으로 무너지면, 그 빌딩의 가치는 완전히 사라집니다(이론상으로 땅의 가치는 남긴 하겠지만). 어느 회사의 공장과 연구소, 본사가 모두 파괴된다면 그 회사의 주식은 휴짓조각이 됩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말미암은 주가와 환율의 변동은 경제위기로 말미암은 변동보다 훨씬 커야 마땅합니다. 1997년 당시 외화부족 사태를 맞아 환율이 두 배 반 정도 오르고, 주가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생각할 때 지금이 전쟁의 위기를 앞둔 상황이라면 이보다 큰 수준의 변동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 변동폭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제가 전쟁의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또 하나의 근거는 남북 지도자들이 전쟁을 원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나서, 전쟁이 일어날 뻔 한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전쟁이 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 지도자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위험에 대해 떠들면서 내부적 결속을 다졌고, 반대파를 탄압하였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일으킬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회만 되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의 대치 상태보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도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정치적 목적을 이룬 후 슬그머니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꼭 전쟁을 피하는 쪽으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치상태가 유지되는 가운데 한쪽에서 실수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아니면 실무착오로 무력이 행사된다면 이는 곧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죽일 마음은 없지만(그러다가 자신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옆에서 갑자기 소음이 난다면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서 둘 다 죽을 수 있죠.

이러한 비극은 평상시에는 상대방에게 연락함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사고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고 인정한다면 우선 사태를 확인할 동안만이라도 대응을 자제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치상태에서 적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군도 즉시 반격에 나서고, 일단 쌍방 무력사용이 시작된다면 전쟁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냉전 시대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핫 라인을 열어 놓고, 혹시나 상대방의 실수로 말미암은 무력 사용이 전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남북한도 1971년 부터 남북 연락관 통화용 직통전화를 설치하여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실수로 말미암은 충돌을 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결국 2008년 직통전화선이 끊겼습니다. 지금 북한군이 박격포라도 쏜다면, 우리 군은 이것이 실수인지, 상부의 의지와 다르게 말단 지휘관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는지 알 길이 없기에 반격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반격하면 이는 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말이 안 통하니 주먹질이 시작되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셈이죠.

어쨌든 저는 어렵게 마련된 한반도의 평화 기조가 한순간 날아갔다는 점에서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과연 이렇게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상황이 많은 국민이 원하는 상황일까요? 부디 이번 사태가 무사히 끝나고, 다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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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명시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합조단은 이러한 결론을 내린 근거로 사고 지점에서 발견된 북한 어뢰 잔해 등을 증거물로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책임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 셈이 되었고, 미국 등 우방국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볼 때 한반도의 긴장은 당분간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조사가 끝났으니 더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은 없어야 하는데, 저는 발표를 보며 전보다 더 많은 의혹이 생겼습니다. 합조단이 증거라고 내 놓은 자료가 너무도 엉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증거인 어뢰 잔해를 봅시다. 이 어뢰는 형태가 너무도 잘 보존되었기에 한눈에도 어뢰 잔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어뢰가 1,200톤급 초계함을 두 쪽 냈다면 대단한 폭발을 일으켰는데, 남은 폭발하면서 자신은 고스란히 형태를 보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히로시마 중심부에서 원자 폭탄의 잔해가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라는 발표가 나온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도시 전체를 파괴한 폭탄이 자신은 모양을 보존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죠. 마찬가지로, 천안함을 파괴한 어뢰도 파편 일부분이 발견될 수는 있어도 껍데기만 빼고 알맹이는 그대로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군사전문가인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도 미디어 오늘과 인터뷰에서 "그 어뢰 수거물은 250kg 폭발력을 가진 어뢰 본체에 붙어있는 장치인데 과연 이렇게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죠.

물기둥이 100미터 솟았다는 증언의 신빙성도 떨어집니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사람 중에서 물기둥을 보았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군은 물기둥이 없다는 사실을 "버블 제트가 터지는 위치에 따라 물기둥이 옆으로 퍼지면 안보일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밑에서 떠오르는 버블 제트가 배에만 위 방향을 작용하고 물에 대해선 옆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거엔 군이 "물기둥은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기둥을 본 증인이 있다니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합조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 군은 유실되었다고 알려졌던 가스터빈실을 인양했습니다. 가스터빈실은 큰 충격을 받고 떨어져 나간 부위로, 만약 천안함이 어뢰로 침몰했다면 화약흔이나 어뢰 파편이 많이 발견될만한 중요한 부위입니다. 그런데 합조단은 가스터빈실에 대한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준비한 자료만으로 예정대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합조단이 얼마나 성의없이 조사를 마무리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말 한 점의 의혹이 남지 않는 조사를 발표하려면 예정된 날짜를 연기하고 가스터빈실을 조사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그 작은 어뢰 잔해도 찾아내면서 사고 지점에 그대로 가라앉은 40톤이 넘는 거대한 물체를 지금에야 인양했다는 사실 자체도 의혹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번 합조단의 발표는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정부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믿는다면 이는 최소한 남북관계 경색과 이로 말미암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고(벌써 하루 만에 원화 가치와 주가가 크게 떨어졌죠), 만약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면 전쟁으로 말미암은 국가적 재앙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띄는 발표치고는 너무 의혹이 많이 남습니다.

북한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려면 한 점의 의혹이 남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줘야 마땅하죠. 부디 앞으로라도 국민의 의혹을 없앨 추가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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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천안함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최근 인터넷의 큰 흐름으로 떠오른 대표적인 서비스입니다. 두 서비스의 규모를 따져 본다면, 페이스북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용자가 4억 명에 달하고, 트위터는 전체 가입자 7천5백만 명 중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20% 미만이라는 점에서 페이스북이 몇 배 크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페이스북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고, 가끔 트위터 관련 기사가 보일 뿐입니다. 이는 트위터라는 매체가 언론인이 활용하기에 좋고, 따라서 트위터에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언론인이 매력을 느끼니 트위터에 대한 기사가 비교적 자주 나오는 것이죠.

트위터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에 좋은 서비스입니다. 트위터의 핵심인 follow는 내가 상대방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기에, 상대방이 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내 정보를 받아들이겠다고 팔로우를 하면 나도 상대방의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팔로우를 해야 한다(이른바 맞팔)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자발적인 선택이지 상대방에게 강요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처럼 트위터가 일방적 정보 전달에 유용하기에 트위터의 세계에선 유명한 사람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사실 한국에 그나마 트위터 사용자가 늘어난 것은 몇 명의 유명 인사와 트위터를 대단히 사랑하는 트위터 전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위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트위터에 계정 하나 만들고 이렇게 트위터 계에서 유명한 사람 몇 명 팔로우 하다 보면 트위터 하는 재미가 생기기 때문이죠. 실제로 KAIST 연구팀이 트위터 전체 사용자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트위터 전체 사용자의 22%만이 맞팔을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일방적으로 연결된 관계라는 뜻이죠.

이에 비해 페이스북은 철저하게 쌍방향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페이스북의 핵심인 Friend 관계는 한쪽이 요청을 보내 다른 쪽이 동의한다면, 그때부터 두 사람은 동등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 관계에서 나는 상대방의 소식을 들을 권리가 있고, 상대방도 나의 관계를 들을 권리가 생기죠. 그래서 페이스북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Friend request를 보내지 않는 것이 좋고, 보낸다고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Friend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정보를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는 뜻인데, 모르는 사람과 이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죠.

이러한 관계 연결방식의 차이 때문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이용 패턴은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트위터에선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마음껏 할 권리를 얻는 셈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계에서 정보를 매개하는 정보의 허브 역할을 합니다(신문을 보니 카이스트 팀은 팔로워가 많다고 RT가 많이 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는데, 어쨌든 팔로워가 많으면 많은 사람이 메시지를 접하고, RT가 될 가능성이 올라가긴 하겠죠).

트위터에서 Retweet이 전파되는 모습. 몇 명의 Tweet은 특별히 많이 퍼짐. 카이스트 연구팀의 자료


페이스북은 내가 상대방의 정보를 들여다볼 권리는 얻는 대신 상대방에게도 내 정보를 들여다 볼 권리는 주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Friend를 맺지 않게 되고, 결국 Offline에서 나와 친한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마련입니다. 이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와 팔로워/팔로윙 관계의 대부분인 트위터와 매우 다른 점이죠. 페이스북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에, 대부분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200명 정도의 친구가 있을 뿐, 500명 넘는 친구를 맺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비교적 소수와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보편적으로 유용한 정보보다는 개인의 삶과 관계된 정보를 많이 올리게 됩니다. 물론 트위터에도 개인적인 정보를 올릴 수 있지만, 이럴 경우 나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해 온다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나 오늘 여친과 롯데월드 갔다 옴"이라고 쓰면 친구들이 "놀이기구 뭐 탔는데?"하고 질문해도 괜찮지만, 같은 질문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놀이기구 뭐 타셨어요?"한다면 과연 답변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트위터에 객관적인 정보를 올리고, 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질문할 때 추가로 답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관계가 다르니 자연스럽게 올리는 정보도 달라지는 것이죠.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페이스북은 친교를 위한 장이고, 트위터는 정보 제공을 위한 장으로 역할이 구분됩니다. 물론 페이스북에서도 친구들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트위터에서도 교제를 나눌 수도 있지만, 각 서비스의 특성상 특정한 역할에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왜 한국에서 트위터의 바람은 불어도 페이스북의 바람은 불지 않는지 설명해줍니다. 트위터는 내 주변에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어도 가입해서 몇 명의 유명인을 팔로우 하기만 해도 유용합니다. 그에 비해 페이스북은 내 주변에 사용자가 별로 없다면 거의 쓸모가 없는 서비스죠. 한국에서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적기 때문에 유용성이 떨어지고,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가 늘지 않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입니다. 이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라는 페이스북의 특징상 피하기 어려운 문제죠.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자면 페이스북은 이미 세계인의 상당수가 활동 중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데 유용하고, 이렇게 유용하기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많은 선순환 구조를 보입니다. 그에 비해 트위터는 트위터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만 가입하고, 가입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서 앞으로 얼마나 성장을 유지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두 서비스가 어떻게 성장할지, 그리고 한국에서 두 서비스가 정착에 성공할지 궁금해지는군요.

P.S. 저는 내일 아침부터 10일에 걸쳐 회의 및 출장을 다녀옵니다. 혹시 중간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분은 제 트위터 계정( @cimio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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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Facebook이 방문자 수 기준으로 구글을 추월했다는 소식은 페이스북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에겐 매우 충격적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때 전 국민이 싸이월드에 접속했듯,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거의 절반이 가입한 페이스북이 가장 방문자가 많은 사이트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구글은 검색 결과를 보고 다른 페이지로 옮겨가지만,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의 특성상 한 번 접속하면 오랜 시간 머물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인터넷 사용시간 중 페이스북의 비중이 높다는 말이죠.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한 세기에 한 번 나오기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처럼 페이스북을 중요하게 보는 근거는 페이스북이 익명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익명의 사용자가 익명의 인물이 만든 웹페이지를 찾아다니는 공간이었죠. 익명성은 사생활 보호라는 점이 장점이지만,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기에 정보를 신뢰하기 어렵고, 정보를 획득하는 사람의 신분도 확인할 수 없기에 정보의 전파과정을 파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즉,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만든 정보를 누군가가 전파하고, 다시 익명의 대중이 흡수하는 방식이었죠. 구글은 이러한 익명의 인터넷에 잘 어울리는 서비스입니다. 나는 무명의 정보 제공자가 되어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정보를 올리고, 구글은 이러한 정보를 가져다가 무명의 검색자에게 제공합니다. 이렇게 구글이라는 중계자를 통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정보를 주고받게 됩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모델은 다릅니다. 페이스북은 나와 친한 사람들이 관계를 통해 묶인 네트워크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나는 익명의 존재가 아니고, 내가 올리는 정보는 나와 연결이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정보를 그 정보를 올린 사람과 묶어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페이스북의 목표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구체적인 인간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계정으로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 할 수 있도록 하는 Connect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제 이러한 서비스에 가입한 사이트에서 페이스북 계정으로 접속하면 자신이 남긴 댓글이 페이스북에 연동하여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과거엔 사이트마다 다른 계정으로 접속했기에 자신이 인터넷 곳곳에 남긴 댓글이 연관성 없이 흩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내 댓글은 페이스북이라는 허브를 통해 일관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정보의 개인화"는 사용자뿐 아니라 기업들에도 큰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기업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기에 불필요한 광고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인터넷이 탄생하기 전, 대중을 상대로한 광고(거리의 광고판, TV나 종합일간지의 광고)는 대부분 지독하게 비효율적이었죠. 미국의 기업가들이 "우리 회사 광고 예산의 절반은 낭비가 된다. 문제는 어떤 절반이 낭비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는 농담은 이러한 상황 때문에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TV에서 주방용 고무장갑 광고를 보는 시청자 중에 실제로 고무장갑을 구입할 사람이 몇%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고무장갑의 주 소비층을 찾아내 이들에게만 광고할 방법이 없어서 전 국민이 보는 매체를 통해 광고하고 그 중 타켓 구매층이 반응하길 기대했던 것이죠. 인터넷이 나오면서 상황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의 Adsense로 유명해진 문맥 광고는 문맥을 분석해 그와 연관된 광고를 띄워 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블로그가 컴퓨터와 관련된 글을 많이 싣는다면, 이 블로그를 찾는 독자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을 것이고,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관련 광고를 띄워주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방식이 과거의 무작위 광고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컴퓨터가 문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여전히 한계가 분명합니다. 말이란 매우 미묘하고 모호해서 컴퓨터가 이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그런데 페이스북이 정보의 허브로 등장한다면 기업들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쓰는 사람은 나이, 성별, 직업, 종교, 결혼 여부 등을 프로필에 적어 넣습니다(이는 선택사항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어떠한 행동양상을 보인다는 식으로 정보를 얻는다면, 이를 이용해 광고나 마케팅에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LA에 거주하는 20대의 남성이 아바타가 나오기 전 이 영화의 트레일러를 가장 많이 클릭했다."는 정보가 있다면, 영화 배급사는 이들이 이 영화의 중요한 타겟 소비자라는 사실을 알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나설 수 있습니다. 과거엔 "아바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정확히 잠재적 관객의 나이이나 성별 등을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정보를 페이스북에서 쉽게 얻게 된 것이죠.

물론 페이스북을 통한 정보의 개인화는 사생활 침해라는 중대한 위험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으로 연애의 기록을 남기다 헤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듯, 자신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는다는 사실이 꼭 좋은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의 대표 마크 저커버그는 개인의 사생활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여러 번 구설에 올랐기에 페이스북에 개인정보를 맡기기가 무섭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페이스북이 개인 정보를 악용하거나, 해커의 침투를 막지 못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페이스북은 가입자가 여전히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정보보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페이스북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늘고, 이는 페이스북에 위기가 될 것입니다. 과연 페이스북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터넷의 중심으로 성장할지 주목됩니다.

참고글- Great Wall of Facebook (W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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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lourious Basterds 마지막 장면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미국인 장교는 독일군 장교의 이마에 나치 상징을 칼로 새겨 놓고 "이것이 내 걸작일지도 모르겠군"("I think this just might be my masterpiece.")이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며 Written and Directed by Quentin Tarantino"라는 자막이 나오죠. 곰곰이 의미를 따져 본다면 이 장면은 이 영화를 자신의 걸작으로 생각하는 타란티노 감독의 자부심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세계 평론가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신작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를 그가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뽑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인물 묘사와 살아 있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타란티노 특유의 재치는 여전하고, 각 챕터를 다른 영화 형식으로 만드는 등(예를 들어, 1장은 서부극, 2장은 잔혹극, 3장은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 표현은 지극하지만, 2차대전을 무대로 한 전쟁 영화치곤 액션이 부족했고, 필요 없이 잔혹한 장면이 너무 많으며, 독일의 모든 지도자가 모인 영화 시사회장에 등장하는 경비병이 단 두 명인 데서 알 수 있듯 줄거리의 현실성도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타란티노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일까요?

타란티노 감독의 의중을 이해하려면, 이 영화의 주제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을 주제로 본다면 이 영화는 과장된 묘사로 가득한 이류 영화일 뿐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이는 프랑스 여인과 독일인 병사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대신, 서로에게 총을 쏘며 끝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미지와 현실, 그리고 영화의 3각 관계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영화로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적진에 침투한 병사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거짓 신분을 취득합니다. 연합군에 협력하는 여배우나 나치에게 쫓기는 프랑스 유대인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신분을 숨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관습, 태도를 흉내 내고, 때로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하는 옷을 입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신은 현실의 왜곡이기에 부정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만약 나치가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과거를 숨겨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그의 과거를 알지 못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겠죠. 그가 이웃에게 친절하고 늘 웃는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면 "이 사람이 과거에 나치였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겠죠. 이처럼 이미지는 현실을 왜곡함으로 거짓을 낳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가 이미지를 보여줌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왜곡하기 마련입니다. Inglourious Basterds 에 나오는 영화 속의 영화 "국가의 자랑"(Stolz der Nation)을 보면, 홀로 적들과 싸우는 병사가 바닥에 나치 상징을 새겨 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목숨이 걸린 위태한 전투를 벌이면서 바닥에 문양을 새길 여유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든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꼭 필요하고, 관객들을 이를 보며 환호합니다. 영화를 통해 한 명의 평범한 병사는 전쟁영웅으로 거듭나고,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한 투쟁은 국가를 구하기 위한 영웅적 행동으로 격상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로 수백 명과 맞서 싸운 독일 병사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영사실에서 나옵니다. 영화 속에선 영웅으로 그려졌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사람들을 죽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영화는 이미지를 제공함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쓰이기에 현실의 노예, 현실을 지배하는 세력의 노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러한 노예생활에 싫증을 내고, 현실에 저항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타란티노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그는 현실에 종속된 영화를 해방해, 현실을 지배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원합니다. 이러한 그의 욕망은 영화 필름에 불을 붙임으로 독일 제3제국을 무너뜨리는 영화관 장면에서 잘 표현됩니다. 이 기이한 시퀜스에서 나치의 핍박을 피해 숨어 살던 쇼샤나 드레퓌스는 독일인들이 즐기던 애국 영화를 끊고 화면에 등장해 복수를 선언하고, 핍박받는 또 다른 인종인 흑인의 도움으로 필름 더미에 불을 붙임으로 영화관에 있던 나치 지도부의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현실에 종속되던 영화(=필름)이 현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격상하는 순간입니다. 현실에 대한 영화의 저항 선언으로 이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가 현실에 대한 영화의 독립을 선언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이 영화가 역사를 바꿔 썼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1945년 베를린에서 죽는 히틀러는 이 영화 속에서 그보다 훨씬 전 파리에서 죽습니다. 대부분 관객은 이를 보며 "에이, 말도 안된다."라고 했겠죠. 하지만, 영화가 진정으로 현실에서 독립했다면 현실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영화의 필요를 따라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창조할 수도 있죠.

여기까지만 본다면 타란티노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명백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나치 장교 한스 란다는 연합군과 거래를 통해 독일 제3제국의 붕괴를 돕는 대신 유대인 사냥꾼이라는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고 세계를 구한 전쟁 영웅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왜곡을 위해서 그는 독일 군복을 벗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의 평상복을 입을 생각이죠. 하지만, 영화에서 한스 란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 분)은 이러한 이미지를 통한 현실 왜곡을 참지 못하고 란다의 이마에 나치 문양을 칼로 세깁니다. 이제 란다는 나치일 뿐 아니라, 나치의 이미지를 지니게 되죠. 이처럼 현실과 이미지를 통일하는 작업의 주체는 당대 가장 유명한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브래드 피트입니다. 사생활을 보나 영화 속의 이미지를 보나 가장 영화배우 다운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는 곧 영화라는 매체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죠. 즉, 이 장면에서 영화는 현실과 이미지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앞 장면에서 등장한 "현실을 지배하는 영화"와는 다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라는 개념의 표현이죠. 그렇다면 타란티노 감독은 두 개의 다른 영화관을 이 영화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 두 개념은 영화사를 지배한 "형식주의"와 "사실주의"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타란티노 감독은 한 영화에서 두 전통을 하나로 묶는 대담한 시도를 한 셈입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앞으로 이 영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분명히 이와 유사한 해석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는 타란티노를 진정한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는, 말 그대로 걸작으로 인정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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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 2.0

경제 2010/05/08 06:00
금요일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어제에 이어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전날 미국 증시는 다우 지수가 장중 1,000포인트나 떨어지는 폭락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수 하락의 큰 부분은 주문 실수로 말미암은 오류 때문이라지만, 이를 제외하고라도 주가가 하루에 3.2%나 떨어졌으니 세계 증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언론은 세계적인 주가 하락이 그리스의 부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 사태는 몇 달 전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정부의 재정고갈과 이에 따르는 긴축재정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예견되어 있었고, 최근에 새로 나온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갑자기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하는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언론은 대중이 이해할 만한 원인을 들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법이고, 이번 주가 하락이 "그리스 사태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기에 대부분 언론이 맹목적으로 보도할 뿐,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은 주식 시장이 재료(주가 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소식)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주식 시장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료가 등장했을 때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시장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료보다 재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두바이 사태가 벌어졌을 때, 세계 증시를 뒤흔들 위험한 재료였지만 별문제 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시장이 견디지를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시장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2008년 가을 이후, 세계 경제는 늘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경제의 핵심인 실물경제가 안 좋았기 때문이죠. 실물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악순환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각국 정부는 이러한 불황을 타개하려고 금리를 낮추고(저금리), 돈을 많이 찍어내고(양적 양화), 재정 지출을 늘리는(재정 적자) 정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돈을 구하기가 쉬워졌고, 경기가 되살아나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돈은 금융권에만 머물렀기에 주가는 올랐지만, 실물경제엔 도움이 전혀 안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금리가 낮아지자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에 돈이 몰리면서 한국은 2010년 1분기 GDP가 전년대비 7.8%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으로 들어온 돈도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주가를 올리고 환율을 낮추는 역할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작년 대비 보유 주식이 7.8% 오른 사람은 많아도, 소득이 7.8% 오른 사람은 적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겉으로나마 좋아진 듯 보이던 경제상황이 이제 부실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빚을 내려면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 좋아야 하는데, 개인의 빚은 정부가 공급할 수 있지만, 정부의 빚은 정부 자체의 신용이 좋아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던 몇몇 정부가 지난 2년간 경제위기를 넘기 위해 지출을 더 늘리다 보니 신용이 급격히 안 좋아졌습니다. 유럽만 놓고 볼 때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이고, 세계적으로는 STUPID(스페인, 터키,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두바이)이 여기에 속하죠. 즉, 2008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정부가 나서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2년이 지나고 나니 경제는 안 살아나고 정부까지 부도가 나게 생긴 것이죠.

지금 세계적으로 돈이 부족한 정부가 많은데 그리스와 포루투갈 등 유럽 정부에서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이들이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쓰기 때문입니다. 유로지역 국가들은 단일 통화를 쓰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ECB)을 통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합니다. 이는 한 나라가 돈이 부족하다고 통화량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출 수 없다는 말이죠. 즉, 유로존 국가는 위기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훨씬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못 넘긴다면 세계 경제는 2008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당시엔 "각국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구할 것이다"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부도 믿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물론 당장은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사실 미국도 유럽보다 상황이 좋다고 할 수가 없기에 언제까지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겪는 나라 중 한두 개 정부라도 부도가 난다면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신용경색이 오고, 소비심리가 위축돼 세계적인 공황이 올 수가 있습니다. 1997년 동남아시아의 위기가 한국과 브라질을 거쳐 러시아로 퍼지던 현상이 세계적인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에야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많기에 증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죠.

결국, 이번 위기는 각국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세계 경제는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고 난 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유럽이 이번 위기를 잘 이겨낸다고 해도(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이 위기의 끝은 아니라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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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 터치를 쓰는 사람은 아이폰을 아이팟 터치 + 휴대전화라고 이해하지만, 아이팟 터치를 쓰다가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아이팟 터치와 아이폰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아이팟 터치로도 주변에 접속 가능한 WIFI망이 있다면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아이폰은 언제라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데, 이 차이가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크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이팟 터치로는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으로는 Seoul Bus 같은 어플을 이용해 즉시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만 있으면 인터넷에 접속해 버스뿐만 아니라 도로의 교통 정보, 날씨, 주가 등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를 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정보는 언제라도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면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컴퓨터가 시작한 데이터베이스 혁명의 완성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컴퓨터가 존재하기 전,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의 대부분은 종이 위에 기록된 잉크의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생기고 정보를 거의 무료로 처리할 수 있게 되자 많은 기업이 자료를 컴퓨터로 옮기는 전산화 작업에 나섰죠. 하지만, 이렇게 전산화한 정보는 각 기업이나 단체의 컴퓨터 속에만 있었고, 이를 외부에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대학 도서관이 어떤 책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려면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고, 그 대학에 직접 가서 단말기(터미널)로 그 대학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야 했죠.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흔치 않은 책 한 권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면 전 세계 여러 대학을 돌아다녀야 했다는 뜻이죠.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거에 외부로부터 단절된 컴퓨터 속에 들어 있던 자료는 이제 세계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살아 있는 정보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계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고, 과거에 정보 중계인의 역할을 하던  증권회사, 여행사 등은 이제 정보 제공의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는 이러한 정보의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데이터베이스는 특정한 형태로 모아 놓은 정보입니다. 데이터베이스로 모인 정보는 쉽게 검색하거나 다른 자료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Amazon.com은 엄청나게 많은 도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고, 이를 활용하면 어떤 저자가 어떤 책을 썼는지, 어떤 주제를 다룬 책이 얼마나 많은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danawa.com은 각종 전자제품의 가격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제공하는데, 어떤 제품을 어떤 판매처가 어떤 가격으로 판매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특수인 만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누구나 데이터베이스에 쉽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을 이용한 데이터베이스 이용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또한, 당시엔 대부분 컴퓨터가 데스크탑이었기에 인터넷 이용은 직장이나 학교, 가정 등 생활 거점에서만 가능했죠. 하지만,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인터넷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고(아이폰의 광고문구가 "Internet in your pocket"이죠), 이제는 어디서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중이 스마트폰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게 되면서 정보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더욱 커졌고, 이는 정보를 정보제공자의 소유로 보는 관점과 충돌하게 됩니다. 아이폰용 어플인 Seoul Bus의 서비스 중단 사태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죠. Seoul Bus는 버스의 도착시각을 실시간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알려주는 어플입니다. 그런데 경기도에서 이 어플이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고, 이 어플은 경기지역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용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였고, 결국 경기도는 태도를 바꾸어 이 어플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도록 허용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시민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정보를 얻을 권리"를 대규모로 자각한 첫 번째 예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경기도는 자신들이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니 누가 어떤 어플로 접속할지를 자신들이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민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죠.

정보를 대하는 시민의 의식 변화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큽니다. 원래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정보를 최대한 국민에게 공개함으로 권력의 남용을 막습니다. 미국엔 Freedom of Information Act라는 법이 있어서 대부분 정보를 공개하도록 정부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정부문서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모두 열람이 가능하죠. 한국도 정보공개법이 있기는 한데, 이에 대한 인식이 낮아 제대로 활용이 안 되는 형편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정부가 하는 말은 무조건 믿어야 했고, 주제넘게 더 알려고 하는 사람은 큰 곤욕을 치르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마음대로 공공정보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 "공공을 위한 정보는 대중의 것이고,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라는 인식이 확산하기 마련이고, 이는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의 증가로 이어지겠죠. 예를 들어, 지금 논란이 되는 천안함 사태는 군이 사고 직전 천안함의 무선교신 내용만 공개해도 큰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정보 공개를 요구할 법적 근거는 없을까요? 만약 법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된다면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생각을 하기가 어렵게 되고, 국민이 품는 의혹도 줄어들 것입니다.

지금 징행중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생활방식의 변화는 시민의식의 성장을 낳고, 이는 결국 정치적인 변화와 개혁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본문에 경기도 예기를 하면서 시민이라는 표현을 써서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시민(Citizen, Citoyen, Bürger)은 근대 유럽 정치계의 용법을 따라 정치적으로 각성한 존재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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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시대

사회 2010/05/04 02:45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는 Status라는 칸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이 칸에 자신이 지금 하는 일, 자신의 감정 상태,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 등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각 사람이 Status를 올리면 나는 이를 News Feed 페이지에서 모아서 볼 수가 있습니다. 길게 글을 쓸 필요 없이 간단하게 친구 간에 의사소통하기 좋은 장치죠.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장치로는 메신저 대화명을 들 수 있습니다만, 대화명은 지금 로그인해서 내 대화명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전달되기에 과거에 쓴 내용도 모두 기록이 되는 페이스북의 Status와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페이스북의 Status는 간단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지만, 페이스북 내의 작은 서비스이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쓰지 않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과거엔 페이스북 상의 친구만이 Status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Security option에서 공개여부를 선택할 수 있죠) 유용성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런데 Twitter라는 회사가 생기고, Facebook의 Status 기능을 독립 서비스로 제공하면서 이러한 소통방법이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사진 올리기부터 채팅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강력하지만, 때로는 번잡하게 느껴지는 Facebook과 달리, Twitter는 140자를 쓰고 읽는 기능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훨씬 단순합니다. 하지만, 이 단순함을 무기로 트위터는 탄생한 지 4년 만에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은 한 달에 10억 개의 메시지가 올라올 정도로 사용자가 많습니다.

트위터가 성공을 거둔 원인은 간단한 아이디어의 잠재성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단문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Facebook의 Statu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간단한 기능을 독립해서 제공하려고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복잡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생길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은 트위터로 무엇을 해야 할까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트위터의 설립자들은 단문 서비스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상상력의 힘만으로 인터넷을 움직이는 거대한 회사를 만든 것이죠.

최근에 상상력이 중요해진 원인은 각 분야를 구분하는 벽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한가지 영역의 지식이 그 영역에서만 쓸모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지식은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제약분야의 예를 들자면, 지금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은 유전자 공학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공학은 제약과 직접 관련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유전자 공학으로 획기적인 약효를 보이는 신물질이 개발된다면 제약업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죠. 피터 드러커는 이처럼 지식이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면서 전통적인 기업의 연구소들이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정 영역을 열심히 연구하는 기업 보다, 다른 분야에 대해 다양하게 알고, 이러한 지식을 창조적으로 자신의 영역에 적용하는 기업이 더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애플은 컴퓨터용 운영체제인 OS X을 개발했지만, 이를 휴대전화에 적용해 iPhone을 만들었을 때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수십년간 휴대전화만 개발해온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애플의 뒤를 쫒느라 난리가 났죠. 이처럼 하나의 지식을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엔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상상력은 인터넷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입니다. 과거엔 돈과 권력이 사회를 움직였지만, 대부분의 활동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인터넷 세상에선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음악공유 서비스인 냅스터를 세운 션 패닝은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입니다. 90년대 말 고등학생이던 패닝은 쉽게 음악을 찾는 방법을 원했습니다. 당시 음악 공유는 인터넷 서버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특정한 서버에 음악 파일을 올리면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당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접속하면 서버가 다운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용자를 Peer-to-Peer 방식으로 연결한다면 각 사용자가 파일을 전송하기 때문에 서버 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파일을 주고받는 개인이 법적인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인터넷으로 다른 프로그래머들과 나눴지만, 오직 "사람들이 뭣 하러 익명의 대중과 음악 파일을 공유하겠느냐?"라는 회의적인 반응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기꺼이 음악을 공유할 것이다"라고 믿고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그가 냅스터 서비스를 개시하자 사람들은 그의 예상대로 무료로 음악을 주고받았고, 결국 냅스터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냅스터를 통한 음악 공유는 불법이었고, 이 서비스는 2년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하지만, 션 패닝은 다른 사람이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익명의 대중에게 음악을 공유함)을 상상함으로써 인터넷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냅스터가 대중화한 P2P 기술은 오늘날 인터넷의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 잡았죠.

20세기 이후로 기술의 발달을 통해 물질적 한계가 극복되면서 우리는 상상력이 인간의 한계를 결정짓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상상력만 무궁하다면, 물질적인 한계는 쉽게 극복되기 때문이죠. 오사마 빈 라덴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입니다. 그는 이미 90년대에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미군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주도해서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테러리스트로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돈과 무기와 병력을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대의 교통, 통신 기술을 활용해 테러 활동을 벌인 것이죠. 그가 현대 기술을 활용해 혼자서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벌였기에 토마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그를 "Super-empowered individual"의 예로 들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활동은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극히 한정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자 초대형 테러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 그는 거대한 폭탄을 만들거나, 수만 명의 군대를 조직하는 대신, 몇 명의 테러리스트를 미국으로 보내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게 합니다. 그는 이들이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다면 비행기를 무기 삼아 중요한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당시 미국은 이러한 공격을 상상도 못하였기에 이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리드먼은 9/11사태에 대해 "미국이 상상력 싸움에서 졌다."라고 한탄했죠. 한쪽은 미국을 공격하려고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미국은 이러한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났다는 말이죠.

이처럼 상상력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상상력을 쓰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빈곤을 퇴치하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제로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은 세계의 보건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사람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누군가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길 기대한다는 말이죠. 과거라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대한 금액을 투자해 체계적인 연구부터 했겠만, 지금은 엄청난 자료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누군가가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놓기만 해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열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설명서와 약이 들어 있는 상자를 나눠주기만 해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간단한 아이디어가 수 많은 생명을 구하는 예입니다. 앞으로 우리 주변에도 현실에 얽매여 상상력이 갇힌 사람 보다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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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인터넷은 무한한 정보가 있는 거대한 영역이지만, 막상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특정한 사이트 몇 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포털은 이러한 사용습관을 이용해서 이메일, 뉴스, 경제정보, 만화, 블로그 등 사용자가 원할만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제공함으로 사용자를 붙들어 두고, 여기서 많은 광고 수입을 얻습니다. 하지만, 포털은 정보를 얻는 데는 유용하지만 인간관계를 돕는 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관계를 넓히고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이용하기 마련이죠. SNS의 좋은 예로는 싸이월드를 들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1999년에 시작한 관계 중심의 사이트로, 전 세계적으로 봐도 SNS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누구나 쉽게 작은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한때 "전 국민이 싸이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싸이월드의 인기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해외로 진출하려던 싸이월드의 노력도 변변한 결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싸이월드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My Space와 Facebook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Facebook은 미국에서 방문자수가 구글을 제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싸이월드는 시장 선도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Facebook에게 밀려나게 되었을까요?

싸이월드의 큰 약점은 싸이월드가 한국인에게 특화한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싸이월드는 한국에서 시작한 서비스고,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방식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미니홈피의 디자인과 미니미, 미니룸 등은 모두 한국인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그래픽입니다. 이는 싸이월드를 외국으로 옮겨가려면 외국인에게 맞게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던지, 외국인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추길 기대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에 비해 페이스북의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고, 그래픽이 적기 때문에 어느 나라 사람이나 그럭저럭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단, 한국인이 보기에 페이스북의 디자인은 너무 심심하고, 그래서 한국인 중에 페이스북 사용자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싸이월드는 윈도우 중심인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맞춰 설계되었기에 윈도우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맥 사용자나 파이어폭스 사용자는 사용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에 비해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다양한 환경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여러 나라의 환경을 반영하였기에 어떤 플랫폼이나 브라우저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싸이월드는 외부에 대해 닫힌 체제(closed system)라는 점에서 페이스북과 차이가 큽니다. 싸이월드의 모든 서비스는 싸이월드에서 제공되고, 다른 회사는 싸이월드 사용자와 관계할 수가 없습니다(소수의 특수 관계 회사는 가능할지 몰라도,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죠). 그에 비해 페이스북은 API를 공개해서 다른 회사가 페이스북과 연동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Tripit.com에서 여행일정을 관리하는데,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과 연동하기에 Tripit.com에 여행일정을 올리면 페이스북의 내 프로파일에 여행일정이 동시에 올라갑니다. 또한,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의 사랑을 받는 FarmVille이나 Mafia Wars 등도 페이스북이 많은 게임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이 만든 게임이죠. 이처럼 다양한 회사들이 페이스북 사용자에게 자신들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하나의 플랫폼의 역할을 할 뿐이고, 서비스는 수많은 회사가 제공하죠. 이렇게 서비스 제공 회사가 많아지면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늘면서 광고수입이 늘기 때문에 페이스북에도 좋은 일입니다.

이러한 API 공개는 페이스북만이 아닌 최근 인터넷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트위터도 API를 공개하였기에 다양한 관련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한국어 메뉴를 지원하지 않는 트위터를 한글로 쓸 수 있도록 해주는 twtkr.com 도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만약에 싸이월드도 미국이나 일본에 자회사를 설치하는 대신, API를 공개하고 현지에서 싸이월드 서비스가 자생적으로 생겨나도록 했다면 어떨까요? 사실 싸이월드도 이러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서 API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는데, 지금으로선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도 장래가 밝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을 하고, 따라서 인터넷의 중심도 데스크탑에서 모바일기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트위터는 처음부터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로 업데이트가 가능했고, 페이스북은 각종 스마트폰으로 어플을 발표해서 실제로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접속을 합니다(페이스북에 모바일 기기로 접속을 해서 글을 남기면 표시가 남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바일 기기로 접속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이제서야 모바일용 어플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는데, 컴퓨터에 특화한 싸이월드 디자인이 모바일용으로 얼마나 잘 표현될지도 의문이고, 어쨌든 페이스북 등 다른 서비스보다 대응이 훨씬 늦었다는 점이 문제로 남습니다(싸이월드가 모바일 기기용 어플을 늦게 내놓은 원인은 아이폰 도입이 늦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아이폰이 나오면서 모바일 기기용 어플 개발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 빨리 시작되었는데, 한국은 작년 말에야 아이폰이 들어왔고, 그만큼 시장의 흐름에 늦게 반응한 셈이죠).

한국인이 만든 싸이월드가 SNS의 원조이지만 세계 시장에서 페이스북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페이스북이 구글만큼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싸이월드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면 한국에서 구글만 한 기업이 나올 수도 있었다는 말이기 때문이죠. 결국,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아이디어나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읽는 눈과, 문화적 장벽을 넘어 여러 나라에서 통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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