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6/29 자녀와 친구 같은 부모 (2)
  2. 2010/06/13 삼성의 미래 (3)
  3. 2010/06/03 진보와 개혁 (8)
  4. 2010/06/03 6.2 지방선거의 의미 (2)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띕니다. 과거에 대부분 사회에선 부모가 자녀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선 부모, 특히 아버지가 윗사람이 되어 아랫사람인 자녀를 마음대로 통제했죠. 가장(Pater Familias)이 가족에 대해 생사여탈권(ius necandi)을 지녔던 로마 사회는 이러한 좋은 예입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군사부일체라 하여 아버지는 임금과 스승에 비견되는 권위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유럽이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논리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는 장자끄 루소였죠. 루소는 에밀, 또는 교육에 대하여(Émile ou de l'éducation)에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하게 보고, 억압적 교육으로 이러한 인간의 선한 본성을 망가트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인간을 본능으로부터 단절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던 전통적인 교육관에 반기를 든 것이죠.

루소 등이 주창한 새로운 교육이론은 아이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전까지 아이들은 "철부지"고 어른의 지도를 받아야 할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어른" 처럼 존중되어야 할 "어린이" (아이를 존중하는 이 표현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탄생합니다)이자, 어른은 잊어버린 선한 본능을 거의 완벽한 상태로 지닌 어른의 스승이지요. 그러니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는 말이 나와도 당연한 일이죠.

아이가 이처럼 귀중한 존재라면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도 자녀를 존중해야 합니다. 자녀의 속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본성을 부모가 무리한 요구를 통해 파괴하면 안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새로운 자녀 교육 이론은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진보계통에서 큰 인기를 끕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부모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자녀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데 비해, 진보적인 가정에선 부모가 자녀를 평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하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배우가 되고 싶은 아들의 꿈을 억눌러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한 보수적인 부모를 보며, 진보주의자라면 '나는 저렇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평등하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친구 관계를 모델로 삼을 것입니다. 친구는 능력과 지위가 평등한 사람이 만나 서로의 호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하는 관계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 중엔 "친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기 때문에 친구 같은 부모가 되는 데 대해 큰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친구 같은 부모"란 멋있는 말이긴 하지만, 실천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는 평등한 관계지만 부모 자식 관계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와 부모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진정 평등하다면, 갓난아기도 가사를 돌보고, 밖에 나가 돈도 벌어와야겠죠. 그리고 부모가 아기 기저귀를 갈아준다면 아기도 부모의 빨래를 대신 해 주는 식으로 보상해야 마땅하죠.

자녀가 자라 학교에 갈 나이가 된다고 할지라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완전히 평등해 지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교육 경쟁이 심한 사회에선,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녀는 공부하고, 부모는 돈을 벌어와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나 부모의 투자나 결국 유익은 자녀가 얻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는 자신을 위해 살고, 부모도 자녀를 위해 살기 때문에 부모 자녀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감정적인 면을 봐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돈과 마찬가지로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하며 삽니다. 그런데 부모 자녀 관계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감정을 쓰고, 자녀는 부모로부터 감정을 얻으며 삽니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랑 같이 있길 원하고, 부모는 자녀가 달려들면 (처음에는 좋겠지만) 결국 힘들어서 거리를 두기 마련이죠. 자녀가 부모한테 "놀아줘~"하고 조르기는 해도, 부모가 자녀한테 "놀아줘~"하고 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은 누가 감정을 벌고, 누가 감정을 쓰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한쪽을 돕는 관계는 평등할 수가 없고, 친구의 모델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부모와 자녀가 "친할"(즉, 감정적으로 가까울)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재정적 부담을 평등하게 지는 친구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부담은 대부분 부모 몫이기 때문이죠. 또한, 판단력이 떨어지는 어린 자녀를 올바르게 이끌 책임은 부모에게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인생을 망칠 위험이 있다면, 부모는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해야겠죠. 친구라면 누가 누구를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친구로서 충고할 수 있을 뿐이죠.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Don't Sleep, There Are Snakes)에 나오는 피다한족은 부모가 자녀를 진정으로 평등하게 대할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잘 보여줍니다. 아마존 유역에 사는 원시 부족인 피다한족 어린이도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따라서 아이들에게 부모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보자면 부모가 자녀에게 일방적인 지시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막 걸음마를 익히는 아이가 모닥불 곁에서 아장아장 걸어도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두지 않고, 어린 아이가 칼을 가지고 장난해도 말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성인 남성과 진한 터치를 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어리석은 행동을 자신이 선택한다면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도로 자녀의 인격을 존중한다면 진정 "친구 같은 부모"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 부모는 아이를 끔찍하게 아끼고, 아이가 잘못되면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자녀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자녀가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고,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를 지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부모의 간섭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줄어들어야 마땅하고, 자녀가 성인이 된다면 대등한 관계로 전환해야 하겠죠. 하지만, 그전까지는 어른의 판단력을 지닌 부모가 자녀의 인격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어린 자녀의 인생을 지도하는 것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참고 글- ‘친구같은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P.S. 제가 지지난주엔 독일에서 1주일간 출장을 다녀왔고, 지난주엔 한국에 오느라 글을 못올렸습니다. 블로그 운영에 매우 소홀했음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또 다른 회의에 참석중이고, 7월 말이면 다시 독일로 출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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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미래

분류없음 2010/06/13 02:33
최근에 스티브 잡스가 WWDC 에서 아이폰 4를 발표하면서 아이폰은 다시 한 번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 4는 기존의 아이폰이 지닌 중요한 약점(낮은 해상도, 화상통화용 카메라의 부재)을 보완하였기에 구입을 망설이던 사람도 선뜻 지갑을 열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애플의 신제품 발표 때문에 갤럭시 S를 같은 날 발표한 삼성은 대단히 곤란을 겪는 듯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애플의 아이폰 3GS와 비교해서 하드웨어가 훨씬 좋다는 보도자료를 계속 제공하던 삼성은, 새로나온 아이폰 4가 갤럭시 S보다 더 얇은 등 하드웨어 성능이 별로 뒤질 것이 없기에 마케팅 포인트를 잡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사실 애플의 신제품 발표는 삼성에 꼭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공개되었듯 아이폰의 주요 부품은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이 제공하고, 따라서 좋은 아이폰이 개발되어 많이 팔린다면 아이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 메모리 등을 공급하는 삼성은 엄청난 수익을 얻겠죠. 그럼에도, 삼성이 아이폰의 성공에 불편해하는 것은 단지 갤럭시 S를 비롯한 휴대전화 판매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인이 애플에 매력을 느낄수록, 삼성은 "변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회사이고, 세계 많은 기업이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삼성은 존경보다는 경계의 대상이고, 많은 사람에게 삼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삼성에 비판적인 사람에겐 애플이라는 회사가 삼성의 문제점을 극복한 대안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따라서 애플이 아이폰으로 거둔 성공은 곧 삼성에 변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들이 던지는 "삼성은 왜 애플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은 정말 삼성이 애플과 똑같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삼성이 애플만큼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기업철학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제조회사이고, 애플은 혁신회사이니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계속하면 된다"는 삼성의 답은 이러한 질문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파악한 것입니다.

물론 삼성의 경영진은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이들은 필요에 따라 삼성의 기업문화를 여러 번 바꾸었습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꾸라"며 삼성 개혁에 나섰고, 이는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업의 영역을 봐도, 메모리 분야는 세계 최고였지만 수익성이 좋은 비메모리 부분이 취약하던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부분 개발에 눈을 돌려 지금은 아이폰을 비롯한 수많은 휴대용 기기의 프로세서를 공급할 정도로 비메모리 분야에서 앞서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삼성이 변화할 수 없는 집단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이 겪은 변화와, 지금 애플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가 삼성에 기대하는 변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지금까지 삼성이 겪은 변화는 기업 철학은 그대로 두고, 사업 방식, 사업의 영역만 바꾸는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정말 애플 같은 기업이 되려면 기업의 철학을 재정비해서 단지 돈이 되는 상품이 아닌, 소비자가 매혹을 느낄만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각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이는 지금 삼성을 특징짓는 과로와 야근, 그리고 상명하달식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죠. 또한, 마케팅과 언론플레이를 통한 제품 띄우기가 아닌, 소비자의 자발적인 호응이 나오도록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는 힘으로 경쟁사와 소비자를 억누르는데 익숙한 국내 대기업이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이죠.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비대한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법 앞에 다른 기업과 평등한 위치로 내려가야 합니다. 지나치게 큰 권력을 누리는 회사가 혁신에 앞장설 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삼성이 이처럼 뼈를 깎는 노력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이러한 변화 없이도 이미 삼성은 국내에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큰 회사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규모가 엄청나게 큰 기업니다.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는 회사가 무엇 때문에 힘들게 변신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삼성은 주식회사로 구성되긴 하지만, 실제로 삼성의 방향은 주주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이 결정합니다. 지금 삼성의 문화는 이건희 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이건희 회장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 이상 삼성의 문화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많은 젊은이는 삼성이 애플처럼 세계인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기업이 되길 기대하지만, 현실을 놓고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는 그저 삼성이 애플만큼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라는 사실에 대해 만족해야겠죠. 하지만, 같은 돈을 벌면서도 왜 어떤 기업은 존경받고 어떤 기업은 그렇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당장은 돈을 벌어도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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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개혁

정치 2010/06/03 16:44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인터넷에선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의 단일화 거부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게 신승을 거둔 이번 선거에서, 만약 노회찬 후보가 자진하여 사퇴해서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면 한명숙 후보가 넉넉하게 당선이 되었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이죠. 이러한 논쟁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벌어지는데, 조지 W. 부시가 알 고어를 힘겹게 이긴 2000년 미국 대선 때도 알 고어 지지자들이 녹색당 후보 랄프 네이더를 엄청나게 비난했고, 극우파 장-마리 르팽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을 꺾고 결선에 진출한 2002년 프랑스 대선때도 알렛 라기에를 비롯한 군소 좌파 후보들에 대한 투표가 잘못이었다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노회찬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논의야 이해하기 쉬우니, 노회찬 후보의 사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생각해 봅시다. 이를 위해선 진보와 개혁이라는 두 가지의 정치적 견해를 이해해야 합니다.

진보와 개혁은 여러모로 비슷하기에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진보나 개혁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보호, 그리고 시장의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 등을 중요한 목표로 내세우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누가 진보이고 누가 개혁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보는 현 체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따라서 극단적으로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현 체제를 인정하고 문제만 보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개혁과 차이가 납니다. 즉, 진보는 개혁보다 훨씬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하는 셈이죠.

진보와 개혁의 차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도 구분됩니다. 신자유주의는 20세기 말에 들어 생겨난 자본주의의 한 흐름인데, 개혁 정치인 중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복지정책을 강화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 등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개혁 정치인의 대표죠. 하지만, 진보 정치인이라면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보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엄격하게 부인합니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은 모두 개혁에 속합니다. 미국의 녹색당 등은 진보에 속하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권력을 잡았거나 잡을 가능성이 큰 정당은 보수거나 개혁입니다. 진보가 권력을 잡았거나 잡을 가능성이 큰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이는 진보가 원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사회를 바꿀 용의가 있는 선진국 국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진보는 소수지만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크지는 않더라도 정치를 건전하게 하는 소수의 목소리 역할을 하는 셈이죠.

한국은 군사독재와 싸우는 수십 년간 진보와 개혁이 혼재된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진보와 개혁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었죠.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 2004년 민노당의 원내진출은 진보가 드디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진보와 개혁을 혼동하였고,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개혁 정당은 민노당, 그리고 진보신당에 단일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개혁 정치인들은 개혁과 진보의 차이를 작게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을 "진보"라고 설명했고, 이는 유시민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진보 정당이 보기에 진보와 개혁은 전혀 다른 두 사상이고, 따라서 개혁 후보가 당선되어도 진보의 이념 실현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독재의 망령이 꿈틀대는 한국에서 이념을 가릴 것 없이 잘못된 권력과 싸워야 할 필요는 분명하고, 그렇기에 심상정 후보도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지만, 길게 본다면 진보는 개혁의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높습니다. 노회찬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 완주는 이러한 진보 진영의 생각을 반영했다고 봐야겠죠.

개혁이 진보보다 훨씬 큰 한국의 현실에서 개혁의 bear hug는 진보에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사랑이란 서로 좋아야 성립되지 일방적인 구애는 성희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개혁 정당이 보수 정당을 완벽하게 이기지 못한 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개혁주의자들은 답답할 수 있겠지만(저도 개혁주의자로서 많이 답답하게 느낍니다), 개혁과 진보를 다르게 보는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개혁과 진보의 무조건 통합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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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진 6월 2일 열린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선거는 천안함 사태로 말미암아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선거 막판이 되면서 북풍보다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선택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쉽게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이 전개되었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전통적인 민주당, 한나라당의 텃밭인 호남, 영남을 제외하고 볼 때 강원 지사, 충남 지사 등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민주당의 압승, 한나라당의 참패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은 안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경남에서 무소속 김두관 후보에게 도지사자리를 빼앗기는 수모까지 당하였고, 한동안 패배의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이 침몰한 직후 보이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갈수록 대북강경책을 내놓으면서 남북관계를 대치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이러한 사태는 지방선거의 중심을 "지역 발전"에서 "전쟁과 평화,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임과 불신"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여권은 이러한 변화가 보수층을 결집하고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이 실패하였음을 보임으로 야당을 무력화하리라고 기대하였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북풍"이 제대로 효과를 본 것은 1987년 대선이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론 남북관계가 좋아지건 악화하건 선거엔 큰 영향이 없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안일하게 남북 간의 긴장상태가 선거에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고(이러한 심리는 "다행히 천안함이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했다."는 여당 인사의 발언에서도 드러납니다.) 생각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만난 것이죠. 또,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 2주년에 즈음해서 "반성할 줄을 모른다."고 시민을 꾸짖는 발언을 함으로 2년 전 자신이 했던 대국민사과성명은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고, 많은 시민은 정부가 정신 차리도록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기에 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정치인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판세를 가른 당선자 중엔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가 깊은 인물이 많습니다. 안희정 후보, 이광재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었기에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김두관 후보는 "리틀 노무현"으로 불릴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정치인이죠. 이러한 노무현 관련 인사들의 대거 당선은 국민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마음으로 받아들인 증거고, 앞으로 "노무현 정신"이 한국 정치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트위터를 통한 투표 독려 운동입니다. 아마 지난 며칠간 트위터에 들어온 분이라면 곳곳에서 쏟아지는 투표 독려 트윗을 보며 "투표를 안 했다간 죄인 된 기분 들겠다."라는 부담감에서라도 투표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트위터 사용자들의 노력은 실제로 투표율을 올리는데 이바지했고, 이번 선거는 15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방송이나 언론에서 투표를 격려하는 캠페인은 많았지만,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투표 독려 메시지는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투표 격려 운동은 선거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언론은 한쪽 후보가 일방적으로 앞선다고 보도하였고, 많은 유권자는 "내가 투표해봤자 별 의미가 없겠네"하고 투표를 포기하기가 쉬웠죠. 하지만, 투표 격려 때문에 투표에 나선 사람이 많았기에 여론조사(특히 전화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지역이 많습니다.

지금 한국의 트위터 가입자가 100만 명이 훨씬 안 되는데, 만약 트위터 사용자가 앞으로 10배가 늘어난다고 가정한다면 트위터는 선거의 판세를 바꿀 중요한 통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트위터 사용자들이 특히 투표에 열심히 나선다면 트위터를 많이 쓰는 나이(아마도 20대 중반-40대 중반)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들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트위터에 영향력을 빼앗긴 보수 언론에서 트위터를 견제하기 위해 "트위터 중독의 위험" 등에 관한 기사를 더 많이 내보낼 가능성도 크죠.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큰 숙제를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인터넷에는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 중에 민주당의 각성을 촉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민주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미워서 표를 줬으니, 민주당은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고민해야 마땅하다는 지적이죠. 실제로 젊은 유권자 중에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반사이익에 만족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으로 거듭날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다음 선거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많은 국민이 선거의 중요성을 깨닫고 투표와 투표 독려라는 방법으로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선거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선거 참여 열기가 높아져서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인을 바로바로 솎아내서 정치를 바꾸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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