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들판에 캠핑카가 여러 대 서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자세히 보니 예상했던 대로 집시들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집시를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같이 가던 독일 사람도 집시를 오랜만에 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에 신문을 보니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프랑스에 머물던 집시를 루마니아로 돌려보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본 그 집시들도 프랑스에서 쫓겨나 루마니아로 돌아가던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집시는 인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민족으로 유목민처럼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하는데, 주변 민족과 문화와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핍박과 멸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중세엔 이방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던 이들은 20세기에 들어서 나치 정권에 의해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멸종의 대상이 되었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이들이 많이 사는 동유럽지역이 공산화되면서 이들의 문화를 파괴하려는 공산 정부에 의해 핍박받았습니다. 이제 나치 정권도 공산 정부도 사라졌지만, "집시"를 혐오하는 대중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경기침체 때문에 사나워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정치세력에 다시 한 번 핍박을 받게 된 것이죠.
집시의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만큼이나 유럽에서 이방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줍니다. 유럽엔 여러 민족이 있고, 그만큼 민족 간의 교류가 많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민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안정감에 바탕을 둔 관계입니다. 하지만, 집시는 돌아갈 본국이 없고(루마니아에 집시가 많지만, 루마니아에서도 집시는 소수민족이기에 간다고 환영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는 20세기 초반 유대인의 상황과 같죠. 당시 독일엔 유대인이 많았는데,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문제는 유대인에겐 본국이 없기 때문에(이스라엘은 1948년에야 탄생했죠) 유대인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 유대인들을 받아달아고 요청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의 외국인(그것도 사람들이 안 좋게 여기는 민족)을 받아줄 나라는 없었죠. 이처럼 독일인들은 유대인이 싫고, 유대인은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 문제"(Die Judenfrage)죠. 결국, 이 문제에 대해 히틀러가 찾은 최후의 해결책 (Die Endlösung)은 유대인 학살이었고, 이것이 2차대전 중에 자행된 대학살의 실체입니다.
독일인의 유대인 대학살은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대부분의 유럽인은 이러한 잘못을 다시 저지르면 안 된다는데 동의합니다. 유럽인들이 자발적으로 국경을 허물고 국가 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반성의 결과죠.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집시에 대한 탄압은 이러한 이상이 현실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쫓겨난 집시들은 루마니아 출신인데, 루마니아는 최근에 유럽연합에 가입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다른 유럽연합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가 이들을 반강제로 쫓아냈다는 사실은 유럽연합 국가 간 자유로운 여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 어긋나는 일로 지탄의 대상이 되죠. 또한, 상수도도 없이 생활하던 집시들의 정착촌을 허물었다는 사실은 인권을 중요시하는 유럽인들에겐 충격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유럽인 중엔 인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기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한 집시의 죄 보다, 정착촌에 물을 공급하지 않은 정부의 죄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더 큰 문제의 전조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최근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대단히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엔 집시가 많은데, 이동에 익숙한 집시는 잘 사는 서유럽으로 대량 이동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집시 몇 명을 본보기 삼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하더라도, 결국 더 많은 숫자가 프랑스로 이주하기 마련이겠죠. 프랑스 정부가 집시의 귀국을 조건으로 지원금을 준 데 대해 "집시에게 휴가비를 줬다."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들이 곧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집시 문제는 결국 유럽인들이 추구하던 유럽 연합의 이상이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유럽인들은 유럽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유럽 지역의 모든 국가를 유럽연합에 포함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는 나라들이 하나의 국경으로 묶이게 되었고, 이는 빈국에서 몰려오는 이민자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유로존 국가간 경제차이 때문에 유로화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열린 국경까지 흔들리게 된다면 유럽연합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겠죠.
또한, 집시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건국 이념에 반하는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정말 오늘날의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물려받은 나라인지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이민자의 증가로 말미암아 많은 프랑스인은 외국인 혐오증이 심해졌고, 이를 틈타고 불법 외국인의 추방을 내세우는 극우파 정당이 득세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이죠. 지금까지는 표면적으로나마 이주민과 백인의 통합을 추진해 온 프랑스지만, 백인들의 위기감이 더 심해진다면 외국인을 차별하는 극우성향의 정책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죠.
결국 수천년간 가난과 핍박 속에 살아온 집시들에게, 21세기의 유럽 연합도 안정된 거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부디 유럽 국가들이 관용의 정신을 잊지 않고, 집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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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는 인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민족으로 유목민처럼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하는데, 주변 민족과 문화와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핍박과 멸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중세엔 이방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던 이들은 20세기에 들어서 나치 정권에 의해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멸종의 대상이 되었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이들이 많이 사는 동유럽지역이 공산화되면서 이들의 문화를 파괴하려는 공산 정부에 의해 핍박받았습니다. 이제 나치 정권도 공산 정부도 사라졌지만, "집시"를 혐오하는 대중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경기침체 때문에 사나워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정치세력에 다시 한 번 핍박을 받게 된 것이죠.
집시의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만큼이나 유럽에서 이방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줍니다. 유럽엔 여러 민족이 있고, 그만큼 민족 간의 교류가 많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민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안정감에 바탕을 둔 관계입니다. 하지만, 집시는 돌아갈 본국이 없고(루마니아에 집시가 많지만, 루마니아에서도 집시는 소수민족이기에 간다고 환영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는 20세기 초반 유대인의 상황과 같죠. 당시 독일엔 유대인이 많았는데,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문제는 유대인에겐 본국이 없기 때문에(이스라엘은 1948년에야 탄생했죠) 유대인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 유대인들을 받아달아고 요청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의 외국인(그것도 사람들이 안 좋게 여기는 민족)을 받아줄 나라는 없었죠. 이처럼 독일인들은 유대인이 싫고, 유대인은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 문제"(Die Judenfrage)죠. 결국, 이 문제에 대해 히틀러가 찾은 최후의 해결책 (Die Endlösung)은 유대인 학살이었고, 이것이 2차대전 중에 자행된 대학살의 실체입니다.
독일인의 유대인 대학살은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대부분의 유럽인은 이러한 잘못을 다시 저지르면 안 된다는데 동의합니다. 유럽인들이 자발적으로 국경을 허물고 국가 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반성의 결과죠.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집시에 대한 탄압은 이러한 이상이 현실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쫓겨난 집시들은 루마니아 출신인데, 루마니아는 최근에 유럽연합에 가입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다른 유럽연합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가 이들을 반강제로 쫓아냈다는 사실은 유럽연합 국가 간 자유로운 여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 어긋나는 일로 지탄의 대상이 되죠. 또한, 상수도도 없이 생활하던 집시들의 정착촌을 허물었다는 사실은 인권을 중요시하는 유럽인들에겐 충격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유럽인 중엔 인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기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한 집시의 죄 보다, 정착촌에 물을 공급하지 않은 정부의 죄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더 큰 문제의 전조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최근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대단히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엔 집시가 많은데, 이동에 익숙한 집시는 잘 사는 서유럽으로 대량 이동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집시 몇 명을 본보기 삼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하더라도, 결국 더 많은 숫자가 프랑스로 이주하기 마련이겠죠. 프랑스 정부가 집시의 귀국을 조건으로 지원금을 준 데 대해 "집시에게 휴가비를 줬다."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들이 곧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집시 문제는 결국 유럽인들이 추구하던 유럽 연합의 이상이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유럽인들은 유럽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유럽 지역의 모든 국가를 유럽연합에 포함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는 나라들이 하나의 국경으로 묶이게 되었고, 이는 빈국에서 몰려오는 이민자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유로존 국가간 경제차이 때문에 유로화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열린 국경까지 흔들리게 된다면 유럽연합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겠죠.
또한, 집시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건국 이념에 반하는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정말 오늘날의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물려받은 나라인지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이민자의 증가로 말미암아 많은 프랑스인은 외국인 혐오증이 심해졌고, 이를 틈타고 불법 외국인의 추방을 내세우는 극우파 정당이 득세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이죠. 지금까지는 표면적으로나마 이주민과 백인의 통합을 추진해 온 프랑스지만, 백인들의 위기감이 더 심해진다면 외국인을 차별하는 극우성향의 정책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죠.
결국 수천년간 가난과 핍박 속에 살아온 집시들에게, 21세기의 유럽 연합도 안정된 거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부디 유럽 국가들이 관용의 정신을 잊지 않고, 집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