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나, 가족, 그리고 민족을 중요한 통일성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가족은 나와 유전자의 연관성, 또는 특별한 사회적 계약으로 묶인 존재이고, 민족은 나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요하죠. 하지만, 과거엔 가족과 민족 사이에 두 가지 단계가 더 있었는데, 나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 마을, 그리고 부족이 그것입니다. 지난번엔 마을을 살펴보았고, 이번엔 부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부족은 민족의 하위개념으로, 같은 민족이지만 특별히 나와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부족은 민족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 민족이 보통 천만 명 이상이라면 부족은 보통 백만 명 이하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부족이라는 개념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금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민족보다 부족이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왜 부족이라는 개념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통, 통신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엔 민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나와 완벽하게 언어적,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부족이 훨씬 중요한 단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삼국시대 전까지 한반도 남쪽의 마한, 진한, 변한, 동쪽의 동예, 북쪽의 옥저 등 다양한 부족국가가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부족국가는 교통, 통신, 행정의 발달과 더불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 정리되었고, 결국은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민족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족국가가 민족국가로 발전하는 상황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중세 유럽엔 수많은 부족국가가 존재하였지만, 근대에 이르러 부족국가가 통합되고 민족국가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왕국은 동쪽의 부르공디, 남쪽의 나바르의 일부 등을 흡수해서 통일국가를 건설합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색슨족, 반달족, 고트족 등 수 많은 부족으로 나누어진 민족이고, 이러한 부족주의 전통은 바이에른, 슈바벤, 프로이센 등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와 사투리가 발달하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독일에도 근대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결국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통일국가를 건설하게 됩니다.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여행하려면 일곱 번 국경을 통과해야 했던 시대가 끝나고, 독일을 하나의 정부가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부족주의 전통은 뿌리가 워낙 깊고, 오늘날에도 정치체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부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Bundesregierung)입니다. 즉, 권력을 가진 각 지역이 연합한 국가라는 개념이죠. 실제로 일부 국제회의에는 독일 각 지역 정부가 마치 독립국인 양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도 있습니다(이는 스코틀랜드가 국제 축구 대회에 별도로 팀을 내 보내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이탈리아는 상황이 더 복잡해서, 중세시대엔 남쪽의 두 시칠리아 왕국(Regno delle Due Sicilie), 중부엔 교황이 통치하는 교황령, 나머지 지역엔 피렌체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 공국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존재했고, 이는 각 지역이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지니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도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가리발디의 주도로 불가능할 것 같던 민족국가 건설이 실현됩니다. 이처럼 힘겹게 이룬 통일국가지만, 오늘날에도 이탈리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자는 북부 연합(Lega Nord)가 북부지역에서 인기를 끌 정도로 지역 간의 불화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처럼 근대에 들어오면서 대부분 유럽국가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힘썼는데, 이러한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통합은 60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도 두 나라는 두 정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8세기에 정치적 통합을 통해 Kingdom of Great Britain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치적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잉글랜드 사람들과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베리아 반도와 브리튼 섬에서 벌어진 통합의 노력이 실패한 것은 두 개의 민족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두 민족은 두 개의 언어와 문화를 지니기에 통합을 하려면 한 민족이 일방적으로 흡수당해 정체성을 잃어야 하는데(이는 바로 20세기 초에 일본이 조선에서 시도하던 일이죠), 언어와 문화를 잃는 쪽에선 당연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한 민족 안에 여러 부족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 통합이 훨씬 수월합니다. 또한, 부족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이질적인 민족에게 흡수당할 때 거세게 저항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큰 민족이 작은 부족을 흡수하는 경우는 많습니다(물론, 스페인의 바스크족처럼 작은 부족이 큰 민족에게 점령당한 후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립을 추구하는 예가 있긴 합니다).

한국은 민족국가의 전통이 오래되었기에 부족의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도 수면 밑으로 부족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역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부족주의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죠. 물론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역이란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어느 지역 사람하고는 혼인하지 않는다." "어느 지역 사람은 상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지역에 근거하여 사람을 차별합니다. 이는 다른 지역 사람은 나와는 문화와 정체성이 다르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발견하는 부족주의의 또 다른 예로는 조선족, 탈북자 등에 대한 차별입니다.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같은 민족은 모두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귀중한 존재지만, 부족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민족이 같아도 나와 완전히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일 뿐이죠. 이러한 타인에게 거리감을 두고,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따라서 한국인들은 이론적으론 민족을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받아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부족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지역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현실에서 거의 쓰지 않는 부족의 개념을 부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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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걸어서 하루에 다닐만한 지역을 생활 반경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폴리스(polis)라고 불렀는데,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중요한 삶의 단위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폴리스적인(politikos) 동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폴리스가 인간 본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친밀했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났다." "이웃사촌이다."라는 말들은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던 시절,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과거의 지역 공동체가 이처럼 가까웠던 원인은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운명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함께 농사를 지었고, 함께 종교활동을 했고, 함께 오락을 즐겼고, 결혼 관계로 함께 묶였습니다. 만약에 전쟁이 난다면 이들은 함께 전쟁터에 나가 싸우거나, 함께 피난을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서로 가족처럼 느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km를 쉽게 이동하게 되었고, 생활 반경이 도시 범위로 넓어지면서 지역공동체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저 우연히 이웃과 한 동네에 모여 살게 되었지, 이웃과 생활을 같이 할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조기 축구회에서 활동해서 알고 지내는 이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나와 연관된 이웃은 같은 단지에 사는 수천 명 중 극히 적은 숫자고, 아침마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대부분 전혀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XX구" "XX동"으로 묶어 놓아봤자 이들이 지역 공동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해체는 교통, 통신의 발달 및 도시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따라서 지역 공동체가 없는 사회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던 시절에 대한 대단한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이는 페이스북 게임 FarmVille이나 아이폰용 게임 Smurf Village처럼 과거의 지역 공동체를 재현하는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지역 화폐(local currency)를 도입하거나, 차를 타고 먼 지역에서 온 상품이 아닌,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지역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실(특히 도시의 현실)에서 거의 사라진 지역 공동체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인은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라는 개념은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인구의 20%는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이고 1%는 굶어서 죽기 직전이다."라고 말하면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이겠지만, "세계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20명은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고, 한 명은 굶어서 죽기 직전이다."라고 말하면 마음에 와 닿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지역 공동체의 수준에서 생각할 때 훨씬 더 절실하게 느끼는 법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표현은 "온 인류를 사랑하라."라는 표현과 같은 뜻이지만, 훨씬 호소력이 큽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역시 지역 공동체의 개념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에 대한 애착은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선 인간이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를 던바의 숫자(Dunbar's number)라고 부릅니다. 이 숫자는 100명일 수도 있고 200명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150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50명이라면 대충 내가 작은 마을에 살면서 이웃사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숫자와 비슷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나와 친한 150명이 도시 곳곳, 또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기에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사람들은 한 마을에 사는 소수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놀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지역 공동체, 즉 마을은 "내가 개인적으로 친한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단위"이자 "나와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따라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이처럼 의미 있는 공동체가 사라진 도시에 사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통일성의 중요한 한 단위가 사라졌기에 사람들은 다른 단위인 개인이나 가족에게 집중하고, 이는 이기주의, 또는 가족 이기주의로 표현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동체, 또는 직접 만날 수 있는 동아리 모임 등을 통해 과거의 지역 공동체에서 느끼던 소속감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공동체도 과거의 지역 공동체와 같을 수는 없고,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완벽한 재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지역 공동체는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이상이기에 그만큼 매력적이고, 잠깐이라도 이와 비슷한 모임을 만난다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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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인간의 탄생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위입니다. 가족은 보통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데, 부부관계는 사회적 계약으로 연결되고, 부모 자녀 관계는 유전자의 유사성으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구성된 가족을 핵가족(nuclear family)이라고 하는데, 이는 산업혁명 이후로 서양의 보편적인 가족 형태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최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모델입니다.

사회적 계약이라는 인위적 장치로 연결되는 부부관계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존재합니다. "부부는 등 돌리면 남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부부관계가 별 의미가 없고, 따라서 이혼하고 나면 사회적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부부관계도 사라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체 부부의 절반 이상이 결국은 이혼하는 선진국에는 부부관계의 청산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부관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관계에 사회적 계약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남자를 만드시고,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기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 2:24)라는 구절로 끝납니다. 이는 부부관계가 하늘로부터 온 절대적인 관계라는 뜻이죠.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옛날 인간은 요즘 인간 둘을 합쳐 놓은 커다란 존재였습니다. 이 인간들은 힘이 셌기에 신에 대항하였고, 제우스신은 이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반으로 쪼개 놓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크기와 형태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죠. 이렇게 반으로 쪼개진 인간은 여전히 과거의 온전한 상태가 그리워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다니고, 결국 그 반쪽을 찾았을 때 다시 온전함을 회복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원인은 현실을 뛰어넘는 "운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랑이 이처럼 운명에 기반을 둔다면, 사랑으로 결혼하는 부부도 단지 사회적 계약이 아닌 운명적 만남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부부가 될 사람은 빨간 실로 엮여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역시 부부관계를 운명의 관점에서 본 예라고 하겠습니다.

가족의 또 다른 축인 부모 자녀관계는 부부관계보다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기 원하는 속성을 지닙니다. 이는 인간이 자손을 낳고, 자손이 다시 자손을 낳을 때 가능하죠. 물론 이러한 "유전자 영생"이라는 목표는 자손을 낳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자손을 잘 돌볼 때 가능합니다. 만약 자손을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병들어 죽거나, 좋을 배우자를 구하지 못해 다음 세대를 생산하지 못하겠죠. 따라서, 인간은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려는 본성을 타고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문화에 따라 자녀를 향한 사랑의 정도는 많이 다릅니다. 유럽에서도 라틴계 부모가 게르만계 부모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 표현에 훨씬 적극적입니다. 이러한 자녀 사랑의 표현 중 하나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자녀와 가까운 곳에 사는 풍습인데, 실제로 이탈리아 남성의 대부분은 결혼하고도 부모와 가까이 삽니다(My Big Fat Greek Wedding에서도 그리스계 아버지가 딸에게 집을 사줬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이 아버지 집 바로 옆집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국도 과거에 모든 결혼한 아들이 부모와 함께 대가정을 이루고 살았고, 지금도 많은 부모는 자녀와 같이 살거나, 최소한 가까운 곳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에 비해 영미계, 게르만계에서는 자녀가 성장하고 나면 부모가 자발적으로 자녀와 거리를 둡니다. 시트콤 사인펠드에서도 조지 코스탄자의 부모가 조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모습이 나오고, 새라 제시카 파커와 매튜 맥커너히 주연의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Failure to Launch)라는 영화에는 성인이 되고도 집을 떠나지 아들이 독립하도록 부모가 여자를 고용해 아들을 유혹하도록 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엔 "손주 봐주기가 싫어서 자녀를 멀리하려는" 노부모들이 늘었다는데, 이는 성인이 된 자녀와 거리를 두기 원하는 심리라는 점에서 영미, 또는 게르만계 부모들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만약 부모와 자녀의 사랑이 지나치다면 자녀가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부모도 자녀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강한 성인이 되지 못하고, 부모도 자녀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혼동해서 자녀의 인생에 사사건건 간섭하기 마련입니다.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자녀가 부모로부터 감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가정을 공생 가정(Symbiotic family)이라고 불렀고, 이를 비생산적인 가정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가 독립된 인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자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자녀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끼기에 자녀가 성공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하겠죠. 이러한 부모 밑에 사는 자녀는 자신이 부모의 삶까지 성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죠.

가족은 부부관계와 부모 자녀관계의 결합일 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가족과 함께 할 때 특별한 동질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여전히 내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귀중한 역할을 하죠. 문제는, 이렇게 내게 소중한 가족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무조건 가족의 이익을 위한다면 이는 가족 이기주의가 되고, 무조건 사회의 이익을 위한다면 매정한 사람이 되겠죠. 또한,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놓고 볼 때도 개인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가족을 저버리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가족만 돌본다면 프롬이 말한 비생산적인 공생적 가족이 되고 말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인간은 다양한 수준으로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느 공동체를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인간 통일성의 일곱 단계를 생각해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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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개인을 뜻하는 individual은 "나눌 수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in + dividere)에서 온 말입니다. 이는 개인은 나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명의 사람을 칼로 두 쪽 낸다면, 이는 두 명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체가 되겠죠. 따라서 개인은 인간의 가장 작은 단위이고, 고유의 통일성을 지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더 나눌 수 없는 개인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구조가 드러납니다. 우선, 개인의 몸은 하나지만, 이 하나의 몸은 수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 세포는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백혈구를 보면 마치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혈구의 독립성은 인간의 몸 전체의 안녕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합니다. 이는 다른 세포도 마찬가지죠. 즉, 개인의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는 개인이라는 유기체의 안녕과 자손의 증식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서 움직입니다. 뇌세포든 피부세포든 각 세포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존재할 뿐, 다른 목표를 지니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가 수정란 속에 든 한 쌍의 유전자에서 나왔고, 결국 이 유전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수정란은 분화를 거듭하며 결국 거대한 인간의 몸이 형성되지만, 이러한 인간의 몸은 자신의 DNA를 다음 세대로 물려주기 원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계획에 따라서 만들어진 도구이기 때문에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작은 부분일 뿐이죠.

물론 이는 인간의 몸이 이상적인 상태를 묘사한 것이고, 실제로는 하나의 몸속에 다른 목표를 지닌 세포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암세포죠. 암세포는 다른 세포와 다르게 유기체의 건강 유지를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암이 발생하면 인간의 몸은 통일성을 잃고 정상세포와 암세포 사이에 싸움이 진행되게 됩니다. 만약 정상세포가 이긴다면 몸은 통일성을 되찾아 건강하여지고, 암세포가 이긴다면 몸은 죽게 됩니다(암세포는 주변의 세포를 암세포 화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목표가 없으므로 암세포가 이긴다고 새로운 건강한 생명체가 탄생하지는 않습니다. 즉, 암은 주체를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죠).

이처럼 몸이 암세포의 등장으로 통일성을 잃을 수 있듯, 영혼도 경쟁자의 등장으로 통일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융 심리학은 인간의 영혼의 핵심을 자아(ego)라고 봅니다. 자아가 영혼의 핵심인 것은 자아에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libido)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에 자아가 아닌 다른 실체가 등장해 심리적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그 경험을 중심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즉, 정상적인 사람(자아가 중심인 사람)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면,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이러한 경험을 기초로 세상을 보는 것이죠. 이처럼 자아와 경쟁하는 심리적 실체를 융은 콤플렉스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콤플렉스는 잠복해 있다가 특별한 계기를 만나면 겉으로 표현됩니다(예를 들어, 열등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평소엔 정상적으로 행동하지만, 남이 자신에게 던지는 농담을 듣게 된다면 열등감의 시각에서 이 농담을 해석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하지만, 콤플렉스가 심해진다면 자아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콤플렉스가 영혼을 지배하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경이 된다면 영혼이 통일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겠죠. 한 영혼에 여러 중심이 존재하는 정신분열이나 다중인격도 영혼이 통일성을 상실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삶에서 영혼과 육체 간의 통일성이 상실될 수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고 한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영혼이 원하는 바와 육체가 원하는 바가 다를 수가 있고, 이는 영혼과 육체 사이의 통일성을 깨트립니다. 일반적으로 육체는 적절한 영양공급, 수면, 휴식 등을 원합니다. 하지만, 영혼은 이러한 육체의 욕구를 무시한 채 사람들의 존경, 성취감, 금전적 보상 등을 얻고자 육체를 혹사할 수 있습니다. 잠을 안 자고, 식사도 거르면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일 중독자들이 그러한 예죠. 이는 육체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결국 영혼과 육체 모두 병들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육체가 쾌락에 탐닉하기 위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도덕적인 행위로 큰돈을 벌어 이를 방탕하게 사는 데 쓴다면 그의 영혼은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영혼은 그가 정직하게 살기 원하지만, 그의 육체는 쾌락에 길들어져 있기에 부정직하게 버는 돈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는 결국 육체와 영혼의 부조화를 일으키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죠.

이렇게 본다면 개인의 통일성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잘 돌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우다 인생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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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중심이 이야기에서 이성으로 옮겨오면서 이야기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를 추방하려는 움직임이 학문과 예술 곳곳에서 생겨났는데, 이중 가장 흥미로운 예는 역사학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유럽어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단어로 표현됩니다(불어의 histoire, 이탈리아어의 storia, 독어의 Geschichte 등). 이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설명한 이래로 역사와 이야기를 같은 것으로 보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죠. 하긴 일반인이 생각하는 역사란 "어떤 사람이 역사상의 어떤 시점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고, 그래서 어떤 결과가 생겼다."라는 기록이기에, 이야기의 세 가지 요소를 그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역사학계로 번지면서 "이야기 없는 역사"를 추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늘어났고, 이는 결국 아날학파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아날학파에서는 인물, 정치,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역사학을 거부하고, 양적인 자료에 의해 사회 전체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구체적인 인물들이 역사의 한 시점에서 벌이는 사건들이 일으키는 결과," 즉 이야기를 배제한 역사학을 하겠다는 말이니, 이제 이야기와 역사가 분리된다는 말이죠.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고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학에 분업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한탄했을 때 이미 예견할 수 있던 문제입니다.

이야기와 분리될 수 없음에도 이야기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또 다른 영역으로는 문학을 들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듣기 원하는 욕구는 문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어느 민족을 봐도 가장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학작품의 대부분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현대주의 문학을 추구한 제임스 조이스(특히 Finnegans Wake)나 사무엘 베케트(특히 Malone Dies) 등은 실제로 이야기가 사라진 작품을 씁니다. 물론 이야기가 사라진 문학은 대단히 기괴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야기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문학에까지 미친 좋은 예이기에 연구의 가치가 높다고 하겠습니다.

역사학과 문학이 20세기에 들어서 이야기로부터 독립한 데 비해, 철학은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야기로부터 독립합니다. 특히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합리주의 철학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변의 세계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글을 썼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에서 이야기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험을 강조한 경험론자들은 조금 낫긴 하지만(베이컨은 New Atlantis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썼고, 버클리는 플라톤처럼 대화록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습니다), 경험론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흄의 저작에서는 이야기가 거의 사라집니다. 칸트를 비롯한 독일의 관념론자들도 이야기를 배제하고 순수한 논리를 바탕으로 글을 썼습니다.

철학은 이야기로부터 일찍 독립했을 뿐 아니라 다른 영역보다 이야기의 가치를 일찍 재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키르케고르는 이성에 기반을 둔 철학의 한계를 깨닫고 좀 더 인간의 본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을 찾고자 노력하는데, 그의 작품 중엔 이야기의 형태이거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 책이 많습니다(예를 들면 Stages on Life's Way나 Fear and Trembling). 니체도 이성 중심의 철학에 대해 반발하여 새로운 철학의 방향을 모색하였는데, 그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철학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철학과 다시 결합한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철학에서 이야기의 부활은 20세기에 들어 프랑스로 이어져 사르트르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소설을 쓰는 움직임으로 나타났죠.

20세기에 들어 이야기가 부활한 가장 좋은 예로는 영화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야기가 파괴된 시기에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대중에게 끊임없는 이야기를 공급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사의 초기부터 대중은 악당을 응징하는 영웅,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남녀 등 매우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열광하였고, 결국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가장 잘 만든 미국의 영화산업은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학계에서 벌어진 이야기 파괴 현상은 영화계를 피해 가지 않았고, "이야기(내러티브)를 탈피한 영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60년대 이래로 많이 있었지만, 결국 영화의 주류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 중심의 영화가 맡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화를 만들려면 많은 자본이 필요하고, 이러한 자본을 얻기 위해선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 때문이죠. 어쨌든 이로 말미암아 영화는 다른 현대 예술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사이에 대중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는 TV 드라마도 이야기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 드라마건 한국 드라마건 뚜렷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미국에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시트콤 사인펠드인데, 사인펠드에는 가끔 이야기가 없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The Chinese Restaurant가 좋은 예인데, 중국음식점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다가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이 에피소드에는 상황은 있지만, 줄거리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해체된 것이죠. 극 중 사인펠드와 조지 코스텐자가 방송국에 가서 시트콤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도 "이야기가 없는 극을 만들고 싶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실제로 이 작품을 만든 사인펠드와 래리 데이비드(조지 코스텐자는 래리 데이비드의 분신이죠)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사인펠드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대 예술계의 흐름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습니다(또 하나의 파격적인 사인펠드 에피소드인 The Betrayal은 시간의 역순으로 극이 진행됩니다. 같은 형식의 영화 Memento 보다 몇년이나 먼져 나왔다는 점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합리성에 밀려 사라지던 이야기는 합리성에 대한 실망과 대중예술의 발달이라는 두가지 원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으며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 번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P.S. 연재를 시작해 놓고 글을 제 때 올리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출장이 있었고, 시차 적응 등으로 정신이 없다 보니 글을 쓸 여유가 잘 없었네요. 다음주에는 꼭 이번 연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변함없이 블로그에 찾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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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출발한 인간의 역사는 이야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듭니다. 즉, 인격과 구체성, 단순한 인과관계를 배제하는 대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고,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합당한 진리를 찾게 된 것이죠.

이야기에 의존하는 생각은 어린아이의 사고와 비슷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은 어디서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이들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상을 주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믿습니다. 아이의 관점에서 이러한 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렇다면 산타클로스가 24시간 안에 전 세계에 다니면서 수십억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줘야 할 텐데, 이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실일 리 없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는 언뜻 생각하기에 맞는 말처럼 보이는 말을 믿지만, 어른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보편적인 상황에 맞는 말을 믿는 것이죠. 결국, 사고력이 자라면 아이도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죠. 어쩌면 인류가 이야기를 벗어나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게 된 것도 인류의 사고력이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배제하고 이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수학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숫자는 세상이 논리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자,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논리와 수학의 결합은 수(numbers)를 만물의 근원으로 본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고, 근대에 들어선 "세상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다"고 말한 갈릴레이에서 보듯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신념이 되었으며,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책에서 물리현상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뉴턴에서 완성이 됩니다. 이러한 숫자의 세계엔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고, 오직 메마르고 건조한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죠.

이처럼 이야기 중심의 사회가 논리와 숫자 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과거에 인간들을 묶어 주었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숫자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인간을 숫자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라는 불평은 이러한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이죠. 이야기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지 배웠던 우리 조상과 다르게, 우리는 숫자(연봉, 통장 잔고,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TV 인치 수, 그리고 트워터 팔로윙 수)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보듯, 인간은 숫자를 통해 세상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숫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합리론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인간도 세상의 일부분이고, 따라서 세상이 숫자로 이해될 수 있다면 인간도 숫자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간을 분석하고 연구한다면, 결국 인간의 본질을 숫자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인간을 숫자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위험한 주장으로 들립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어떤 부분(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숫자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와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원인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인간성 파괴는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특히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가 뛰어난 과학기술을 대량살상 무기 만드는 데 썼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라는 이념에 따라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뛰어난 기술로 가스실을 건설한 독일인들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상실한 채 기술과 지식만 의존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예죠. 또한, 선진국일수록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현대 문명이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목적을 "어떻게" 이루는지 잘 알지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왜" 그런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학은 이처럼 인생의 목표를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영혼의 영역이고, 영혼은 수학이 아닌 이야기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고 느끼는 사람 늘어날수록, 이야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과거에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새롭게 부활하게 됩니다. 다음번엔 이야기의 부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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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따라서 이야기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야기는 지식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인격성과 구체성 때문입니다. 역사의 초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는 "이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다."라는 인격의 구체적인 활동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세상을 통합해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 있는 별을 묶어 만든 별자리를 생각해 봅시다. 인류는 별자리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하늘에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별들을 인격 단위로 무리지어 묶어놓고 나니, 하늘에는 수많은 연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난무하였고, 이러한 별들의 움직임을 총괄하는 질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이야기를 뛰어넘어 세상을 통합하는 지식을 찾고자 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의 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원했고, 결국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비인격적, 물질적 실체가 이 세상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본 탈레스나 공기라고 본 아낙시메네스, 불이라고 본 헤라클리토스 등은 이러한 좋은 예죠. 이렇게 인격이 없는 물질에서 세상의 근본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과학의 발달을 낳습니다. 과학은 연구의 대상이 비인격적이어야 하는데, 만약 연구의 대상이 인격적인 존재라면 변덕을 부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하기가 어렵겠죠. 또한, 과학은 보편적인 법칙을 찾고자 노력하고, 구체적인 하나의 대상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과학에서 하나의 대상이 중요한 것은 이 대상이 기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므로 새로운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단서로 작용할 때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인과관계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직관에 반하지만, 논리적인 결론을 더욱 중요시합니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는 이유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만, 하늘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결론이 나오고, 따라서 직관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지구가 해 주위를 돈다는 것이 과학의 진리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학은 이야기의 세 가지 특징인 인격성, 구체성, 직관적인 인과관계와 대척점에 서 있고, 그래서 대부분 민족은 전통적인 이야기에 얽매여서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물론 그리스인들도 하루아침에 이야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고, 이야기의 전통은 철학계에서조차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탈레스만 해도 "만물은 신들로 가득하다."라고 말했고, 초기 철학자 중 한 명인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힘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격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였기에 전형적인 이야기의 세계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한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 가르침을 이야기(예화)를 통해 설명함으로 이야기와 철학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철학과 이야기를 결합했을 뿐 아니라, 이야기를 철학에 종속시킨 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역사의 시작부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듣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였고,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인간을 만든 셈이죠. 하지만,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동원했고, 그가 창조한 이야기는 이성에 의해 창조된 도구라는 점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신비로운 이야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철학자가 지배하는 이상적인 국가에서 시인(당시의 시인은 서정시인이 보다는 이야기꾼에 가깝습니다)을 추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가 이야기와 철학이 충돌할 때는 철학이 이야기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플라톤에서 발견되는 철학과 이야기의 불안한 동거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면 이야기의 완벽한 소멸로 끝이 납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야기는 분석의 대상(그의 저서 시학이 잘 보여주듯)이 될 수 있을지언정, 삶을 나누는 동반자는 아니었고, 결국 합리적인 이성에 바탕을 둔 철학은 이야기와 완전히 결별하게 됩니다.

결국, 그리스에서 시작된 합리성의 전통은 서양의 철학과 과학을 낳았고, 이 둘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서양문명의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유럽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를 제거하고 합리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니 사람들은 이야기가 그리워지게 되었고, 결국 이야기를 다시 찾게 됩니다. 다음 시간엔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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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인간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세상에 질서를 부여해야 세상을 이해하고, 그럴 때에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세상에서 짧은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고, 이러한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인간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점차 세상을 이해하였고, 이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도왔습니다.

이야기가 이처럼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이야기의 세 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우선, 이야기는 비인격적인 현상이나 존재에 인격을 부여합니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person)이기 때문에, 인격을 지닌 존재를 잘 이해하고, 그에 비해 인격이 없는 존재에 대해선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치 이진법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컴퓨터가 모든 데이터를 이진법으로 바꿔서 처리하듯, 인격적인 존재인 인간은 모든 대상을 인격적인 존재로 바꾸어 놓을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격이 없는 지구가 해를 바라보면서 24시간에 한 바퀴 돈다는 설명보다는, 태양신이 불마차를 끌고 종일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을 한다는 설명이 인간에겐 훨씬 이해하기가 쉽죠. 견우성과 직녀성이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서로 가까운 듯 보인다는 설명보다는, 서로 사랑하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떨어져 지내다가 1년에 한 차례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준 다리 위에서 만난다는 설명은 훨씬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인격화의 과정을 통해 비는 하늘이 내리는 눈물로 바뀌고, 천둥은 죄인에 대한 하늘의 심판, 태풍은 바다의 분노로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됩니다. 이러한 수많은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죠.

또한, 이야기는 세상에 구체성을 부여합니다. 인간은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훨씬 잘 이해합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듣기 원했고, 이야기는 이러한 필요를 잘 채워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닷물은 왜 짠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물에 녹아 있는 소량의 소금이 바다로 계속 모여들고, 물은 계속 증발하기 때문에 짜다"라는 설명은 구체성이 부족합니다. 그에 비해 "먼 과거에 바다를 알기 원했던 소금 인형이 바닷속에 뛰어들어 녹았고, 그래서 짜다"라는 설명은 "소금인형"이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이야기의 중심이기 때문에 훨씬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구체성은 특히 민족의 기원을 설명할 때 중요합니다. 대부분 민족은 한 명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독특한 정체성을 얻을 때 탄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구체성이 없기에 대부분 민족은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한국의 단군,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스위스의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의 영구동맹, 미국의 Pilgrim Fathers)에서 기원을 찾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세상을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해줍니다. 철학에서 인과관계라는 개념은 매우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불을 관찰할 수 있고, 연기를 관찰할 수 있지만, 불 때문에 연기가 난다는 인과관계를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대부분 사람은 인과관계를 철석같이 믿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이 발생한 원인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야기는 이처럼 인과관계로 세상을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청개구리는 왜 비가 오면 울까?"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청개구리는 어머니 말씀을 반대로 하다가 오해가 생겨 어머니를 강가에 묻었는데, 비가 오면 어머니 무덤이 걱정돼서 운다."라는 설명이나 "인종마다 피부색이 다른 원인"이 궁금한 사람에게 "신이 도자기 굽듯 인간을 구웠는데, 굽는 시간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많은 사람에게 만족스러웠습니다. 복잡하고 논리적인 해답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A라는 존재가 B라는 행동을 했기에 C라는 결과가 생겼다."라는 해답은 훨씬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야기는 인격, 구체성, 인과관계라는 틀을 제공함으로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세상을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이야기 중심의 문화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다음 시간엔 이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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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나면서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강경한 표현을 쓰기 좋아하는 북한은 연일 공격적인 말투로 한국 정부를 비난 중이고, 우리 정부도 이번엔 밀리지 않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곧 전쟁이 난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북한 전쟁 선포설, 예비군 동원령 등 잘못된 정보를 담은 문자 메시지까지 돌아다니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한 지금, 남북 간의 전쟁은 한반도 전체의 파괴를 의미하기에 작은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온 국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실제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우선, 주가와 환율의 변동을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주가와 원화가치가 대폭 떨어졌는데, 그 원인은 남북관계의 긴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다시 찾아오면서 한국을 비롯한 고수익 고위험 시장에서 저수익 저위험 시장인 미국으로 돈이 옮겨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원화뿐 아니라 유로화도 가치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변동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한반도의 위기가 반영된 주가, 환율 변동 폭을 생각해 본다면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이는 경제계에선 이번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는 뜻이죠.

아마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을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당시 상황은 물리적인 변화가 원인이 아닌, 시스템상의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쳤다고 공장이 사라지거나 원자재가 증발하는 것은 아니죠. 단지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새기면서 상품이나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와는 다릅니다. 전쟁이 나면 경제활동이 둔해질 뿐 아니라 물리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에 있는 거대한 빌딩이 폭격으로 무너지면, 그 빌딩의 가치는 완전히 사라집니다(이론상으로 땅의 가치는 남긴 하겠지만). 어느 회사의 공장과 연구소, 본사가 모두 파괴된다면 그 회사의 주식은 휴짓조각이 됩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말미암은 주가와 환율의 변동은 경제위기로 말미암은 변동보다 훨씬 커야 마땅합니다. 1997년 당시 외화부족 사태를 맞아 환율이 두 배 반 정도 오르고, 주가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생각할 때 지금이 전쟁의 위기를 앞둔 상황이라면 이보다 큰 수준의 변동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 변동폭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제가 전쟁의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또 하나의 근거는 남북 지도자들이 전쟁을 원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나서, 전쟁이 일어날 뻔 한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전쟁이 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 지도자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위험에 대해 떠들면서 내부적 결속을 다졌고, 반대파를 탄압하였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일으킬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회만 되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의 대치 상태보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도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정치적 목적을 이룬 후 슬그머니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꼭 전쟁을 피하는 쪽으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치상태가 유지되는 가운데 한쪽에서 실수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아니면 실무착오로 무력이 행사된다면 이는 곧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죽일 마음은 없지만(그러다가 자신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옆에서 갑자기 소음이 난다면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서 둘 다 죽을 수 있죠.

이러한 비극은 평상시에는 상대방에게 연락함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사고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고 인정한다면 우선 사태를 확인할 동안만이라도 대응을 자제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치상태에서 적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군도 즉시 반격에 나서고, 일단 쌍방 무력사용이 시작된다면 전쟁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냉전 시대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핫 라인을 열어 놓고, 혹시나 상대방의 실수로 말미암은 무력 사용이 전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남북한도 1971년 부터 남북 연락관 통화용 직통전화를 설치하여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실수로 말미암은 충돌을 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결국 2008년 직통전화선이 끊겼습니다. 지금 북한군이 박격포라도 쏜다면, 우리 군은 이것이 실수인지, 상부의 의지와 다르게 말단 지휘관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는지 알 길이 없기에 반격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반격하면 이는 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말이 안 통하니 주먹질이 시작되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셈이죠.

어쨌든 저는 어렵게 마련된 한반도의 평화 기조가 한순간 날아갔다는 점에서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과연 이렇게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상황이 많은 국민이 원하는 상황일까요? 부디 이번 사태가 무사히 끝나고, 다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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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20일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명시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합조단은 이러한 결론을 내린 근거로 사고 지점에서 발견된 북한 어뢰 잔해 등을 증거물로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책임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 셈이 되었고, 미국 등 우방국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볼 때 한반도의 긴장은 당분간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조사가 끝났으니 더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은 없어야 하는데, 저는 발표를 보며 전보다 더 많은 의혹이 생겼습니다. 합조단이 증거라고 내 놓은 자료가 너무도 엉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증거인 어뢰 잔해를 봅시다. 이 어뢰는 형태가 너무도 잘 보존되었기에 한눈에도 어뢰 잔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어뢰가 1,200톤급 초계함을 두 쪽 냈다면 대단한 폭발을 일으켰는데, 남은 폭발하면서 자신은 고스란히 형태를 보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히로시마 중심부에서 원자 폭탄의 잔해가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라는 발표가 나온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도시 전체를 파괴한 폭탄이 자신은 모양을 보존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죠. 마찬가지로, 천안함을 파괴한 어뢰도 파편 일부분이 발견될 수는 있어도 껍데기만 빼고 알맹이는 그대로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군사전문가인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도 미디어 오늘과 인터뷰에서 "그 어뢰 수거물은 250kg 폭발력을 가진 어뢰 본체에 붙어있는 장치인데 과연 이렇게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죠.

물기둥이 100미터 솟았다는 증언의 신빙성도 떨어집니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사람 중에서 물기둥을 보았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군은 물기둥이 없다는 사실을 "버블 제트가 터지는 위치에 따라 물기둥이 옆으로 퍼지면 안보일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밑에서 떠오르는 버블 제트가 배에만 위 방향을 작용하고 물에 대해선 옆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거엔 군이 "물기둥은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기둥을 본 증인이 있다니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합조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 군은 유실되었다고 알려졌던 가스터빈실을 인양했습니다. 가스터빈실은 큰 충격을 받고 떨어져 나간 부위로, 만약 천안함이 어뢰로 침몰했다면 화약흔이나 어뢰 파편이 많이 발견될만한 중요한 부위입니다. 그런데 합조단은 가스터빈실에 대한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준비한 자료만으로 예정대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합조단이 얼마나 성의없이 조사를 마무리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말 한 점의 의혹이 남지 않는 조사를 발표하려면 예정된 날짜를 연기하고 가스터빈실을 조사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그 작은 어뢰 잔해도 찾아내면서 사고 지점에 그대로 가라앉은 40톤이 넘는 거대한 물체를 지금에야 인양했다는 사실 자체도 의혹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번 합조단의 발표는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정부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믿는다면 이는 최소한 남북관계 경색과 이로 말미암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고(벌써 하루 만에 원화 가치와 주가가 크게 떨어졌죠), 만약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면 전쟁으로 말미암은 국가적 재앙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띄는 발표치고는 너무 의혹이 많이 남습니다.

북한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려면 한 점의 의혹이 남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줘야 마땅하죠. 부디 앞으로라도 국민의 의혹을 없앨 추가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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