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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2 스스로를 바꾸는 두뇌 (15)
많은 사람은 인간의 몸을 일종의 정교한 기계라고 상상합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죠. 그런데 컴퓨터와 두뇌의 다른 점은, 컴퓨터는 입력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뿐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바꿀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두뇌 속에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고, 한 번 자리잡은 기능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과학자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두뇌에 이상이 생겨 한 부분이 손상되면, 그 부분이 담당하던 기능은 재생이 불가능했죠. 하지만 요즘 두뇌 과학자들은 두뇌가 매우 유연 (plastic)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고장나도 다른 부분이 그 기능을 이어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과거엔 눈 먼 사람은 세상을 볼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눈이 먼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아직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간략한 원리를 설명하자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정보를 전자 신호로 바꾸어 혀 위에 올려놓은 압력 장치에 보냅니다. 그러면 두뇌는 혀가 눌림으로 입력된 신호를 시각 정보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를 쓰면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세상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군요. 만약 이러한 장치가 좀 더 발전하면, 앞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대단한 희망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치가 가능한 것은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시각을 처리하는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즉, 두뇌는 상황에 맞춰 끊임 없이 자신을 바꾸기 때문에 자극만 들어온다면 없던 기능도 수행할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죠.

노만 도이지 (Norman Doidge)가 쓴 자신을 바꾸는 두뇌(Brain that changes itself)는 이러한 두뇌의 유연성(plasticity)에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두뇌가 환경에 따라 변하는 흔한 예로 입맛의 변화를 듭니다.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줬다간 기겁을 하고 도망갈 음식이 많죠. 하지만 한 번, 두 번 먹다 보면 그러한 맛을 좋아하는 법을 배우고, 나중엔 그러한 음식이야 말로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프랑스인들은 냄새가 지독한 치즈일수록 훌륭한 치즈라고 치기에, 외국인은 좋은 치즈가 나오면 매우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없으면 못사는 김치도, 처음 접한 외국인에게는 가까이 하기 힘든 괴상한 음식이겠죠. 이는 뇌가 특정한 음식을 좋아하도록 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서 생기는 문화적 차이입니다.

두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는 한 늘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어린이는 하루에도 모르는 단어를 몇 개씩 접하고, 그러한 단어를 이해하고 외우기 위해 두뇌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새로운 단어를 접할 기회가 훨씬 줄어들고, 두뇌에 들어오는 자극도 줄어들죠. 직업의 영역에서도, 20대에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각종 일처리 방법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40-50대가 되면 새로운 일을 배울 기회는 적고, 지금까지 배워온 기술을 반복해서 적용하는 단계가 됩니다. 따라서 노인은 기억력, 이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Norman Doidge는 노년에 발생하는 두뇌의 퇴화는 노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새로운 자극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반대로 계속 뇌를 자극해 주면 노인이라도 뇌가 퇴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는 뇌를 젊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우라고 권합니다. 즉, 노년은 "외국어를 배우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라, "외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될 나이"라는 말이죠.

생각해보면 저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뇌가 늘 자극을 받아서 젊음을 유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느니 "군대 갔다 오면 머리가 굳는다"는 말을 하지만, 저는 지금 제 머리가 20대 때 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여행할 때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느라 그 나라 말을 배워서 써야 하기 때문이죠. 즉, 제 머리엔 늘 강도 높은 자극 (낮선 외국어)이 들어오고, 따라서 늙을 여유가 없는 것이죠. 만약 앞으로도 이렇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산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두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봅니다.

두뇌가 자극에 반응하는 성질은 정신질환을 치료할 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강박증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은 서양에 매우 흔한 정신질환인데,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As good as it gets)에서 잭 니콜슨이 강박증 환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죠. 강박증 환자는 꼭 무슨 문제가 발생했거나 발생하리라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이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문이 잠겼는지 여러 번 확인하기도 하고, 손에 치명적인 세균이 묻었을까봐 하루에 수십 번 비누로 씻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이 있다고 강박관념에 따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강박증은 더해질 뿐입니다. 즉, "지금 당장 손을 비누로 씻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누로 손을 씻으면 두뇌는 강박관념->강박행동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게 되고, 따라서 강박증은 더 심해집니다. 심리분석가이기도한 Norman Doidge는 강박증을 없애려면 강박관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즉 "지금 당장 손을 비누로 씻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손을 씻지 않아야 결국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즉, 두뇌를 한쪽 방향으로 밀어대면 그 방향으로 가는 관성이 생기니까, 그러한 관성이 생기지 않도록 그쪽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두뇌는 인간의 모든 기관중 가장 신비한 부분이고, 아직도 신비의 영역에 속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주목할만한 과학적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더 많은 성과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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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