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맥용 데이터베이스인 벤토(Bento)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유명한 데이터베이스 제작사인 파일메이커에서 개인용 데이터베이스 개념으로 내놓은 벤토는 출시하고 반년만에 40만번 다운로드 될 만큼 인기가 많은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은 복잡하다는 개념을 깨고, 개인이 정보를 쉽고 시각적으로 관리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입니다. 제품의 기능을 살펴보니 제가 10여개 프로그램을 써서 하는 작업을 이 프로그램 하나로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벤토라는 이름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일본 도시락(벤또)을 뜻한다는군요. 일본 도시락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도 아름답고, 쉽게 각 영역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벤토는 일본 도시락 처럼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쉽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기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소개한 책인Presentation Zen에서도 일본 도시락을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예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을 신비하게 보는 서양인들에겐 일본인의 "축소지향"문화의 표현인 일본 도시락이 대단히 매력적이고 신기한 대상으로 보이나 봅니다. 그러고 생각하니 서양 도시락은 음식이 짓눌리지 않도록 여유있게 공간을 배치하기에 보통 도시락통(lunch box)이 크고, 요소를 하나씩 포장하기 때문에 먹을때 일일히 포장을 뜯어야 합니다. 그러한 도시락에 익숙한 사람들은 칸을 여럿으로 남고 각 칸마다 딱 맞는 분량의 다른 음식을 담고, 게다가 예쁘게 꾸미기까지 한 도시락이 대단해 보이겠죠. 심지어 서양인들이 벤또를 만들어 사진으로 올리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문화가 벤또를 낳고, 다른 문화는 그러한 벤또에 영감을 받아 벤토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대니얼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이를 개념화의 시대(conceptual age)라고 불렀습니다. 개념화란 하나의 상황을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놓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일본에 가서 벤또를 먹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하나의 구체적인 문화현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험은 너무나 구체적이기에 그 자리에서 즐길 수는 있어도 다른 일에 활용하기는 힘듭니다. 물론 책을 보고 연구를 한다면 일본 벤또를 똑같이 만드는 법을 익힐 수도 있겠지만, 벤또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면, 이는 그리 유용한 기술은 아니겠죠. 하지만 벤또를 먹고, "벤또는 왜 이렇게 매력적일까? 음, 공간의 활용, 아름다운 배치, 사용의 편의성 때문이 아닐까?"하고 개념화할 수 있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든, 새로운 MP3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든 벤또를 먹은 경험을 활용할 수 있겠죠.
이러한 개념화는 기계적인 훈련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계적인 훈련을 포기하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 때 개념화를 잘 할 수 있는 법이죠. 그래서 대니얼 핑크는 좌뇌와 우뇌의 차이에서 새로운 미래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좌뇌 중심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람들이 주도했는데, 이제는 우뇌 중심의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사람들이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새로운 MP3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접근하겠습니까? 전형적인 한국인 기업가라면, 다른 회사의 인기 품목을 가져다가 엔지니어들에게 던저주고, "똑같은 기능에 원가는 30% 절감하도록" 지시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인 엔지니어들은 밤을 새가면서 일해 정말로 같은 기능에 원가는 30% 싼 제품을 만듭니다. 이는 대단한 능력이긴 한데, 이렇게 일하면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힘듭니다.
다른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른 제품과 비슷하지만 더 싼 제품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하려면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누가 MP3를 사는가? MP3로 무엇을 하는가? MP3에서 꼭 필요한 기능과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답해야 하죠.
애플은 iPod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타사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고전하던 때가 있습니다. 아이팟은 하드 드라이브 기반이라 용량이 컸지만, 부피도 크고 비쌌죠. 그에 비해 다른 회사들은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싸고 작은 제품으로 아이팟의 위상에 도전하였습니다. 물론 애플도 다른 회사의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반격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무언가 애플답지 못한 태도였죠. 그래서 애플은 완전히 새로우면서 타사의 저가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불필요한 부품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이를 통해 부피도 함께 줄어들었죠. 그러고 나니 플래시 메모리와 밧데리, 오디오칩만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LCD가 빠졌는데, 당시엔 LCD가 빠진 MP3 플레이어가 거의 없던 때입니다. LCD는 필수 부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랜덤 재생을 한다면 LCD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 애플은 많은 사람은 랜덤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무작위 재생이라는 의미의 셔플을 제품명으로 정하고 "Life is random"이라는 광고문구를 동원해 LCD가 없는 아이팟 셔플을 판매하였습니다. 애플이 셔플을 통해 큰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저가 제품의 경쟁을 따돌리는 일이었는데, 셔플이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였죠.
대니얼 핑크는 이처럼 개념화가 중요한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디자인, 이야기, 심포니, 공감, 놀이, 의미라는 여섯 가지 감각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대를 주도하는 중요 기업들을 살펴보면 분명히 이러한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입니다. 한국이 앞으로도 경제를 발전하기 원한다면,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젊은 세대 부터 이러함 감각을 키우도록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덩치만 큰 기업이 아닌, 진정으로 영향력이 큰 기업이 한국에서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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