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02 계몽주의와 경제학 1- 이성의 몰락 (3)
  2. 2008/12/05 이명박 정부의 경제 도덕주의 (10)
오늘날 유럽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 합리주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 등이 유럽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7-18세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유럽사람들도 다른 지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했고, 이성뿐 아니라 감성, 직관, 전통 등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고, 주체와 객체의 개념이 아닌, 세상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속에 인간도 포함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유럽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재발견하였고, 이러한 고대 문화의 토대가 되었던 이성의 힘에 주목합니다. 즉, "미신과 불합리한 전통을 떨쳐버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을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면서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이 꽃피고, 과학을 기초로 한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유럽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앞선 과학 기술을 무기제조에 응용하면서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이성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믿음은 종교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일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 운동(Enlightenment movement)이지요.

계몽주의는 철학자들이 주도했지만, 문학과 예술뿐 아니라 정치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유럽은 기득권 세력이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상황이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귀족들이 혈통을 근거로 특권을 누리고, 대부분 국민은 정치적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올바르지 못하죠. 결국, 합리성을 무기로 구체제(ancient regime)를 공격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의 이상은 정치구조 변화로 구체화합니다. 이렇게 볼 때 프랑스 대혁명은 계몽주의의 열매자 정점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계몽주의가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술계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싹텄듯, 합리적인 사고만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프랑스 대혁명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매우 우수한 이념의 토대 위에 세워졌지만, 실제로는 정파 싸움이 공포정치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비극이 생기고 맙니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은 어느새 황제가 되어 과거 기득권 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불평등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죠.

이처럼 계몽주의는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기초를 잃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미 흄이나 칸트의 철학에서 이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던 근대 유럽 철학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이르면 이성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나며 합리주의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전통적인 유럽 철학과는 매우 다른 실존주의가 유행하게 됩니다. 지금도 유럽 철학계는 해체주의 등 합리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룹니다.

합리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보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면 합리주의는 가장 인간다운 사고의 방식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로이트가 "합리적인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뒤틀려진 잠재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자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전제도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면, 합리성은 문명이 강요하는 덕목일 뿐,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당위성은 없다는 말도 성립하죠.

철학적 합리주의의 몰락은 다른 영역에도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과학이 대표적인 예인데, 계몽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의 과학자 뉴턴이 이해한 세상은 마치 시계를 구성하는 기계장치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듯,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측량할 수 있는 자연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롭게 움직이는 체계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고,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과학을 합리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동양종교의 관점으로 현대물리학을 해석한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ao of Physics)같은 책도 나오게 되었죠.

합리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합리성이 건설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던 시대에 나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합리성에 기초한다면 완벽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20세기에 나온 조지 오웰의 1984나 앤서니 버거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등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고를 담았습니다.

요즘 같이 합리주의의 전통이 많이 무너진 시대에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의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순진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나 있었음 직한 이러한 믿음이 여전히 유용한 분야가 바로 경제학입니다. 내일은 서양의 합리주의 전통이 경제학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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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작년 대선 당시 블로그를 자주 방문한 분이라면, 블로거들과 대중 사이에서 대단한 의견의 차이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블로거들 중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여론조사에선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1위였기 때문이죠. 블로거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한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블로거는 이명박 후보가 너무 많은 의혹에 연루되었기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에 비해 일반 유권자들은 추상적인 "도덕성 문제" 보다는, 화끈한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에 집중했고, 결국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덕성 문제로 대단한 논란을 겪은 이명박 대통령은 흥미롭게도 남에게는 대단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특히 경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물가가 오르자 "물가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하였고, 곧 정부는 이른바 "MB품목"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특정 품목을 관리 대상으로 삼은 대통령의 발상 뒤엔 "물가를 올리는 행위는 부도덕하다"는 생각이 숨어있습니다. 즉, "아무리 원가가 올랐다 하더라도 물가를 올리는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MB 품목을 낳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경제학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경제학은 경제 현상을 도덕이 아닌 경제의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는 물가의 오르내림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설명했지, 부도덕한 상인이 순박한 시민을 등처먹는 과정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경제활동은 도덕생활의 연장이 되어버리고, 경제학은 윤리학의 일부분으로 흡수될 수 밖에 없겠죠.

또, 얼마전 환율이 급등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을 상대로 "외환을 사재기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도덕적인 잣대를 적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기업은 환율이 오른다고 생각되면 보유 외환을 팔지 않고 보관해 두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이지 정부가 도덕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정 이러한 현상이 국가 경제에 짐이 된다면 기업의 외환 보유액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켜야지, 법적 근거도 없는 꾸짖음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되죠.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정반대 정신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은행의 대출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기업을 운영해 봐서인지, 기업이 대출을 받지 못해 부도나는 현상을 매우 안타까워 하면서 은행들에게 "돈을 풀라"고 여러 번 재촉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은행들은 자기만 살려고 돈을 웅켜쥐지 말고, 국가 경제를 위해 기업에게 대출을 해주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시각에 따르자면 돈을 안 빌려주는 은행은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 돈을 못빌리는 기업은 동정의 대상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세상 살기 쉽긴 하겠지만, 자신이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는 입장이 되어 보면 이러한 흑백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을 통해 취업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권고했습니다. 즉, "취업이 안되는 원인은 너희들이 눈이 높기 때문이야. 그렇게 교만하게 굴지만 않으면 문제는 당장 해결되"라는 뜻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취직을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시겠습니까? 즉,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취직을 못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고, 따라서 취직을 못하는 사람은 어떠한 도움도 정부로부터 얻지 못해야 마땅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늘 자신이 "경제를 좀 아는" 경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지만, 저는 그가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반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케인즈가 말했듯, 경제는 "전문적이고 어려운 주제"입니다. 따라서 일반인 처럼 생각해서는 절대 경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경제를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해선 단지 일반인의 태도로 경제를 볼 것이 아니라 경제 전문가의 태도로 경제를 봐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선 그러한 모습이 안보입니다.

정부가 도덕주의의 몽둥이를 휘두르자 언론도 정부를 거드는 기사를 올립니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이자가 높은 은행을 찾아 하루마다 은행을 바꿔가며 달러 예금을 넣었다 뺐다 한다는 기사를 보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업이 이자를 많이 주는 은행을 찾아 예금처를 바꾸는 것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 행위입니까? 여러분은 큰 돈이 있다면 "이자 몇푼 가지고 째째하게 여기저기 옮겨다니지 말고, 이자가 작아도 한곳에 맞겨야 겠다"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기사에는 "이자놀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도 들어가는데, 이자 많이 주는 은행에 돈을 맞기는 것이 이자놀이라면, 은행에 예금한 사람은 다 이자놀이하는 고리대금업자라해도 되겠습니다.

물론 모든 경제행위가 도덕성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가 도덕군자를 자처하고 경제주체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법적 근거도 없이 도덕의 잣대로 평가하면 경제 전체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이 옵니다. 일반인은 경제의 한 부분만 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비도덕적이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소리를 따르다 보면 경제가 왜곡되기 쉽죠. 이것이 이른바 포퓰리즘입니다. 노무현 정부때 무슨 정책만 나오면 한나라당은 늘 "포퓰리즘이다"고 비난했는데, 지금 한나라당 대통령이 포퓰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니 매우 당황스럽군요.

대중은 경제 현상을 늘 도덕의 잣대로 판단합니다. 이는 대중의 속성이자 특권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도덕을 강제하는 집단이 아니라, 정책을 집행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물가가 올라서 문제라면 물가를 내리기 위한 정책을 써야지, "물가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식으로 제조, 유통업자를 죄인 취급하면 안됩니다. 이는 다른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내놓은 경제 정책이 하나도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놓았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 금융 안정 대책을 내놓았는데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급한 마음에 급한 말을 쏟아놓는 중입니다. 하지만 경제를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질타 발언은 경제 주체들을 위축해 경제를 더 망가트릴 뿐입니다. 부디 도덕적 비난자의 역할은 국민에게 맡겨 두고, 정부는 조용히 정책만 잘 집행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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