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럽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 합리주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 등이 유럽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7-18세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유럽사람들도 다른 지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했고, 이성뿐 아니라 감성, 직관, 전통 등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고, 주체와 객체의 개념이 아닌, 세상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속에 인간도 포함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유럽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재발견하였고, 이러한 고대 문화의 토대가 되었던 이성의 힘에 주목합니다. 즉, "미신과 불합리한 전통을 떨쳐버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을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면서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이 꽃피고, 과학을 기초로 한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유럽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앞선 과학 기술을 무기제조에 응용하면서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이성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믿음은 종교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일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 운동(Enlightenment movement)이지요.
계몽주의는 철학자들이 주도했지만, 문학과 예술뿐 아니라 정치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유럽은 기득권 세력이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상황이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귀족들이 혈통을 근거로 특권을 누리고, 대부분 국민은 정치적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올바르지 못하죠. 결국, 합리성을 무기로 구체제(ancient regime)를 공격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의 이상은 정치구조 변화로 구체화합니다. 이렇게 볼 때 프랑스 대혁명은 계몽주의의 열매자 정점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계몽주의가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술계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싹텄듯, 합리적인 사고만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프랑스 대혁명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매우 우수한 이념의 토대 위에 세워졌지만, 실제로는 정파 싸움이 공포정치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비극이 생기고 맙니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은 어느새 황제가 되어 과거 기득권 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불평등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죠.
이처럼 계몽주의는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기초를 잃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미 흄이나 칸트의 철학에서 이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던 근대 유럽 철학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이르면 이성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나며 합리주의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전통적인 유럽 철학과는 매우 다른 실존주의가 유행하게 됩니다. 지금도 유럽 철학계는 해체주의 등 합리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룹니다.
합리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보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면 합리주의는 가장 인간다운 사고의 방식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로이트가 "합리적인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뒤틀려진 잠재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자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전제도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면, 합리성은 문명이 강요하는 덕목일 뿐,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당위성은 없다는 말도 성립하죠.
철학적 합리주의의 몰락은 다른 영역에도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과학이 대표적인 예인데, 계몽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의 과학자 뉴턴이 이해한 세상은 마치 시계를 구성하는 기계장치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듯,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측량할 수 있는 자연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롭게 움직이는 체계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고,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과학을 합리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동양종교의 관점으로 현대물리학을 해석한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ao of Physics)같은 책도 나오게 되었죠.
합리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합리성이 건설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던 시대에 나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합리성에 기초한다면 완벽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20세기에 나온 조지 오웰의 1984나 앤서니 버거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등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고를 담았습니다.
요즘 같이 합리주의의 전통이 많이 무너진 시대에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의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순진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나 있었음 직한 이러한 믿음이 여전히 유용한 분야가 바로 경제학입니다. 내일은 서양의 합리주의 전통이 경제학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계몽주의는 철학자들이 주도했지만, 문학과 예술뿐 아니라 정치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유럽은 기득권 세력이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상황이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귀족들이 혈통을 근거로 특권을 누리고, 대부분 국민은 정치적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올바르지 못하죠. 결국, 합리성을 무기로 구체제(ancient regime)를 공격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의 이상은 정치구조 변화로 구체화합니다. 이렇게 볼 때 프랑스 대혁명은 계몽주의의 열매자 정점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계몽주의가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술계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싹텄듯, 합리적인 사고만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프랑스 대혁명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매우 우수한 이념의 토대 위에 세워졌지만, 실제로는 정파 싸움이 공포정치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비극이 생기고 맙니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은 어느새 황제가 되어 과거 기득권 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불평등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죠.
이처럼 계몽주의는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기초를 잃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미 흄이나 칸트의 철학에서 이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던 근대 유럽 철학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이르면 이성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나며 합리주의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전통적인 유럽 철학과는 매우 다른 실존주의가 유행하게 됩니다. 지금도 유럽 철학계는 해체주의 등 합리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룹니다.
합리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보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면 합리주의는 가장 인간다운 사고의 방식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로이트가 "합리적인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뒤틀려진 잠재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자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전제도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면, 합리성은 문명이 강요하는 덕목일 뿐,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당위성은 없다는 말도 성립하죠.
철학적 합리주의의 몰락은 다른 영역에도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과학이 대표적인 예인데, 계몽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의 과학자 뉴턴이 이해한 세상은 마치 시계를 구성하는 기계장치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듯,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측량할 수 있는 자연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롭게 움직이는 체계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고,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과학을 합리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동양종교의 관점으로 현대물리학을 해석한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ao of Physics)같은 책도 나오게 되었죠.
합리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합리성이 건설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던 시대에 나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합리성에 기초한다면 완벽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20세기에 나온 조지 오웰의 1984나 앤서니 버거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등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고를 담았습니다.
요즘 같이 합리주의의 전통이 많이 무너진 시대에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의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순진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나 있었음 직한 이러한 믿음이 여전히 유용한 분야가 바로 경제학입니다. 내일은 서양의 합리주의 전통이 경제학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계몽주의와 경제학 3- 마에스트로의 가짜 연금술 (4) | 2009/06/05 |
|---|---|
| 계몽주의와 경제학 2- 현대 경제학의 탄생 (3) | 2009/06/03 |
| 계몽주의와 경제학 1- 이성의 몰락 (3) | 2009/06/02 |
|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 (1) | 2009/05/29 |
| 자본주의와 시장 (0) | 2009/05/28 |
| 폰지 사기(Ponzi Scheme) (5) | 2009/05/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