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아는 철학자의 이름을 대 보라"고 물으면 플라톤 부터 칸트까지 다양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들 중 오늘날 생존하는 철학자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르트르나 푸코 정도가 대중에게 알려진 철학자 중 가장 최근에 살았던 사람이겠죠. "원래 철학자는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철학의 역사에서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한 철학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의 철학자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정받았죠. 예를 들어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저자였고, 헤겔은 유럽의 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대중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철학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거대한 학문적,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철학을 하려면 시간적, 물질적 여유(leisure)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유가 있는 계층은 귀족 뿐이었고, 따라서 생업의 부담이 없는 귀족들이 철학을 시작했죠. 이들 귀족은 철학의 생산자일 뿐 아니라 철학의 소비자이기도 했습니다. 철학자들이 쓴 심오한 책들은 비싼 가격에 귀족들에게 팔렸고, 귀족들이 이처럼 철학을 소비했기에 철학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낭비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었죠. 오늘날 철학 서적을 출판하며 '이걸 누가 사 읽을까?'라고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처럼 철학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층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 것입니다.
귀족이 철학자들을 배출하고, 철학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교육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귀족의 교육은 실용적 지식의 전달을 완전히 무시한채 극단적인 지능의 발달을 추구하였습니다. 특별히 언어 교육이 대단히 중요시되었는데, 많은 지역의 귀족들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며 자랐고(고대 로마 귀족들의 그리스어 공부나 조선 양반들의 한자 공부), 암송을 중요시해 고전의 많은 부분을 암송하였습니다(고대 그리스 귀족의 호머 암송이나 동양 귀족들의 경전 암송). 또한 소수만이 모여 공부하거나, 개인교사를 통해 공부하였기에 한 반에 수십명이 모인 교실에서 행하는 교육과는 교육의 질이 달랐고, 귀족 자녀라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매를 맞았기 때문에 공부의 동기도 확실했습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귀족은 20대가 되면 이미 대단한 지적인 성숙도를 보였고, 이처럼 지적으로 성숙한 젊은이들이 다시 대학에 모여 공부했으니, 대학을 나올 정도면 대단한 지성인이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 귀족의 특권에 대한 반발이 증가하고, 교육의 대상을 확대해서 산업사회에 맞는 일꾼을 길러내야할 사회적 필요가 커지면서 보편 교육(universal education)이 도입되었고,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육은 모든 면에서 귀족교육과 반대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우선, 모든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하려다 보니 한 명의 교사가 많은 학생을 지도해야 했고, 문학과 외국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과목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교육의 목표도 "귀족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교양의 습득"이 아닌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지식, 실용적인 능력의 습득"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 모든 국민이 어느 수준의 학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교육은 마쳤지만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은 부정적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교육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귀족 시대 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또한, 외국인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일대일로 배우는 부잣집 자녀는 귀족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모두 보편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귀족 교육은 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귀족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사대부 모두 돈 버는 일을 대단히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이들이 땅과 재산을 부모로부터 물려 받아 가만히 있어도 돈이 저절로 들어왔기 때문이죠. 따라서 귀족은 다른 귀족을 만나 고전을 읊으며 자신이 얼마나 학식이 높은지 자랑하며 살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그가 부자집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사회적 지위와 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목표와 관계 없는 교양 공부는 사치일 뿐이고, 따라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꼭 교양이 많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이러한 사회적 변동이 꼭 나쁘지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귀족들이 유유자적하게 한시를 읊으며 사는 동안, 평민들은 언문 조차 배우지 못하던 시절을 이상적으로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귀족 교육이 없어지면서 귀족 교육의 결과로 탄생하던 지식인이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모두가 철학을 즐길 필요는 없지만, 위대한 사상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인류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는데, 그러한 존재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해인 것이죠.
철학과 인문학이 탄생하고 자란 사회 배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요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지 정부가 인문학을 지원하지 않았다거나, 출판사가 상업성 높은 책만 출판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죠. 따라서 인문학이 진정으로 위기를 넘어서려면, 보편 교육의 시대에 인문학을 누가 어떻게 진행하고, 누가 이를 소비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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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철학을 하려면 시간적, 물질적 여유(leisure)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유가 있는 계층은 귀족 뿐이었고, 따라서 생업의 부담이 없는 귀족들이 철학을 시작했죠. 이들 귀족은 철학의 생산자일 뿐 아니라 철학의 소비자이기도 했습니다. 철학자들이 쓴 심오한 책들은 비싼 가격에 귀족들에게 팔렸고, 귀족들이 이처럼 철학을 소비했기에 철학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낭비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었죠. 오늘날 철학 서적을 출판하며 '이걸 누가 사 읽을까?'라고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처럼 철학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층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 것입니다.
귀족이 철학자들을 배출하고, 철학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교육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귀족의 교육은 실용적 지식의 전달을 완전히 무시한채 극단적인 지능의 발달을 추구하였습니다. 특별히 언어 교육이 대단히 중요시되었는데, 많은 지역의 귀족들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며 자랐고(고대 로마 귀족들의 그리스어 공부나 조선 양반들의 한자 공부), 암송을 중요시해 고전의 많은 부분을 암송하였습니다(고대 그리스 귀족의 호머 암송이나 동양 귀족들의 경전 암송). 또한 소수만이 모여 공부하거나, 개인교사를 통해 공부하였기에 한 반에 수십명이 모인 교실에서 행하는 교육과는 교육의 질이 달랐고, 귀족 자녀라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매를 맞았기 때문에 공부의 동기도 확실했습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귀족은 20대가 되면 이미 대단한 지적인 성숙도를 보였고, 이처럼 지적으로 성숙한 젊은이들이 다시 대학에 모여 공부했으니, 대학을 나올 정도면 대단한 지성인이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 귀족의 특권에 대한 반발이 증가하고, 교육의 대상을 확대해서 산업사회에 맞는 일꾼을 길러내야할 사회적 필요가 커지면서 보편 교육(universal education)이 도입되었고,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육은 모든 면에서 귀족교육과 반대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우선, 모든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하려다 보니 한 명의 교사가 많은 학생을 지도해야 했고, 문학과 외국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과목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교육의 목표도 "귀족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교양의 습득"이 아닌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지식, 실용적인 능력의 습득"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 모든 국민이 어느 수준의 학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교육은 마쳤지만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은 부정적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교육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귀족 시대 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또한, 외국인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일대일로 배우는 부잣집 자녀는 귀족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모두 보편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귀족 교육은 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귀족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사대부 모두 돈 버는 일을 대단히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이들이 땅과 재산을 부모로부터 물려 받아 가만히 있어도 돈이 저절로 들어왔기 때문이죠. 따라서 귀족은 다른 귀족을 만나 고전을 읊으며 자신이 얼마나 학식이 높은지 자랑하며 살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그가 부자집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사회적 지위와 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목표와 관계 없는 교양 공부는 사치일 뿐이고, 따라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꼭 교양이 많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이러한 사회적 변동이 꼭 나쁘지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귀족들이 유유자적하게 한시를 읊으며 사는 동안, 평민들은 언문 조차 배우지 못하던 시절을 이상적으로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귀족 교육이 없어지면서 귀족 교육의 결과로 탄생하던 지식인이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모두가 철학을 즐길 필요는 없지만, 위대한 사상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인류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는데, 그러한 존재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해인 것이죠.
철학과 인문학이 탄생하고 자란 사회 배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요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지 정부가 인문학을 지원하지 않았다거나, 출판사가 상업성 높은 책만 출판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죠. 따라서 인문학이 진정으로 위기를 넘어서려면, 보편 교육의 시대에 인문학을 누가 어떻게 진행하고, 누가 이를 소비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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