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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만 불던 경제계에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어제 미국 다우지수는 6.84%가 오르면 7800선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이로써 얼마전 6500선까지 떨어졌던 다우의 대반등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도 3월 위기설이 남의 나라 일만큼 멀게 느껴지는데, 1600원선까지 갔던 환율은 1300선으로 내려왔고,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는 중입니다. 아직 실물 경제가 나아졌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지만, 경제위기가 금융 부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금융 부분이 정상화하면 실물경제도 정상화하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몇가지 이유에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본주의 경제는 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호황이 클 수록 불황도 크기 마련이죠. 그런데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로 계속 호황을 누렸고,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1년 9/11 사태로 잠시 불황이 왔을 뿐, 큰 관점에서 호황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호황으로 생겨난 거품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인데, 지난 반 년간 경제가 큰 홍역을 앓았다고는 하지만 거품은 아직 덜 꺼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동안 거품이 꺼져야 하고, 이는 경제위기가 끝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입니다.

두번째로, 경제는 늘 대중의 뜻과 반대로 움직입니다. 특히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려야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끝나기 마련이죠. 예를 들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애 업은 주부가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나오면 상투다"는 말을 합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는 보통 육아와 가사에 바빠 주식에 관심이 없는데, 남들이 "주식을 하면 돈번다더라"니까 자기도 주식을 하려고 객장에 나타날 정도라면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이고, 따라서 주가의 큰 흐름이 바뀐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죠.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보자면, 대중의 입에서 "경기가 너무나 나쁘고, 좋아질 희망이 안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인터넷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랄지, "곧 경기가 풀릴 것이다"는 일반인의 주장이 많습니다. 이는 바닥은 멀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전문가의 경기 예측에 귀를 기울이지만, 사실 전문가의 말은 잘 맞지가 않는 법이고, 전문가 중엔 소수의 똑똑한 사람도 섞여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하지만 대중은 큰 흐름이 바뀌는 순간에는 꼭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중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면 큰 흐름을 집어낼 수가 있죠. 3월 초에 환율이 폭등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환율은 끝이 없이 오르겠구나" 했을 때, 저는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느꼈습니다. 얼마 후엔 평소에 환율에 관심 없는 사람 조차 "환태크로 돈을 모으겠다"고 나서기 시작하길래, "그렇다면 환율이 꼭지점에 달했구나"하는 판단이 들었죠. 결국 그때부터 환율이 미끄럼을 타기 시작해 200원 이상 떨어졌습니다. 대중의 판단은 거의 정확히 반대로 맞는 법이죠.

그러면 지금 주가가 오르는 현상은 무엇이냐고 물으시겠지만, 불황기에도 가끔씩 작은 호황은 생기는 법입니다. 미국도 1929년에 주가가 대폭락했지만, 1930년엔 다시 주가가 많이 회복했죠. 하지만 1931년엔 또 주가가 떨어지면서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번 랠리도 몇 달 이상 지속될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경제가 완전히 위기를 탈출했다는 신호는 아직 없습니다.

위기의 한복판에 서면 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찌 짐작하기가 극히 힘듭니다. 따라서 위기가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큰 흐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2007년 말에 미국발 경제위기가 시작하리라고 예상하였고, 만약 중국, 인도 등이 미국과 상관 없이 경제가 잘 돌아가는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장기간 경제 위기가 지속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가 미국 경제 이상으로 흔들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디커플링은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경제는 장기 불황이 진행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지는 듯 보여도 너무 안심하지 마시고, 언젠가 다시 닥칠 불황을 대비하는 태도를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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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달러의 위기

경제 2008/11/03 01:07
오늘날 세계 경제를 흔드는 금융위기는 달러화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비록 당장은 달러화의 가격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많이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 (예를 들어 위안화나 유로화)가 달러화의 자리를 빼앗을 날이 곧 올찌도 모르는 일이죠.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잡게 된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출범 부터입니다. 아직 2차세계대전이 진행중이던 1944년,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의 브랜튼우즈에 모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기로 합의합니다. 이로써 달러는 국제무역의 기본 통화이자 세계의 여러 나라 화폐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정부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인 이유는 미국의 국력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정부가 금본위제 (gold standard)에 따라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즉, 달러의 가치는 곧 금의 가치였고, 따라서 달러는 믿을 수 있는 화폐였죠.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60년대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는 1970년대에 침체기에 접어들고, 경기는 나쁜데 물가는 오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재선을 노리던 닉슨 대통령으로서는 경기 활성화가 중요했죠. 하지만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가 물가를 잡으면서 경기를 살리기는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달러에 대한 믿음이 떨어진 외국 정부들은 달러를 내놓고 "약속대로 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은 전체 달러 발행액의 22%밖에 되지 않았기에 외국 정부들의 요구대로 금을 주다간 금이 바닥날 위기였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에 임금과 물가를 동결하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추가하고, 금본위제를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달러를 가져오면 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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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물가 동결 덕분에 미국 경제는 일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만, 금이라는 가치의 근원이 사라진 달러화의 가치는 폭락하게 됩니다. 브랜튼우즈 협약에서 금 1온스를 35달러로 규정했는데, 나중엔 1온스에 850달러까지 금값이 폭등합니다 (지금 금값이 1온스에 720달러 수준입니다. 즉 70년대말 보다 낮은 셈이지요). 이와 함께 원유가격도 오르는데, 사실 금값에 비하면 기름값이 덜 오른 셈입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70년대의 유가폭등은 달러화 폭락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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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두자릿수 물가상승을 끝낸 사람은 FRB의장인 폴 보커 (Paul Volcker)입니다. 폴 보커는 카터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도 FRB를 이끌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정책을 씁니다. 물가를 잡고 나자 경제도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미국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현재 폴 보커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버락 오바마의 경제고문으로 활동중입니다).

폴 보커의 뒤를 이어 FRB 의장이 된 앨런 그린스펀은 90년대 경제호황을 이끕니다. 90년대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2차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장년기에 이르러 최고의 생산성을 보였고, 인터넷의 발달로 통신, 물류 비용이 대폭 줄어들어 생산비 절감이 가능했고, 세계화로 인해 물가가 싼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와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점 등입니다. 이와 함께 그린스펀의 적극적인 저금리 정책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저금리 정책은 경기를 활성화하는 대신 거품을 만들어내는 법이죠. 실제로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주택가격 거품이 일어났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경기 활성화를 위해 통화량 공급을 늘렸으니 달러화의 가치는 점차 떨어져 (흔한 물건은 가치가 없듯, 발행량이 많은 돈은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상대적으로 원자재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70년대식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것이지요.

지금 미국은 무역적자와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곧 미국이 달러화 공급을 줄일 수 없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미국정부는 금융구제를 위한 700억달러 등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돈을 더 풀 계획입니다. 이는 앞으로도 달러화가 많이 공급된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달러화의 가치는 언젠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돌이켜 본다면 1944년 달러화의 가치는 금에 기초했고, 따라서 세계 많은 나라가 달러를 통화의 기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달러화는 아무런 실체가 없이, 사람들의 심리에 의존하는 화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심리에 변화가 온다면 달러화의 가치는 폭락할찌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방치하고, 빚으로 경제를 이끌어 온 미국인들이 오늘날 달러화의 가치하락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인류 역사상 종이돈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종이돈은 늘 돈을 필요로하는 정부가 통화량을 늘려 결국 휴지조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과연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위기가 이러한 과정의 일부분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상황은 쉽게 해답을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과연 미국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찌 주목하게 됩니다.

참고문헌
The Trillion Dollar Meltdown by Charles R. Morris
Nixon Shock
Bretton Woods System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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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S 금리의 중요성

경제 2008/10/19 21:09
원화와 외화가 만나 주인을 바꾸는 외환시장과 달리, 외환스왑시장은 원화와 외환을 가진 사람이 만나 일정기간 서로 돈을 빌려줬다 다시 받기로 약속하는 시장입니다. 외환시장과 외환스왑시장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환율의 동향을 예측하려면 양쪽의 상황을 모두 살펴야죠.

외환스왑시장에서 중요한 두가지 지표는 통화스왑(CRS) 금리와 이자율스왑(IRS) 금리가 있습니다. CRS 금리는 원화를 빌려주고 달러를 빌리는 사람이 받는 금리입니다 (달러를 빌려주고 원화를 빌리는 사람이 받는 금리는 리보 (LIBOR) 금리이기 때문에 따로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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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A라는 은행이 1000달러가 있고, B라는 은행이 120만원이 있다면, 환율을 1달러/1200원으로 정하고 1년간 1000달러와 120만원을 맞교환합니다. 그리고 서로 돈을 빌린데 대한 이자를 교환해야 하는데, A은행은 B은행측에 CRS 금리만큼을 내고, B은행은 A은행에 LIBOR 금리 만큼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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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율스왑 (IRS)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이자를 맞교환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C라는 은행은 CD금리로 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CD금리가 변하면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C은행은 안전하게 고정금리로 내기 원합니다. 이럴 때 이자율스왑을 이용하면 이자율을 고정할 수 있죠. 이렇게 고정금리 이자를 주고 변동금리 이자를 받는 이자율스왑을 IRS 페이라고 합니다 (IRS 리시브는 반대겠죠).

CRS금리에서 IRS금리를 뺀 값을 스왑 베이시스 (swap basis)라고 부릅니다. 스왑 베이시스는 한국에서 달러를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죠. 예를 들어, CRS 금리가 높고 (즉, 달러를 구하기가 쉽고) 국내의 이자율이 낮다면 (즉, IRS 금리가 낮다면), swap basis는 플러스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CRS 금리가 낮고 (즉, 달러를 구하기가 어렵고) 국내의 이자율이 높다면 (즉, IRS 금리가 높다면), swap basis는 마이너스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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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워 16일에는 CRS 금리가 0%까지 내려갔고, 금리는 계속 올라 1년물 IRS가 6%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따라서 스왑 베이시스는 1년물 기준으로 -598bp (베이시스 포인트), 즉 5.9%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는 사상 최저치로서, 그만큼 달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국은행에서는 이러한 스왑시장의 혼란을 막고자 경쟁입찰 방식으로 시중 은행에 직접 달러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달러를 무한정 보유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달러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한국은행의 달러도 바닥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처럼 외국에서 달러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오래된다면 한국으로선 대단히 큰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앞으로 몇달 내에 해외의 신용경색이 완화되어 한국으로 달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한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해외의 신용경색이 빠르게 풀리고 한국으로 다시 달러가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한국경제는 숨통이 트게 되겠죠. 특히 정부와 한나라당이 은행의 대외채무를 보증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외국의 반응이 주목됩니다. 문제는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수많은 국가가 국가 부도에 직면한 지금, 외국의 금융기관이 한국을 믿고 돈을 빌려주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중대발표 임박설'까지 나도는 마당에, 어떻게 될 찌 모르는 나라에 돈을 빌려주기가 쉽지 않겠죠. 어쨌든 아직 희망을 포기하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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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읽는 독자라면, 조선일보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라기 보다는, 정부와 여당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기관지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 것입니다. 정부에서 무슨 발표를 하면 "정부에서 이렇게 주장을 했다"고 보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발표는 올바르다" "우리는 정부의 말을 믿어야 한다" 하는 식으로 정부의 주장을 뒷바침하는 후속보도를 내보내기 때문이죠.

며칠전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 (FT)가 Sinking Feeling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해 보도를 하자 정부가 나서서 강하게 반발하였고, 조선일보는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여 FT의 보도를 반박하는 글을 기사, 사설, 기자 블로그 가릴 것 없이 다방면으로 실은 것도 조선일보의 충성도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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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FT의 보도에 대한 반발로도 모자라, 오늘은 인터넷 머릿기사로 "FT에서 면피성 기사를 실었다"는 기사까지 올렸습니다. 사실 FT는 한국 경제 사정에 대해 다각도로 보도를 하는 것 뿐인데, 조선일보는 "FT의 첫번째 보도는 왜곡이고, 그렇다면 두번째 기사는 왜곡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기사가 분명하다"고 해석을 해버린 것이지요. 아, 조선일보가 따로 연재소설을 싣지 않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군요.

이명박 정부가 FT의 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여 조선일보를 동원해 공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최근에 청와대가 자랑할만한 유일한 업적은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내보낸 것입니다. 청와대가 이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냐 하면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유명한 모씨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대해 "아날로그화법으로 IT감성 어루만졌다"고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았고, 조선일보는 이번 라디오 연설을 대공황 위기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행한 라디오 연설인 노변담화에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여권이 들떠 있는데 (사실 KBS의 반발을 억눌러가며 사람들이 잘 듣지도 않는 라디오 연설 한 것이 들뜰 이유는 아닌데, 요즘 여권에 좋은 일이 없어 작은 일 하나에도 대단히 감격하는 듯 싶습니다), 유력 경제지인 FT에서는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에너지 10% 아끼면 국제수지 적자를 없앨 수 있다'는 식으로 절박하게 말하면 국민이 패닉에 빠진다" ("But it is hard for ordinary Koreans to avoid a sense of panic when the government unveils ever more desperate-sounding measures: yesterday, for example, Mr Lee urged people to ration energy consumption and overseas spending. "If we cut down on energy by 10 per cent, we will not post a current account deficit," he told radio listeners.)고 평가했습니다. 즉, 청와대는 대통령이 연설하면 국민이 안심한다고 믿었는데, FT는 대통령 연설이 국민을 패닉하게 하는 실수라고 지적한 것이지요. 이러니 청와대에서 난리가 난 것도 당연합니다.

또한 FT의 보도를 보면, 한국 정부가 지난 두 달간 환율 방어를 위해 400억 달러를 썼다고 하는데, 이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고를 쓸어 넣다가는 몇달 안가 외환이 바닥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사실인데 FT가 적나라하게 들쳐내 버린 것이지요.

이처럼 FT의 기사는 정부가 감추고 싶은 사실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한국이 내년 6월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 자금이 1750억달러인데, 이중 800억달러는 외국 은행의 한국지점과 관련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안될 것이고, 약 1000억달러 가까운 금액이 문제인데, 이 금액에 대한 대출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큽니다. 또한 한국의 은행 예대율 (예금대 대출 비율)이 높다 (즉, 은행이 예금을 받은 것 보다 빌려준 돈이 많다)는 사실은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외 채무는 4000억달러 수준인데, 이는 금액으로 보나 GDP 비율로 보나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내 언론이 자주 다루지 않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FT는 16일 원화의 가치 폭락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크레딧 디폴트 스왑 (Credit Default Swap, CDS)이 330 베이시스 포인트로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천만달러를 빌릴 때 부도를 방지하는 조건으로 내야 하는 금액이 33만달러에 달한다는 말이죠. 일본은 CDS가 35베이시스 포인트밖에 안되는데, 한국은 이 수치가 거의 열 배나 높습니다. 이는 한국의 부도 가능성이 일본에 비해 거의 열배나 높다고 평가된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FT가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엔 왜곡 보도가 아니라 너무 적나라한 보도라서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FT는 다른 주요 경제지 (The Economist나 Wall Street Journal)와 마찬가지로 우파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좌파언론이 쓴 기사라면 "빨갱이의 정부 흔들기"로 몰아가겠는데, 우파 경제지에서 나온 보도라 정부로서도 몹시 당혹스러운 듯 싶습니다.

정부가 정말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한다면 조선일보 사설 동원해서 FT랑 싸우지 말고, 문제가 무엇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할찌를 알려야 할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때 사람들은 외환위기 자체에 대해서도 충격을 받았지만, 얼마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던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외국 기관에 돈을 빌리러 가는 모습에서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매한 국민은 속일 수 있을찌 몰라도 크레딧 디폴트 스왑 같은 시장의 반응은 절대 속일 수 없는 법입니다. 자꾸 "소통의 문제"로 몰아가지 말고, 정직하게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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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금융구제법안을 통과하고, 유럽 여러나라 정상들이 모여 금융위기에 대해 공동대처하기로 결정한 후 처음 맞는 월요일, 한국의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선 우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290원선까지 올랐고, 결국 정부 개입으로 1269원에서 힘겹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또한 코스피지수는 4% 넘게 내려가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고, 코스닥지수는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가운데 6%이상 떨어졌습니다. 며칠전까지 "한국 증시의 성숙"을 논하던 언론들이 갑작스러운 증시의 미성숙한 태도를 어떻게 설명할찌 궁금해지네요.

이정도면 경제위기는 추측이 아니라 현실이 된 셈입니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2000원대까지 치솟았고, 주가는 3분의 1토막이 났던데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할찌 모르지만, 당시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국가부도가 나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지난 10년간 모아놓은 외환보유고가 있어 외환 부족으로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점이 다릅니다 (물론 당장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현찰이 부족해질 가능성은 있죠). 즉, 지금 상황은 외환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겪는 상황 중에서는 가장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제 금융 쪽의 위기는 기정사실이 되었고, 문제는 실물경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6일 강만수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당초 예상했던 성장률(연간 4%대 후반)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할 만큼 실물경제는 이미 침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는 국내의 경제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과 유럽 등 세계경제가 함께 침체하는 외부의 요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제가 작년에 쓴 미국발 경제위기 오는가?라는 글을 읽어보시면 이미 미국 경제의 상황이 심상치 않고, 따라서 세계경제가 함께 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7%경제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을 때, 저는 이미 한국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성장률 목표가 높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7%를 목표로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5%를 목표로한 사람이 당선될 때 보다 경제가 잘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지요. 하지만 실제 경제성장률이 4%일 가능성이 큰 때에 7% 성장률을 목표로 내세운 사람은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현실에 맞지 않는 높은 목표는 현실을 망쳐놓을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은 1958년부터 농업중심의 경제를 공업중심의 경제로 바꾸어 놓는 "대약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약진"이라는 말은 중국이 앞으로 껑충 전진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만약 대약진 운동을 추진하다 잘 안되면 소약진이라도 이루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중국은 현실성 없는 대약진 운동을 추진하다가 1400만명(일부 통계에서는 4300만명)이 넘는 인구가 굶어 죽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무리한 목표는 높을 수록 위험한 법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한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의 비전과 능력의 부재입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 환율은 괜찮은데 한국의 원화만 추풍낙엽처럼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한국의 지도자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한 정도인데,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도자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올바르게 이끌찌 몹시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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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금융구제법안이 통과된 후 한숨 돌리는 듯 했던 세계 경제는 곧바로 유럽에서 들려오는 금융위기 소식에 다시 한숨짓게 생겼습니다.

우선, 독일 2위의 부동산 담보 대출 은행 하이포 리얼 에스테이트 (Hypo Real Estate)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독일 정부와 은행들이 350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발표했는데, 은행들이 태도를 바꿔 구제금융안이 무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뱅크런 (예금자들이 은행에 맡겨둔 돈을 대규모로 찾아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독일 정부는 5000억유로를 들여 모든 은행의 예금을 보장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정상들은 파리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금융위기 대처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편, AFP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이미 경기침체가 시작하였고, 영국은 내년 초까지 경기침체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듯 하다고 합니다.

역시 이번 위기는 미국 정부가 미국내 금융기관 구제한다고 끝나는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함께 겪어야할 전세계적 위기인 듯 싶습니다. 또한 금융위기가 끝난다 하더라도 실물경제의 침체가 어느정도로 진행할찌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결국, 지금은 시계 제로의 상태이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비관적 전망이나 낙관전 전망 모두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우선은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된 독일이 어떻게 사태를 대처하는지가 관심을 끕니다. 흥미롭게도 제가 독일에 와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일이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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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구하기 위해 추진하던 7000억달러 규모의 지원을 포함한 금융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되었습니다. 29일 미국 하원은 본회의에서 법안은 상정했지만, 찬성 205표 반대 228표로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양당 지도부가 합의한 법안이 통과하지 못한 주요 원인은 공화당에서 반란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의 많은 시민은 "나는 장사를 잘못하면 부도가 나는데, 부자들이 운영하는 은행은 운영을 잘못해도 정부가 우리 세금으로 구해준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정부의 구제책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해 거부감이 큰 공화당 의원들이 이러한 국민의 반감에 편승해서 레임덕에 빠진 부시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 몇일간 세계 경제는 미국 정부의 금융 구제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주가와 환율이 움직였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가 틀어져버리고 나니 시장에 불확실성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당장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졌고 (777.68포인트, 6.98%), 나스닥도 9.14%가 떨어졌습니다. 지금 시간으로 한국은 아침 6시경이니 주식시장이 열지 않았겠지만, 장을 열면 큰 폭의 하락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환율인데, 28일에는 미국이 7000억 달러의 돈을 풀리라는 전제를 한 상태에서도 원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 미국이 이만큼의 돈을 풀지 않는다고 전제하게 되면 다시 한 번 원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물론 원화가치의 하락이 수출기업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물가상승등 부작용도 많고, 특히 KIKO에 물린 기업이라면 환율이 오를 수록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급속한 원화가치의 하락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이번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금융위기는 한 고비 (known unknown이 위험요소인 상태)를 넘기고 다음 단계 (unknown unknown이 위험요소인 상태)로 넘어가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상황에선 다음 단계를 말하기가 힘들게 됐네요. 어쨌든 큰 경제위기를 넘기기도, 주가의 바닥을 만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P.S. 30일 한국 주가는 예상과는 다르게 크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 시장의 흐름이 100% 반영되던 한국 증시가 몇주만에 "성숙"해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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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지금 한국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위험요소의 한가지는 바로 KIKO 라는 금융상품입니다. KIKO (Knock In Knock Out)는 환율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파생상품으로, 일정한 구간을 정해놓고 환율이 그 구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처음 정해놓은 환율을 적용받는 대신, 환율이 최저치 (Knock Out)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가 되고, 환율이 최고치 (Knock In)이상으로 올라가면 처음 정한 환율과 실제 환율의 두 배 이상을 물어내는 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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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현재 환율이 1000원인데, 기준환율을 1010원으로 정하고 낙인-낙아웃 구간을 950원-1050원으로 정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수출기업 입장에선 1달러를 바꿀 때 KIKO가 없다면 1000원밖에 못받지만, KIKO에 들었다면 1010원을 받으니 1% 이익을 봅니다. 그리고 환율이 떨어져 960원이 되도 여전히 1010원을 받으니 환율이 조금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이익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작년에는 KIKO로 이익을 본 기업들도 있었고, 은행도 장사가 잘 되겠다 싶어 기업들에게 열심히 판촉을 했습니다.

문제는 KIKO 계약에 따르면 환율이 대폭 떨어지면 기업은 보호를 못받는 대신, 환율이 대폭 오르면 큰 손실을 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조건에서 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950원이라는 최저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KIKO계약은 무효가 되고, 기업은 1달러에 900원으로 환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대폭의 환율 하락시 환헤지가 전혀 안된다는 뜻이지요. 반대로, 환율이 대폭 올라 1달러당 1100원이 되었다고 보면, 계약을 맺은 기업은 기준환율인 1010원과 1100원의 차이인 90원의 두배, 즉 180원을 내야 합니다. 만약 백만달러를 KIKO에 걸어두었다면, 1,000,000x180=1억8천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작년에 키코가 많이 판매된 시점에서 환율이 900원대였기에, 지금 키코에 가입한 대부분의 기업은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환율이 올라 수출기업의 수익이 좋아야 정상인데, 파생상품 하나 때문에 오히려 큰 적자를 본 셈이지요.

키코의 문제는 이익대 위험이 비대칭이라는 점입니다. 환율이 정해놓은 구간 내에서 움직인다면, 기업은 조금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벗어나면 기업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즉, 이익을 볼 때는 조금 보고, 손해를 볼 때는 크게 보는 것이지요. 이처럼 말도 안되 보이는 키코에 많은 기업이 가입한 이유는 작년에 환율이 내려가는 추세였고, 따라서 환율이 급격히 올라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즉, 작년 상황에서는 KIKO가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환율은 급격히 상승했고, 아무도 예상 못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예상"을 따라 작은 이익을 보려던 기업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기업이 자발적으로 KIKO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은행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가입했다거나, 은행이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에 소개한 LTCM가 몰락한 이유도 이처럼 작은 이익을 올리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업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장 가격이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 결국 정상적으로 돌아오리라고 계산하고 남의 돈을 빌어 큰 투자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장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크게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었고, 실제로도 시장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자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투자 방식을 "불도저 앞에서 동전 줍는 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방식이라는 뜻이지요.

The Black Swan을 쓴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또 다른 저서 Fooled by Randomness에서 그가 겪은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지금 공매도를 한 상태다"라고 말한 후, "나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공매도를 했다면 주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한다는 뜻인데,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 왜 공매도를 했는가? 당신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탈렙은 "나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에 혹시나 떨어진다면 대단히 많이 떨어지리라고 예측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상황은 쉽게 벌어지지는 않지만, 한 번 벌어지면 대단히 큰 규모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이라도 나타나면 이를 예측한 투자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다는 것이지요.

KIKO를 판매한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이 상품은 외국회사가 개발했고, 한국 은행들은 그저 상품을 가져다 수수료 받고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금 상황에서 원화 환율이 오를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만약 원화 환율이 오른다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보자. 이런 상품을 판매하려면 구매자에게 매력적이어야 할테니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구매자가 조금 이익을 보고, 원화가 크게 오르는 특수한 상황이 되면 우리가 큰 이익을 얻도록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대로 KIKO는 환율이 안정되던 작년에는 한국 기업들에게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고, KIKO에 가입한 기업이 많이 늘어난 직후 환율이 갑자기 오름으로 KIKO를 판매한 회사는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계산이 딱 들어맞은 셈이지요.

물론 KIKO가 정말 공정한 상품인가의 문제는 금융당국과 법정에서 가릴 문제입니다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세상엔 흔하지 않지만 큰 손해 (또는 이익)를 가져오는 사건이 존재하고, 이러한 사건을 배제하고 과거의 패턴이 되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위험을 계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질 수록 위험을 계산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사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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