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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8 [특집]신자유주의를 넘어서- 1부. 기득권과 규제 (4)
연초에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던 경제위기가 다시 심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계 은행의 부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각국 정부가 다시 시장에 개입하는 중이고, 금융 시스템의 위기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낳고, 실물경제의 위기는 금융 시스템을 흔드는 악순환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는 몇몇 기업이나 은행의 문제가 아니고, 지난 수 십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구조적 결함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신자유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신자유주의가 극복하기 원했던 구체제 (ancient regim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경제체제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중세의 기득권

태초로부터, 인간의 역사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사회란 곧 작은 집단의 모임이고, 각 집단은 자신이 사회내에서 전통적으로 누려온 권리와 특권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길드는 기득권 수호를 위한 집단의 좋은 예죠. 상인, 노동자들이 직업별로 조직한 길드는 각 직업의 영역에 활동하는 사람의 숫자를 조절하여 지나친 경쟁을 막았고, 이를 통해 이미 길드에 가입한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였죠. 길드는 또한 정치지도자가 세금을 올리거나 규제를 강화할 때 전통적인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대학도 기득권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대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university는 라틴어 universitas에서 나왔는데, 이는 학생과 교수의 조합을 뜻합니다. 즉, 학생들은 학생 조합을 만들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고, 교수는 교수 조합을 만들어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귀족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귀족들이 직접 왕을 선출할 자격을 얻거나 (독일의 선제후 제도), 왕에게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영국의 대헌장). 사실 영국의 귀족들은 기득권을 너무도 잘 보호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영국의 상원의원직은 귀족이 대를 이어 맡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유럽의 작은 국가들 (프랑스 남부의 모나코, 이탈리아 내륙의 산 마리노, 벨기에와 인접한 룩셈부르크 등)은, 근대에 들어 민족국가 (nation-state)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독립이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독립을 유지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중부에 존재하던 교황령 (Papal states)은 19세기에 이탈리아 통일운동으로 주권을 상실했으나, 20세기들어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무솔리니의 제안 덕분에 바티칸 시국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는 잠시 잃었던 정치적 기득권을 되찾은 예죠.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기득권

이처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의 전통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조직인 노조는 중세 유럽의 길드가 발전한 형태입니다 (지금도 영어권에선 screen actors guild 처럼 노조를 guild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예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을 하고, 특정 지역에서는 영업을 하지 않는 등, 지역에 따른 기득권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러한 지역에 따른 기득권은 거의 사라졌지만, 소주만큼은 지역별로 제조 회사가 다른 전통이 살아 있죠. 상품의 유통을 봐도, 공장에서 만든 상품이 직접 소매상으로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총판, 특판, 도매상을 거치는 방식이었고, 이러한 중간 상인들은 큰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19세기 유럽이 정부의 규제 없는 Laissez-faire의 시대라고 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없을 뿐 경제 내부의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따라서 완전 경쟁체제는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을 중심으로한 체제는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명문 대학 (이른바 Ivy League)들은 명문가의 자녀 중에서 학생을 선발하였고, 따라서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부모 덕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예일대학을 나온 조지 W. 부시가 그러한 예죠), 가난한 집안, 또는 소수인종 출신의 학생은 머리가 좋아도 좋은 대학에 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중반까지 유지되지요. (이에 대해선 David Brooks가 지은 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Bobos in Paradise)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정부의 통제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국가 고사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의사, 변호사, 교사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직업은 지금도 인기가 높은데, 이는 일단 정부가 설치한 진입장벽을 통과하기만 하면, 경쟁이 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은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줄이고 경쟁을 강화하는 추세에 따라 이러한 부분에도 경쟁의 요소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죠. 예를 들어, 변호사의 숫자를 늘이면 변호사의 기득권은 대단히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공무원도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의 특권이 대단히 줄어들겠죠.

이처럼 정부는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줄일 수도 있고, 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정부는 각 부분에 대해 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정부는 한 분야에 하나, 또는 소수의 기업만 허가하고, 다른 기업은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전화를 걸려면 한국통신망을 써야 했고, 국내선을 타려면 대한항공을 타야 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전화 분야는 AT&T가 독점하는 등 각 분야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많았습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인도에서는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에 대해 허가증을 요구하고, 허가증을 얻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기에 허가증 왕국 (License Raj)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 또는 전통적인 권리 때문에 각 분야에서 유지되던 기득권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순기능과 함께,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20세기 후반부의 세계는 기득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자가 주도하게 됩니다. 내일은 신자유주의의 발달과정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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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