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관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22 "I love you"의 의미 (3)
  2. 2009/09/19 위기의 남성 (5)
  3. 2009/05/13 초식남의 시대 (2)

"I love you"의 의미

사회 2010/04/22 19:58
한국인과 미국인의 차이점을 말할 때 "미국인은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요즘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남녀관계가 밋밋한 한국인에 비해 미국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수위가 높아서 이러한 차이점을 말하면 대부분 쉽게 수긍하죠. 그런데 애정표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놓고 본다면 미국인들은 뜻밖에 인색하기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물론 미국인들도 일상생활에서는 사랑(love)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실제로 연인끼리는 사랑한다는 말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트콤을 봐도 이러한 상황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인펠드에서 조지 코스텐자는 애인인 시에나에게 용기를 내어 "I love you"라고 말하지만, 시에나는 "배고프다. 식사하러 가자"며 그를 외면합니다. 프랜즈에서 챈들러는 애인인 모니카가 머리에 칠면조를 얹고 춤추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무의식중에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모니카가 "뭐라고?"하고 묻자 정색을 하며 "아무 말도 안했다"고 부인합니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테드는 처음 만난 로빈과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I think I am in love with you)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깨지고, 결국 로빈의 집에서 쫓겨나듯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남녀간에 "love"라는 쉽게 쓰지 않는 상황은 남녀관계의 변천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DNA를 후대에 전파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여자와 육체관계를 많이 맺기만 하면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자손을 낳을 뿐 아니라 기르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 혼자서 자녀에게 먹일 식량을 구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따라서 여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돌볼 능력과 마음이 있는 배우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남자는 수많은 여자를 쫓아다니고, 여자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 중 누가 유능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조심스럽게 판단해서 배우자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게 되어 임신하였는데, 남자가 자신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 피임약(the pill)이 개발되면서 남녀관계는 획기적으로 전환됩니다. 임신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이 과거와 다르게 남녀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60년대에 미국인의 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는데, 이를 성 혁명(Sexual revolution)이라고 부르죠.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남녀의 관계도 바뀌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여자가 남자와 거리를 두고 관계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60년대 이후론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여성이 늘었습니다. 과거에 "남자에게 꼬리 친다"며 부정적으로 보던 태도가 이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은 것이죠. 이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거리를 두던 관습이 사라지면서 남자와 여자가 심각한 연애 감정 없으면서도 연애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flirting이 보편화하게 됩니다. Flirting은 지극히 새로운 개념이기에 다른 언어로는 아직 번역이 안되었고, 불어나 독어에서도 그냥 영어 단어를 씁니다. 한국은 아직 전통적인 연애관이 남아있기 때문에 flirting이 덜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에겐 flirting이 보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변화 때문에 이제 남녀는 서로 쉽게 접근하고, 쉽게 연애하고, 쉽게 육체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 때문에 남녀가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상대방이 나를 그냥 쾌락을 위해 만나는지,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가벼운 만남이 일상화한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진지함이 그리운 법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냥 사귀는 관계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관계를 "I love you"라는 말로 구분합니다. "I love you"라는 말을 한다면 이는 곧 "나는 너를 그냥 즐기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의도로 만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쪽이 "I love you"라는 말을 하고 난다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결혼을 전제로 매우 진지하게 맺던 관계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의 고백은 곧 결혼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I love you"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I love you"라는 말은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띄지만, 이를 제외한 관계에서는 쉽게 써도 되고, 실제로도 많이 씁니다. 음식에 대해 쓰는 "I love pizza"부터 친구 사이의 "I love you", 부모 자식 간의  "I love you, son" "I love you, daddy" 집단을 향한 "I love you, guys"등은 모두 오해의 여지가 없기에 써도 괜찮죠.

한국은 아직도 전통적인 연애관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연애는 곧 진지한 일이고, 따라서 연애를 하는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미국인에게 연애하고 싶다고 "I love you"라고 하거나,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I love you"라고 했다간 엄청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애인에게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정보의 전달이 아닌 데 비해, 미국인은 "I love you"라는 말을 "나는 진지하게 너만을 사랑하고, 너랑 결혼할 마음도 있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이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문화가 같은 표현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P.S. 이번 주엔 이탈리아에 와서 회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이탈리아 내 여행이 계획되었는데, 화산재 때문에 비행편이 취소돼서 밀라노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내일 기차 편으로 독일로 돌아갑니다.

P.S.S. 저도 트위터를 합니다. 별로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는데, 어쨌든 주소는 @cimi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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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성

사회 2009/09/19 04:42
과거에 남자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들이 직장생활에 쫓기게 되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남자들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은 슈퍼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괴력을 발휘해 악당을 섬멸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애인과 친구를 구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소년들은 "그래, 나도 나중에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되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하지만, 슈퍼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은 현실성이 떨어졌기에 슈퍼히어로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근육질 남자(80년대의 실버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90년대의 장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로 대치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는 유능하고, 똑똑하고, 힘세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위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다."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보여준 주인공은 다양한 모험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구해낸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남성상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영웅이 아닌, 지능이 보통사람보다 떨어진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덤앤 더머는 지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주인공들이 실패뿐인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2000년대 미국 영화계를 휩쓰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의 인생 실패기(The 40-Year-Old-Virgin이 대표적인 예죠)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TV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The Big Bang Theory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미성숙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남자와 이성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이를 성숙한 관계로 발전시킬 능력이 결핍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과학 영역에서는 뛰어나지만, 관계, 가정, 사회생활 등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지 못하고, 만화책과 비디오 게임으로 현실의 불만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The Flight of the Conchords는 뉴욕에서 자리 잡으려고 노력하는 뉴질랜드 출신 2인조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노래는 너무도 썰렁해 관중은 반응이 전혀 없고, 이들의 매니저는 너무나 무능해 밴드를 망치는 존재이고, 이들을 따르는 유일한 팬은 팬이라기보다 스토커에 가깝습니다. 또한, 이들은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기에 이성에게 접근하기조차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이들이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이러한 영화나 TV 쇼가 인기를 끄는 것은 남성들이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영웅이 될 수가 없다고 느끼고, 따라서 영웅이 나오는 영화보다 자신과 비슷한 loser가 나오는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입니다(물론 21세기에도 배트맨 등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배트맨은 슈퍼맨과 비교한다면 훨씬 어둡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은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의 남자들이 보이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들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창조성, 인간관계 능력 등을 요구하는 21세기 사회는 근육량이 많은 남자에게 절대 유리했던 농경사회와는 매우 다르고, 남자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생존하기조차 벅차다고 느낍니다. 물론 지금도 남자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많은 영역에서 여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남자는 여자들과 경쟁에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여성적인 특징을 익혀서 섬세한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 것이지요. 즉, 생긴 대로 거칠고 투박하게 살면 되던 과거와 다르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살면서 남자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남자의 반응은 감정적인 미성숙입니다. 감정적인 미성숙은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심리의 표현이죠. 남자가 어른이 되길 싫어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봤자 좋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하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취직해봤자 직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며, 결혼하면 존경은 기대하기 어렵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일생을 바쳐야 하고, 여성들은 알파걸로 진화해 남자를 지배하려고 드니, 이렇게 복잡한 어른의 삶을 포기하고 어린 아이로 남아 남자를 위한 영화(스타워즈부터 매트릭스까지)나 보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동성 친구들과 만나 영원한 어린아이처럼 사는 편이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죠.

오늘날 남자들이 처한 상황은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처했던 상황만큼이나 구조적인 문제라 쉽게 바꿀 수가 없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20세기 초반까지 보편적이었던 강하고 멋있는 남성의 모습을 실생활에서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주 부터는 이곳에서 훈련과정이 시작되고, 제가 이 과정의 책임자기 때문에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을 올리겠다고 미리 약속하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일단 3개월간은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더라도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연말부터는 다시 한가하질 테니 그때부터 다시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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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의 시대

사회 2009/05/13 05:14
얼마 전에 미국에서 남성성을 잃은 남자, 야성을 잃은 남자들이 많아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글을 썼는데(야망이 없는 소년들, 공부할 나이), 글을 쓰면서 '과연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보통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에, 미국의 젊은 남성들이 남성성을 잃는 현상은 언젠가 한국 사회에도 나타나리라고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한겨레21에 나온 <‘잠’만 자는 신인류, 초식남> 이라는 기사를 읽으니, 한국도 이미 이러한 현상이 발생 중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더군요.

초식남은 일본에서 이미 3년 전부터 유행한 표현으로, <초식남, 여성화된 남자가 일본을 바꾼다>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남성성을 잃고 여성화한 남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초식남들은 연예에 대해 흥미가 없고, 혼자 사는 삶을 즐기고, "기성세대들이 정의하는 책임감, 권위, 근성 등으로 표현되는 ‘남성다움’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초식남이라는 표현이 화제가 되는 것은 한국에도 이런 남자들이 많기 때문이죠. 한겨레21 기사는 "'여성 공감 지수’가 높고 독신 생활을 즐기는 인물"인 꽃보다 남자의 윤지후를 한국형 초식남의 예로 들었습니다.

초식남에 대해선 일단 긍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한겨레21기사에 따르면 중앙대 여성학과 이나영 교수는 “여성 공감지수가 높은 남성의 등장은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허물어졌다는 점에서” 초식남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또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오는 많은 자칭 초식남은 "내가 꼭 전통적인 남성의 모델을 따라 살아야 하느냐?"며 자신이 섬세한 여성적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보입니다. 게다가 여성들도 여자 알기를 자기 몸종 알 듯 하는 "꼴마초"의 시대가 가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미남의 시대를 거쳐, 마음이 통하는 초식남의 시대까지 열리니 반가운 일로 반기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남성성을 잃은 남성이 출현한 지 수십 년이 된 서양의 예를 보면, 초식남 현상은 여성들에게 거대한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초식남들은 전통적인 남성들과 다르게 자신의 삶을 잘 가꿀 줄 알고, 인생을 즐길 줄 알기에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여성들은 남성과 관계를 할 때 대단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남성성을 읽은 남자가 관계에서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는 헌신의 회피입니다. 전통적인 남성들은 관계에서 "결혼에 골인"함으로 자신의 공격성을 표현했습니다. 즉, 남성이 사귀는 여성에게 "걱정 마,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살게 해줄게" 하고 거창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관계의 끝을 보고 싶은 남성 특유의 성취심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남성성을 잃은 남성은 관계에서 꼭 특정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특히 자신이 남성으로서 뚜렷한 역할(아버지의 역할, 남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결혼관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심지어 여성과 사귈지언정 공식적인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같은 관계를 추구하죠. 그래야,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이렇게 나오면 여자는 매우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전통적인 성역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하더라도, 몸에서 나오는 성호르몬은 여전히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여성호르몬에 평생 노출되며 살아온 여성들은 남자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물론 남성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도 자신이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있긴 하지만, 이는 소수이고, 대부분 여성은 남자가 연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지 않거나,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결혼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답답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이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 때문에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국에서는 아직 덜 나타난 현상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일반화한 현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도 소재로 자주 등장하죠. 심지어 여러해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남성들이 책임을 회피하기에 결혼을 하고 싶은데도 결혼을 못하는 여성이 많다며 "남성들이여, 책임을 피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책임이 없는 삶에 익숙해진 서양 남성들에겐 쇠기에 경 읽기였죠.

동양에선 만물을 음과 양의 관계로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자는 양, 여자는 음입니다. 세상에 지나치게 양이 많다면, 세상이 너무 과열돼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역사를 봐도, 남자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사회는 꼭 전쟁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전 세계가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20세기 전반은 양이 넘친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세계적으로 큰 전쟁이 없고, 남성성이 사라저가는 시기라는 점에서 음이 넘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과 양은 한쪽이 너무 많으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음과 양의 균형이 깨어진 상태이고, 따라서 그리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쉽게 해결책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 금방 상황이 바뀔 수도 없기에 앞으로도 수십 년간 이로 말미암은 어려움은 지속할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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