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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죽음

사회 2009/09/17 05:06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 단계로 보았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공산주의가 국가의 지배이념이 된 최초의 나라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영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뒤진 러시아였죠.

러시아가 방대한 영토에도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다르게 가난한 원인은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서양문명의 본산인 그리스로부터 멀었기에 문명이 늦게 전해졌고, 따라서 야만상태를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신약성경엔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스구디아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지금의 러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미 1세기부터 러시아 지역은 야만인이 사는 지역의 상징이었다는 뜻이죠.) 그리스의 문명이 유럽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엔 문화가 꽃피고, 이는 다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영국, 독일 서부지역으로 퍼져 나갔죠.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독일 동부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지역도 유럽문명에 편입되었지만, 러시아는 서유럽으로부터 너무 멀었기에 서유럽 국가들처럼 로마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들이 경험한 로마 제국의 지배, 중세 가톨릭 교회의 지배,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운동, 18세기의 정치적 혁명, 19세기의 산업혁명 등을 경험하지 못하고, 몽골의 지배, 로마가 아닌 그리스의 종교(정교회), 육로를 통한 국토확장 등 독특한 경험을 통해 민족성이 형성됩니다.

러시아의 역사를 결정한 또 다른 요인은 혹독한 추위입니다. 날씨가 추우니 추위와 싸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파르타의 척박한 자연환경이 스파르타의 잔혹한 정치체제를 낳았듯, 러시아의 척박한 환경도 러시아의 지배계층이 대중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체제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자연환경과 지배계층 양쪽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던 러시아 민중은 결국 공산주의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념을 해결책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러시아는 차르의 통치 시절보다 더 혹독한 독재를 경험합니다.

1990년대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난 러시아는 자유세계에 편입되어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러시아가 겪은 인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후진적인 정치, 구조적인 부패,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조직범죄 등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증거이죠. 무엇보다, 러시아의 암울한 현실은 인구 감소에서 잘 드러납니다. 1990년에 1억 4천8백만명에 달하던 러시아의 인구는 현재 1억 4천3백만명으로 줄었고, 2050년까지 1억 1천1백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이러한 인구 감소의 원인은 보편적인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짦은 평균수명과 낮은 출산율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러시아인이 살기 좋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니 인구의 감소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죠.

역사를 보면 살기 힘든 나라의 인구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이민족의 지배와 빈곤에 시달리던 19세기의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남부가 대규모 이민으로 인구가 줄어든 것은 대표적인 예죠. 그에 비해 살기 좋은 나라는 인구가 늘어납니다. 미국의 출산율이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사실은 아직 미국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죠(물론 이러한 상황은 빠르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60-70년대에 대규모 이민이 있었지만, 80년대 이후로 한국을 완전히 떠나 이민 가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점차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중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사실은 한국이 더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0%대를 향해가는 낮은 출산율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조용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살기 좋은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삶을 누릴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자녀를 많이 낳기 마련이죠. 그에 비해 살기 어려운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힘든 삶을 물려주기 싫다."라는 생각에 자녀를 낳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처한 인구 감소의 위기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개조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한국이 살 만한 나라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한국의 인구 증감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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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