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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의 위험

경제 2008/12/12 15:29
파생상품은 돈과 현물을 직접 거래하는 전통적인 금융상품과 다르게 돈과 현물을 가치의 근거로 두고 여기서 파생한 권리나 수익을 거래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주식시장에서는 주식을 사고 팔지만, 파생상품인 선물 시장에선 미래의 주식을 사거나 팔 권리를 사고 팝니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금융거래에서는 돈을 빌리고 이자를 주지만, 파생상품인 IRS 거래에선 이자를 줄 권리를 사고 팝니다.

파생상품은 시장 참여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고정금리로 돈을 빌려 놓고 "이자율이 떨어질텐데..." 하고 아까워하고, 어떤 사람은 변동금리로 돈을 빌려 놓고 "이자율이 오를 텐데..." 하고 걱정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연결해서 고정금리를 내던 사람은 변동금리를 받게 하고, 변동금리를 내던 사람은 고정금리를 내게 합니다. 그러면 자발적인 거래를 통해 리스크의 비용이 결정되죠. 이것이 IRS 거래입니다. 이렇게 파생상품을 통해 리스크 관리가 이루어지면, 과거에 불확실한 리스크 비용 때문에 거래를 꺼리던 사람도 거래에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개발한 CMO (모기지담보증권) 때문에 많은 자금이 모기지 시장으로 몰렸고, 따라서 집을 사는 사람은 싼 이자로 집을 구입할 수 있었죠.

파생상품은 실물을 근거 자산 (underlying asset)으로 두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를 정확하게 알기가 힘듭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맡긴 돈은 은행이 파산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식을 사면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가치는 보존되겠죠. 그런데 파생상품은 처음부터 특정한 조건이 되면 가치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에 (예를 들어, 주식 선물에서 콜 옵션은 미래의 특정한 날짜에 특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권리고, 따라서 그 날짜에 주가가 정해놓은 가격 보다 낮다면 가치가 전혀 없죠), 대단한 이변이 없이도 투자한 돈을 모두 잃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은행에 1억원을 맡겼다면 그 돈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고, 주식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1억원 가까이 찾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높지만, 파생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얼마를 찾게 될찌 알 수가 없습니다.

파생상품은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가치 판단이 힘들고, 따라서 파생상품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선 수학모델과 신용평가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파생상품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수학모델은 기관마다 다를 수 있고, 이럴 경우 가격을 산정하기가 어렵죠. 실제로 Trillion Dollar Meltdown에 보면 90년대에 은행돈을 빌려 CMO에 투자했던 데이빗 아스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은행과 아스킨이 다른 모델을 써서 가격에 합의할 수 없게 되자 은행에서 강제로 CMO를 팔게 했는데, 시장에 내놓으니까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투자한 돈을 모두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용평가기관은 객관적인 신용도를 평가해야 하는데, 이번 서브프라임사태에서 드러났듯 매우 위험한 채권에 AAA등급을 매기는 등, 자사의 이익을 위해 신용도를 조작한 예가 많습니다. 이처럼 파생상품의 위험도를 알기 힘들다면, 정확한 가치를 판단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죠.

파생상품은 위험이 높을수록 수익도 크기에 투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주식 선물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일반인이 주식 선물에 투자한다면 이는 투기성이 강하다고 봐야겠죠. 또한 파생상품은 전통적인 금융상품과 달리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대비도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크레딧 디폴트 스왑 (CDS)는 금융 거래를 할 때, 부도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과 같습니다. 그러면 수수료를 받고 부도시 돈을 대신 갚기로 약속한 회사는 실제로 부도에 대비해서 돈을 비축해 놔야 정상이겠죠 (이는 보험회사가 실제 화재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다른 보험회사에 재보험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많은 금융기관은 CDS 거래를 하면서, 돈을 받기만 하고 부도에 대한 대비를 안해놨습니다. 이럴 경우 부도가 안나면 받는 돈을 100% 이익이 되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죠. 그런데 최근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실제로 부도가 나는 회사가 늘었고, 이들 대신 빚을 갚아줘야 하는 회사들도 엄청난 위기에 휩싸였습니다. 고수익만 추구하다가 파국을 맞은 셈이죠.

이러한 파생상품의 부작용 때문에 금융당국이 파생상품에 대해 철저하게 감독을 했어야 하는데, 미국 FRB 의장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의 장점만 생각하고 파생상품이 증가하는 상황을 방치했습니다. 금리를 지나치게 낮게 유지한 것과 함께 그린스펀이 이번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이유죠.

한국은 선진국의 복잡한 금융상품을 도입하는데 늦긴 했지만, 최근 몇년간 은행에서 창구를 통해 많은 파생상품을 판매했습니다. 올해 한국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 키코 (KIKO)나 주가지수 연동형 예금도 파생상품이죠. 그나마 최근에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파생상품의 위험을 깨달았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물론 역사를 뒤로 돌릴 수는 없고, 파생상품이 리스크 관리의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금융시장의 중요한 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투기적이고 무책임한 파생상품의 개발과 거래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를 해야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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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