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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성

사회 2009/09/19 04:42
과거에 남자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들이 직장생활에 쫓기게 되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남자들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남자답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은 슈퍼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괴력을 발휘해 악당을 섬멸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애인과 친구를 구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소년들은 "그래, 나도 나중에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되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하지만, 슈퍼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은 현실성이 떨어졌기에 슈퍼히어로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근육질 남자(80년대의 실버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90년대의 장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로 대치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는 유능하고, 똑똑하고, 힘세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위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다."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보여준 주인공은 다양한 모험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구해낸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남성상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영웅이 아닌, 지능이 보통사람보다 떨어진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덤앤 더머는 지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주인공들이 실패뿐인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2000년대 미국 영화계를 휩쓰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의 인생 실패기(The 40-Year-Old-Virgin이 대표적인 예죠)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TV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The Big Bang Theory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미성숙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남자와 이성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이를 성숙한 관계로 발전시킬 능력이 결핍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과학 영역에서는 뛰어나지만, 관계, 가정, 사회생활 등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지 못하고, 만화책과 비디오 게임으로 현실의 불만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The Flight of the Conchords는 뉴욕에서 자리 잡으려고 노력하는 뉴질랜드 출신 2인조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노래는 너무도 썰렁해 관중은 반응이 전혀 없고, 이들의 매니저는 너무나 무능해 밴드를 망치는 존재이고, 이들을 따르는 유일한 팬은 팬이라기보다 스토커에 가깝습니다. 또한, 이들은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기에 이성에게 접근하기조차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이들이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이러한 영화나 TV 쇼가 인기를 끄는 것은 남성들이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영웅이 될 수가 없다고 느끼고, 따라서 영웅이 나오는 영화보다 자신과 비슷한 loser가 나오는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입니다(물론 21세기에도 배트맨 등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배트맨은 슈퍼맨과 비교한다면 훨씬 어둡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은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의 남자들이 보이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들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창조성, 인간관계 능력 등을 요구하는 21세기 사회는 근육량이 많은 남자에게 절대 유리했던 농경사회와는 매우 다르고, 남자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생존하기조차 벅차다고 느낍니다. 물론 지금도 남자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많은 영역에서 여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남자는 여자들과 경쟁에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여성적인 특징을 익혀서 섬세한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 것이지요. 즉, 생긴 대로 거칠고 투박하게 살면 되던 과거와 다르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살면서 남자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남자의 반응은 감정적인 미성숙입니다. 감정적인 미성숙은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심리의 표현이죠. 남자가 어른이 되길 싫어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봤자 좋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하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취직해봤자 직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며, 결혼하면 존경은 기대하기 어렵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일생을 바쳐야 하고, 여성들은 알파걸로 진화해 남자를 지배하려고 드니, 이렇게 복잡한 어른의 삶을 포기하고 어린 아이로 남아 남자를 위한 영화(스타워즈부터 매트릭스까지)나 보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동성 친구들과 만나 영원한 어린아이처럼 사는 편이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죠.

오늘날 남자들이 처한 상황은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처했던 상황만큼이나 구조적인 문제라 쉽게 바꿀 수가 없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20세기 초반까지 보편적이었던 강하고 멋있는 남성의 모습을 실생활에서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주 부터는 이곳에서 훈련과정이 시작되고, 제가 이 과정의 책임자기 때문에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을 올리겠다고 미리 약속하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일단 3개월간은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더라도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연말부터는 다시 한가하질 테니 그때부터 다시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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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