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사회에서 집단을 묶는 근거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뭉친 유대인들이나 고조선을 세운 단군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는 한국, 가톨릭으로 개종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를 프랑스의 시조로 보는 프랑스 인들은 인물에서 집단의 정체성을 찾는 좋은 예죠.
하지만, 혈연과 정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으로 바뀐다면 이러한 상징적 인물의 중요성은 대폭 감소하게 됩니다.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누구의 자손이든, 누가 수천 년 전 이 나라를 세웠든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유럽이 공동체(Gemeinschaft)의 개념을 버리고 사회(Gesellschaft)의 개념으로 넘어오면서 유럽인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토대를 찾게 됩니다. 이러한 토대를 제시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는 바로 장 자끄 루소였습니다. 그가 쓴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과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토대를 마련한 책이죠.
그는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해봅니다. 그의 생각 속에서 인류는 원래 자유를 즐기며 사는 독립적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서로 비교하게 되고, 결국 강한 사람은 남을 지배하고, 약한 사람은 남에게 지배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모든 사회에 존재하게 된 불평등은 자유를 즐기기 원하는 인간의 본성과 반대라고 할 수 있죠(그래서 "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 그렇다면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만약 대부분 사람이 일방적으로 착취를 당한다면 불평을 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가 유지되려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손해만 보면 안 되고 이익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이익을 적절하게 조율하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어야 하죠. 이렇게 맺은 계약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처럼 루소의 사상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이고, 이러한 충돌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모두가 객관적인 계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계를 사회의 기초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과 전혀 다르죠. 개인적인 관계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내 가족을 해한다면 내가 찾아가서 가해자를 처벌해야죠. 지금도 서양의 영향을 덜 받은 지역(아랍권 국가, 아프리카 등)에서는 피해자 측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일이 많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A Study of History에서 "복수는 나의 것"이란 말이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사회 계약론에 기초해 사회를 본다면, 처벌도 사회적 계약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계약이란 곧 법이죠. 따라서 문제가 발생해도 법에 따른 처벌에 의존해야지, 개인이 처벌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만약 개인이 복수하려고 하면 법은 그 또한 범죄자로 보고 처벌을 하겠죠.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직접 복수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많지만(찰스 브론슨의 Death Wish나 리암 니슨의 Taken 등), 선진국에서 법을 무시하고 직접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사회 계약의 개념은 권력자의 권력을 제한할 때도 유용합니다. 전통적인 집단에서는 권력자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계약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라면 아무리 통치자라 할지라도 사회 계약의 표현인 법을 넘어서는 권력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영국 신민(subjects)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중세의 문서인 대헌장(Magna Carta)이 중요한 것은 이 문서가 왕이라도 이러한 권리를 함부로 빼앗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권리 보호의 개념은 사유 재산의 보호로 이어졌고, 유럽에선 이미 18세기에 이르면 지적 저작권을 보호받게 됩니다. 이처럼 법률에 의한 재산 보호의 전통은 현대에 들어 복잡한 경제 체제가 완성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만약 법률이 개인의 재산을 잘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구의 재산인지 모호한 사각지대가 생기고, 이는 경제의 비효율을 낳죠. 데소토가 The Mystery of Capital에서 지적한 법의 영역 외에 존재하는 제3세계 국가의 재산은 이러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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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혈연과 정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으로 바뀐다면 이러한 상징적 인물의 중요성은 대폭 감소하게 됩니다.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누구의 자손이든, 누가 수천 년 전 이 나라를 세웠든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유럽이 공동체(Gemeinschaft)의 개념을 버리고 사회(Gesellschaft)의 개념으로 넘어오면서 유럽인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토대를 찾게 됩니다. 이러한 토대를 제시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는 바로 장 자끄 루소였습니다. 그가 쓴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과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토대를 마련한 책이죠.
그는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해봅니다. 그의 생각 속에서 인류는 원래 자유를 즐기며 사는 독립적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서로 비교하게 되고, 결국 강한 사람은 남을 지배하고, 약한 사람은 남에게 지배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모든 사회에 존재하게 된 불평등은 자유를 즐기기 원하는 인간의 본성과 반대라고 할 수 있죠(그래서 "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 그렇다면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만약 대부분 사람이 일방적으로 착취를 당한다면 불평을 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가 유지되려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손해만 보면 안 되고 이익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이익을 적절하게 조율하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어야 하죠. 이렇게 맺은 계약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처럼 루소의 사상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이고, 이러한 충돌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모두가 객관적인 계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계를 사회의 기초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과 전혀 다르죠. 개인적인 관계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내 가족을 해한다면 내가 찾아가서 가해자를 처벌해야죠. 지금도 서양의 영향을 덜 받은 지역(아랍권 국가, 아프리카 등)에서는 피해자 측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일이 많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A Study of History에서 "복수는 나의 것"이란 말이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사회 계약론에 기초해 사회를 본다면, 처벌도 사회적 계약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계약이란 곧 법이죠. 따라서 문제가 발생해도 법에 따른 처벌에 의존해야지, 개인이 처벌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만약 개인이 복수하려고 하면 법은 그 또한 범죄자로 보고 처벌을 하겠죠.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직접 복수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많지만(찰스 브론슨의 Death Wish나 리암 니슨의 Taken 등), 선진국에서 법을 무시하고 직접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사회 계약의 개념은 권력자의 권력을 제한할 때도 유용합니다. 전통적인 집단에서는 권력자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계약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라면 아무리 통치자라 할지라도 사회 계약의 표현인 법을 넘어서는 권력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영국 신민(subjects)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중세의 문서인 대헌장(Magna Carta)이 중요한 것은 이 문서가 왕이라도 이러한 권리를 함부로 빼앗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권리 보호의 개념은 사유 재산의 보호로 이어졌고, 유럽에선 이미 18세기에 이르면 지적 저작권을 보호받게 됩니다. 이처럼 법률에 의한 재산 보호의 전통은 현대에 들어 복잡한 경제 체제가 완성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만약 법률이 개인의 재산을 잘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구의 재산인지 모호한 사각지대가 생기고, 이는 경제의 비효율을 낳죠. 데소토가 The Mystery of Capital에서 지적한 법의 영역 외에 존재하는 제3세계 국가의 재산은 이러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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