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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3 [연재] 사회와 공동체 4 (2)
  2. 2008/09/20 조선일보의 교묘한 김구 깎아내리기 (1)
전통적인 사회에서 집단을 묶는 근거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뭉친 유대인들이나 고조선을 세운 단군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는 한국, 가톨릭으로 개종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를 프랑스의 시조로 보는 프랑스 인들은 인물에서 집단의 정체성을 찾는 좋은 예죠.

하지만, 혈연과 정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으로 바뀐다면 이러한 상징적 인물의 중요성은 대폭 감소하게 됩니다.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누구의 자손이든, 누가 수천 년 전 이 나라를 세웠든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유럽이 공동체(Gemeinschaft)의 개념을 버리고 사회(Gesellschaft)의 개념으로 넘어오면서 유럽인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토대를 찾게 됩니다. 이러한 토대를 제시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는 바로 장 자끄 루소였습니다. 그가 쓴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과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토대를 마련한 책이죠.

그는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해봅니다. 그의 생각 속에서 인류는 원래 자유를 즐기며 사는 독립적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서로 비교하게 되고, 결국 강한 사람은 남을 지배하고, 약한 사람은 남에게 지배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모든 사회에 존재하게 된 불평등은 자유를 즐기기 원하는 인간의 본성과 반대라고 할 수 있죠(그래서 "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 그렇다면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만약 대부분 사람이 일방적으로 착취를 당한다면 불평을 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가 유지되려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손해만 보면 안 되고 이익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이익을 적절하게 조율하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어야 하죠. 이렇게 맺은 계약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처럼 루소의 사상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이고, 이러한 충돌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모두가 객관적인 계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계를 사회의 기초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과 전혀 다르죠. 개인적인 관계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내 가족을 해한다면 내가 찾아가서 가해자를 처벌해야죠. 지금도 서양의 영향을 덜 받은 지역(아랍권 국가, 아프리카 등)에서는 피해자 측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일이 많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A Study of History에서 "복수는 나의 것"이란 말이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사회 계약론에 기초해 사회를 본다면, 처벌도 사회적 계약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계약이란 곧 법이죠. 따라서 문제가 발생해도 법에 따른 처벌에 의존해야지, 개인이 처벌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만약 개인이 복수하려고 하면 법은 그 또한 범죄자로 보고 처벌을 하겠죠.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직접 복수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많지만(찰스 브론슨의 Death Wish나 리암 니슨의 Taken 등), 선진국에서 법을 무시하고 직접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사회 계약의 개념은 권력자의 권력을 제한할 때도 유용합니다. 전통적인 집단에서는 권력자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계약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라면 아무리 통치자라 할지라도 사회 계약의 표현인 법을 넘어서는 권력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영국 신민(subjects)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중세의 문서인 대헌장(Magna Carta)이 중요한 것은 이 문서가 왕이라도 이러한 권리를 함부로 빼앗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권리 보호의 개념은 사유 재산의 보호로 이어졌고, 유럽에선 이미 18세기에 이르면 지적 저작권을 보호받게 됩니다. 이처럼 법률에 의한 재산 보호의 전통은 현대에 들어 복잡한 경제 체제가 완성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만약 법률이 개인의 재산을 잘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구의 재산인지 모호한 사각지대가 생기고, 이는 경제의 비효율을 낳죠. 데소토가 The Mystery of Capital에서 지적한 법의 영역 외에 존재하는 제3세계 국가의 재산은 이러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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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올해 정부는 "건국 6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 대한민국을 60년 역사 밖에 없는 국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는 일제시대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근거를 없애고, 48년 정부수립 이후에 권력을 잡은 세력을 옹호하기 위한 치졸한 역사의 왜곡이였죠.

이러한 움직임에 편승해 뉴라이트를 비롯한 많은 우익단체는 이승만 대통령을 띄우려는 움직임을 강화하였습니다. 최근 신문에서 광고를 많이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 등도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지요. 이와 맞물려 이승만과는 다른 정치노선을 추구한 김구선생에 대해 깎아내리려는 움직임도 눈에 띕니다.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金九에게 이런 모습이? 라는 기사는 김구 깎아내리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 기사는 김구가 김자점이라는 역적이자 간신의 후손이고, 김구가 죽인 일본인은 김구의 주장처럼 장교가 아니라 민간인이었으며, 광개토왕비가 있는 지역을 여행했으면서도 광개토왕비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무지하며 (또는 역사관이 잘못되었으며), 한때 이승만을 높게 평가했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올바르게 풀어 쓴 백범일지'라는 책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책이 있다는 점이 아니라, 이 기사를 시작하며 조선일보가 "우리 국민, 특히 좌파 성향 인물들이 성웅(聖雄)처럼 떠받드는 김구"라는 구절을 삽입한 점입니다. 여기서 김구를 "좌파 성향의 인물들"과 연관함으로 결국 김구를 국민의 영웅이 아닌 좌파만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죠.

지금까지 김구는 전국민이 사랑하는 몇 안되는 근대사의 인물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이 김구선생의 초상을 10만원권에 넣기로 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의 반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격화하는 우파의 "편가르기"에 따르면 김구선생도 좌파로 낙인찍힌 듯 합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김구선생을 "좌파" "빨갱이"로 부른 글이 많이 보이네요.

이제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살아도, 우파의 "이념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결국 빨갱이로 찍히는가 봅니다. 정말 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슬픈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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